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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BMW를 떠나 현대차 디자이너가 된 이유

기아차는 피터 슈라이어라는 스타디자이너가 있죠. 직선이 강조된 젊은 느낌의 디자인이 그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면 현대차는 그와는 조금 다른 곡선을 통한 우아함을 디자인의 기본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곡선을 통한 우아함' 이 문구는 제 표현이 아니라 현대차 유럽디자인센터 수석 디자이너인 토마스 뷔르클레(Thomas Bürkle) 씨의 이야깁니다.

현대차는 기아와 달리 수석디자이너를 북미와 유럽 이렇게 나눠 두고 있는 거 같습니다. 물론 국내 남양연구소도 있구요. 집단지도체제라고나 할까요? 확실한 마무리 투수를 보유한 팀이 기아라면 현대는 상황에 따른 투수진 운용을 하는 야구팀으로 비유하면 어떨까요?

어쨌든 지난 3월 경에 독일의 자동차잡지 아우토운트슈포트(Auto-motor-sport)에서 유럽디자인 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토마스 뷔르클레를 만나 나눈 짧은 기사가 있었는데, 그 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습니다. 그런데  YF와 투산, 그리고 이번에 새로나온 아반떼 MD로 이어지는 일종의 현대자동차식의 패밀리룩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그가 한 이야기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현대차 유럽법인은 프랑크푸르트 인접도시에 있죠. 뤼셀스하임에 위치한 디자인센터엔 독일 디자이너들이 모여 한국의 차를 디자인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위 사진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여타 디자이너들과는 다른 상당히 기업가스런(?)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현대차 유럽법인 사장님인 줄 알겠어요!

사실 토마스 뷔클레어가 대학교 때 보유하고 있던 차를 본다면 그의 이미지가 얼추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모델 Mercedes W111 Coupé인데요. 포르쉐나 베엠베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느낌이죠?... 제가 왜 이렇게 차 사진이랑 디자이너의 분위기를 언급하는지 아시겠습니까?

튀는 거 싫어하고 중후하고 우아하면서 좀 약간은 남성적인 면과 점잖은 면을 동시에 표현하는 현대차의 디자인 방향과 수석디자이너 개인의 성향이 맞아떨어진 것이란 얘기죠.

토마스 뷔어클레는 사실 베엠베에서 6시리즈를 디자인하는 등 성장 가능성 있던 디자이너였는데요. 그런 그가 프리미엄 메이커를 박차고 나와 현대자동차에 들어온 이유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 나에게 현대자동차는 백지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즉, 자동차 메이커에 아이덴티티를 만들 수 있다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아무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에요. 어쩌면 자동차 디자이너에겐 평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한 도전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저는 이걸 외면할 수 없었어요. "


그러면서 얘기를 이어갑니다...

" 한국에선 70%의 자동차가 현대 아니면 기아의 차들이죠. 그래서 예전엔 모델을 구분하는 디자인이 더 우선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은 어디 그런가요? 자동차 메이커는 물론이고 종류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에서 디자인으로 자동차 메이커를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예전 한국의 어느 언론과 인터뷰에서도 그는 같은 얘기를 했었죠. 아이덴티티...현대차만의 정체성을 살리겠다는 것이 그의 확실한 목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헥사고날 그릴과 플루이딕 스컬프쳐의 조합이었던 것이죠.

스컬프쳐(조각, 조각의)라는 개념을 디자인에 도입한 것은 현대차가 처음도 아니고 혼자만도 아닙니다. 이미 다양한 메이커들에서 적용을 하고 있죠. 다만 플루이딕이라는 단어가 더해져 임팩트를 조금 더 준 것인데요. 그러다 보니 선이 너무 과하게 차를 그어대고 있어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네, 자동차 메이커의 정체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합니다. 과거 현대차는 이런 점에선 부족했으니까요. 제대로된 접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YF쏘나타와 투산 등으로 이어진 양산 모델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정체성에만 몰입했던 것은 아닐까요?... 디자인의 일관된 방향을 잡은 것은 좋은데 그것이 지속가능한 디자인인가, 아니면 대중을 사로잡을 매력적인 디자인인가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의문부호를 찍게 됩니다.

만약 계속해서 이 두 가지를 근간으로  밀고 나가게 된다면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아이텐티티는 '못생긴 일관성' 으로 뿌리내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되는군요.

2006년 디트로이트 모토쇼에서 선보인 크로스오버 컨셉카


아반테MD는 그나마 이전 모델들에 비해 좀 나아진 거 같은데요. 차라리 준중형 이하와 중형 이상으로 나눠 디자인의 틀을 짜는 건 어떨까 싶더군요... YF가 미국시장에서 잘나가고 있지만 정작 독일인이 디자인한 그 모델이 유럽시장에 들어올 땐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바뀐다는 것 자체가 반쪽짜리 디자인일 수도 있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정체성 찾는 작업이 조금 궤도를 수정하더라도 더 나은 디자인,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그런 디자인이 되었음 좋겠네요. 제가 애국자라서 현대 잘되라고 그러는 것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현대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많은 내수 고객들, 이쁜차 타시라고 그러는 거예요...

한두푼도 아닌  비싼 물건 자동차...

제발 예쁘게 좀 뽑아주세요
 
토마스 뷔어클레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