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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독일에서 F1 GP 코리아 보고 엉엉운 사연

'따르르릉~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새벽 5시? 이런 좀 이른 시간이네...긴장을 한 탓. 다시 잠을 청했다. 허걱! 잠깐 눈을 감는다는 게 7시 30분을 넘기고 말았다. 허겁지겁 일어나 텔레비젼을 켠다. 아~ 한창 준비중이다...F1의 역사적인 한국경기가 말이다!'

늦잠 늘어지게 자야할 오늘 잠을 설친 이유는 영암에서 열리는 F1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유였습니다. 한국시간으로 오후 3시는 여기 시간으로 오전 8시. 다음 주만 되어도 썸머타임이 끝나기 때문에 7시에 일어났어야 하지만, 사실 몇 시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역시 걱정했던 대로 날씨가 흐리고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죠. 대회가 열리기 전, 그간의 준비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문제들 때문에 혹시라도 경기가 취소되거나 심하게 비난 받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쩌나 싶어 마치 밤을 꼬박 세운 사람처럼 눈과 마음이 퀭해서 TV화면을 바라봤습니다.

                                                    사진 : KAVO

24명의 최고 드라이버들이 한국에서 머신들과 함께 서킷을 달린다니...이 전엔 그냥 맘 편히 시청했던 시청자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비가 계속 온다는 얘기에 혹시라도 경기가 지연되고 결국 완주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된다면...아~ 생각하기 싫은 시나리오였죠.

레이싱을 준비하는 분주한 팀들의 상황이나 각 레이서들과의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위의 사진은 독일 내 F1을 전담 중계하는 RTL이란 방송의 모습인데요. 공중파 케이블이 따로 없기는 하지만 독일의 RTL은 한국의 SBS 정도의 방송국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암튼, 좌측에 보이는 키 작은 남자는 미하엘 슈마허의 동생이자 한 때 F1에서 레이서로도 함께 활약했던 랄프 슈마허의 모습이구요. 가운데 분이 이번 코리안 인터네셔날 서킷을 설계한 헤르만 킬케 씨입니다.

서킷은 아무런 이상이 없이 잘 나왔지만 문제는 날씨다 뭐 그런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타오는데 스탠드에 있는 관중들이 모두 일어서는 장면이 보이더군요, '시작을 하나?' 싶어 얼른 자릴 잡는데 애국가를 곱게 부르는 여자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 방송이 아니라 끝까지 애국가 부르는 모습이 나오진 않았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나오는데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며 코끝이 찡해오더군요. 슬쩍 눈물까지 맺히는게 이거이거 아직 잠을 자고 있을 아내에게 들키면 어쩌나 싶어 눈물을 훔쳤습니다 하지만 척박한 자동차문화의 한국이란 곳에서 F1이 열리다니! 꿈이 아닌 생시임을 알려준 애국가 때문에 소리만 못 내었지 가슴으로는 이내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사진 : xpb

그리드 정렬. 정말 시작을 하긴 하는구나 싶었지만 워낙 물이 많은 탓에 경기가 지연이 됐죠. 이러다 경기를 끝내지 못할 경우 어떻게 점수를 계산하는지를 독일중계진들이 얘기를 할 땐 얼마나 하늘이 원망스럽던지요. 다시 레이스를 위해 선수들이 머신에 오르고, 세이프티카의 뒤를 따라 계속 서킷을 도는데 세상에~ 세이프티카가 빠질 상황이 안되는 겁니다. 지루하게 계속 같은 상황이 반복이 되는 중에 드디어 역사적인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바스티안 페텔과 루이스 헤밀턴을 응원했기 때문에 페텔의 선두질주가 신이 났습니다. 하지만 엔진화재로 페텔은 총점 4위로 대회를 마치고 또다른 강력한 우승후보인 페르난도 알론소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사진 : xpb

사진 : KAVO

사진 : xpb


알론소의 우승으로 레드불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세바스티안 페텔은 팀동료인 마크 웨버의 우승을 도와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고, 독일인들은 레드불 엔지니어들 원망하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분명 페텔의 머신의 화재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겁니다.

사진 : xpb


불을 끈 페텔이 자신을 태우러온 스쿠터를 직접 몰고 오는 장면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이번 대회가 특히 리타이어(사고로 아웃된 상황)가 많아 팀들 입장에선 괴롭고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그럼에도 레이서들 누구하나 얼굴 구기고 어깨 떨구지 않더군요.  숱한 경험을 통해 얻어낸 득도자들의 모습이랄까요...?

저는 이번 F1 GP 코리아를 보면서 이런 점들을 느꼈습니다.

▶우선, 놀라운 관중수였습니다!

사진 : xpb


그 빗속에서도 8만 관중이라뇨! 그것도 자발적으로 표를 사서 온 분들이 대다수였다니 대단한 결과였습니다. 워낙에 외진 곳이고 F1 자체가 자주 방송에 노출되지도 않았고, 홍보 한 번 제대로 안됐다는 대회에 밀려든 관중들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자주 잡혀 기분이 더욱 좋았는데요. 엉망진창인 도로와 주차장 및 화장실 등 시설적인 면에서 제대로 어느 하나 된 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면 내년 대회는 엄청난 성공이 어렵지 않게 예상됩니다.

다만,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온라인 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사람들...이렇게 재미난 경기를 보고도 전라도 어쩌구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정말로...미안한 표현이지만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암같은 낙후된 곳에서 저런 세계적인 서킷이 생겼고 이제 그것을 통해 중요한 랜드마크가 생긴 겁니다. 시설은 이제 점점 더 좋아지고 나아질 건데 무슨 걱정들이 팔자인지...

그리고 모 신문에선 '나라망신'이라는 제목으로 별 것도 아닌 내용을 과대 포장했던데...이번 대회가 많은 부분에서 문제점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 정확한 조사와 평가가 따라야겠지만 그렇다고 나라망신이라는 제목은 정말 아니죠!

그리고 또 한가지 대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경기내용이 정말 끝내주게 재밌었다는 점입니다!

사진 : xpb


바로 이전 일본 대회에서도 여러 대의 머신들이 사고로 탈락을 하고 말았는데요. 오늘은 아마 올해 대회 중 가장 많은 레이서들이 탈락을 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중도 탈락자가 많았습니다. 팀이나 레이서에겐 속상한 일이지만 시청자나 관중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것이 또한 F1 경기를 보는 맛일 겁니다. 특히,

9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1위를 달리던 페텔이 알론소에게 추월을 당하며 설상가상으로 발생된 엔진사고는 오늘 대회에서 가장 극적인(?)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페텔이 떨어진 게 무척이나 아쉽지만 이런 변수들로 인해 F1을 처음 접하는 한국팬들은 엄청난 아드레날린이 품어져 나오는 흥분을 맛보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한국은 세계 3대 스포츠를 모두 개최한 나라가 됐습니다. 그리고 F1은 한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몇 년을 계속 영암에서 열리게 되죠. 잘되기만 하면 지속적으로 경기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처음 치르면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또다시 반복되어선 안됩니다. 숙박시설 늘리고, 숙박업소에 영어자원봉사자라도 배치해 외국관광객들이 호텔에서 답답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등의 작은 부분들까지 신경을 써야합니다. 원래 이런 게 우리나라 강점 중 하나잖습니까!

일단 국민들의 반응이 좋았고, 이처럼 매력적인 경기에 대해 왜 그동안 붐이 일지 않았는지 의아해할 정도로 즐거움을 느꼈으며, 흥행적인 측면에서도 성공적이었기에 중앙정부도 한국을 알리는 절호의 기회로 F1을 활용할 수 있도록 뒷바침해줘야 합니다. 우리같은 평범한 국민들은 G20 못지않게 이런 것에서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니까요. 외국에서의 반응도 다르지 않음은 각 국에서 현지 분위기 전해주는 유학생이나 교포들에 의해 파악이 될 겁니다.

부디, 다음 대회는 이런 아마추어같은 진행이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F1에 대한 국민적 열기와 레이싱 자체의 수준은 이미 성공했습니다. 이제 나머지만 채웁시다!...한국땅에서 세계적인  경기를 펼친 것에 감동해했던, 그렇게 가슴으로 내내 엉엉 울었던 벅찬 하루였습니다. 홧팅~!
(빼먹은 내용이 있어 하나 추가합니다. 독일 해설자가 이런 얘길하더군요. 몇몇 스폰서들이 노골적으로 한국에서의 F1이 안 열리길 바랬답니다. 이유는...망신 좀 당했으면 했다는 거였다는군요. 뭐가 불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어떤 넘들인지 목록을 좀 알려줬더라면 1인 불매운동이라도 벌였을 텐데...천만다행입니다. 그들의 소원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사진 : xp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