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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잦아들지 않는 독일의 지독한 SUV 비판 분위기

오래전부터 독일 내에 SUV를 향한 강한 비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습니다. 비판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환경, 그리고 안전. 환경은 배출가스와 관련 있습니다. 또한 타이어 분진, 그리고 부유 먼지 등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안전의 경우 보행자 충돌 시 더 위험성이 높다는 점을 들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주차 공간을 더 차지하거나, 작은 차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는 점 등을 꼽으며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자동차라는 쓴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SUV 비중은 점점 더 높아가고 있죠. 시장의 자연스러운 선택이고, 이런 흐름에 따라 전기차 또한 SUV 친화적으로 가고 있습니다.

 

독일의 SUV에 대한 비판, '안티 SUV'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뉴스 두 가지를 소개할까 하는데요. 첫 번째는 2021 9월에 나온 소식입니다. 독일 튀빙엔 시장은 무겁고 큰 자동차의 공공 주차장 이용료를 최대 6배까지 올리기로 했습니다.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고 시의 대기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게 시장이 밝힌 이유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거운 차는 엔진 자동차의 경우 공차중량 1800kg 이상, 전기차는 2000kg 이상인 경우가 해당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 드리면 중형 세단인 현대 쏘나타가 1600kg이 넘지 않습니다. 반면 같은 중형급 모델이지만 SUV 싼타페는 공차 중량이 트림에 따라 1809~2040kg 사이에 왔다 갔다 합니다. 투산도 트림에 따라 1890kg이 넘어갑니다. SUV는 이 기준에 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차는 제네시스 GV60 (스탠다드 4, 퍼포먼스 4)과 아우디 Q4 e-트론과 같은 콤팩트 전기 SUV 등이 다 이 기준에 걸립니다. 기아 EV6 롱레인지 사륜 모델도 2000kg이 넘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튀빙겐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논의되고 있고 이미 비슷한 정책이 시행 중이라는 것입니다.

GV60 / 사진=제네시스

 

첫 번째 뉴스보다 더 희한한(?) 소식도 있었습니다. '신호를 위반한 SUV에 대한 더 높은 벌금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특이한 제목의 기사입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진보 매체 슈피겔에 올라온 것인데요.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한 SUV 운전자가 정지 신호를 위반해 경찰 단속에 걸렸습니다. 법정에 선 운전자에게 재판부는 벌금 350유로와 1달간 운전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350유로는 보통 이 경우에 받게 되는 200유로 벌금보다 더 큰 금액이었죠.

 

이처럼 더 많은 벌금을 물린 것은 전고가 높은 SUV에 의해 보행자 사고 위험이 더 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는 법원의 판결 이유를 슈피겔은 소개했습니다. 운전자는 억울하다며 항소했습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첫 판결을 존중했습니다. 해당 SUV 차주는 매우 운전 태도가 불량하며, 수차례 교통법규를 위반해 벌금과 벌점을 받았음에도 개선의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는 게 결정 이유였습니다.

 

그러니까 SUV 때문이라기보다는 해당 운전자의 나쁜, 잘못된 운전 태도에 대한 일종의 징벌적(?) 처벌을 가한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해당 뉴스에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기사의 의도를 문제 삼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본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 사진=랜드로버

 

한 독자는 '이 기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SUV라는 용어가 기술적 용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댓글을 달았고 많은 추천을 받았습니다. 다른 네티즌은 '베를린에는 빨간불을 지키지 않는 많은 보행자가 있고 일부러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도 있다.'며 자동차뿐만 아니라 보행자까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판결에 동의한다. 질이 나쁜 운전자에 대한 적절한 판정이라고 본다. 하지만 내 기억에 첫 기사 (기사 수정이 있었던 듯)의 제목에 많은 이가 포럼(댓글 코너)에서 찬성 버튼을 눌렀다.'라고 기자의 의도를 비판해 많은 추천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추천이 많았던 댓글에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 이 판결에 난 찬성이야. 그런데 신호위반과 SUV는 무슨 상관이지? (기자의 의도대로라면) 트럭엔 10배 더 많은 벌금을 물려야겠네?' 그밖에 '의도적으로 기자가 SUV를 나쁘게 묘사했다.' '이데올로기적인 기사다' '3.5톤 이하는 그냥 다 자동차일 뿐 왜 SUV를 유독 부각했나' 등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SUV가 과연 충돌 시 더 위험한지에 대한 기술적 논쟁까지 더해지는 등, SUV를 비판하는 이들과 SUV 옹호론자들, 그리고 기사의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기자의 의도를 지적하는 사람들까지 뒤섞이며 해당 기사 코너는 아주 시끌시끌했습니다.

 

일부는 SUV가 정치 이념 대결의 상징처럼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는데요. ~ 독일만큼 SUV에 대해 이렇게 비판과 다툼이 노골적인 나라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의 차종을 두고 이처럼 광범위하고 다양한 논쟁이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게 자동차를 이야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럽기도 합니다. 과연 독일의 SUV 비판 목소리는 더 커질까요 아니면 잦아들까요? 환경과 안전, 거대한 자동차 소비의 흐름이라는 여러 관점에서 이 논쟁을 지켜보는 것도 뭐~저는 마냥 이상하지만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