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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자동차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

지난 8,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했습니다. 1952년 아버지 조지 6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고 70년간 영국을 대표했습니다. 1926년생으로 영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며, 유럽의 여러 왕족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졌으며, 그만큼 영향력도 컸습니다.

사진=랜드로버

 

여왕 관련해 정말 많은 뉴스가 나오고 있는 요즘인데요. 자동차 팬들에게는 역시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자동차를 좋아했던 여왕으로 기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관련한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독일 아우토빌트와 그 외의 몇 매체에서 다룬 잘 알려지지 않은 여왕과 자동차에 관련한 짧은 몇 가지 이야기를 모아 정리해봤습니다.

 

여왕은 군대에서 운전을 배웠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1945 2, 18 (유럽 나이)의 나이에 육군에 입대하는데요. 비록 2차 세계대전 끝 무렵이기는 했지만 평시가 아닌, 적과의 싸움이 치열했던 전쟁 중에 군인이 되었고, 특히 아버지 조지 6세를 설득해 입대했다는 점에서 귀감이 됩니다. 여왕의 군번은 230873이었으며 입대 5개월 후 하급장교로 진급합니다.

 

구호품 전달 등, 처음에는 비전투 업무를 주로 수행했지만 나중에는 탄약을 관리하는 등, 전투와 관련된 업무까지 보게 됐습니다. 이때 여왕은 처음 운전을 배우는데요. 또한 경트럭까지 몰며 자동차와의 깊은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군복무 시절 / 사진=위키피디아

 

여왕은 자동차 정비를 할 수 있다

군대에서 전쟁 중에 운전을 배운 덕(?)이었는지 여왕은 트럭이 고장 나거나 했을 때 직접 수리를 했고, 흙바닥에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등, 운전과 정비를 함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왕족이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지 않고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이러한 모범적인 모습에 영국민들은 존경을 표했습니다.

여왕의 타이어 교체 모습

 

여왕은 면허증이 없어도 운전할 수 있었다

운전을 배운 여왕이지만 면허증이 발급되진 않았습니다. 무면허 운전 아니냐고요? 영국 그 자체로 여겨지는 여왕이라는 신분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또 여왕은 직접 운전하는 것을 무척 즐겼는데요. 마지막으로 언론에 의해 운전하는 모습이 소개된 것은 2021 11월이었습니다. 당시 타고 있던 모델은 진녹색의 재규어였습니다.

여왕 즉위 70년을 기념한 재규어의 E-타입 / 사진=재규어

 

여왕의 의전차량에는 번호판이 없다

여왕의 의전용 자동차에는 번호판이 없습니다. 대신 윈저가 문장이 앞 유리 위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는 영국뿐만 아니라 여왕이 국빈으로 초대된 나라에 자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등이 이용되었고, 이 공식 의전 차는 모두 번호판을 달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적으로 자동차를 타거나 운전할 때는 예외 없이 번호판이 달린 차를 이용했습니다.

2015년 베를린 방문 당시 여왕 / 사진=베를린경찰청
사진=픽사베이

 

롤스로이스와의 결별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 롤스로이스와 영국 여왕의 조합은 너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2002년 여왕 즉위 50년을 기념해 벤틀리가 공식 의전용 리무진을 기증합니다. 여왕은 그때부터 타던 롤스로이스 팬텀과 작별하고 벤틀리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여왕은 황실 전통을 깨고 벤틀리를 선택한 걸까요?

 

2002BMW는 폴크스바겐그룹과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롤스로이스를 인수합니다. 그동안 롤스로이스 모델과 벤틀리 모델을 만들던 체셔 주의 크루 공장에 남겨진 건 벤틀리였죠. 롤스로이스의 많은 제작 유산이 독일로 넘어가게 되었고, BMW는 크루공장이 아닌 영국 굿우드로 롤스로이스 본사와 공장을 옮깁니다. 이런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일이 있은 후 여왕은 새로운 의전차의 전통을 벤틀리로 이어가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영국 색깔이 더 남아 있다고 본 것일까요?

1966년 애스턴마틴 공장 방문한 여왕 / 출처=애스턴마틴 트위터

 

참고로 의전용 벤틀리 리무진에는 가죽이 없습니다. 실내 시트나 도어 안쪽의 가죽이 들어가는 부분은 모두 회색의 천으로 덮여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그렇게 해왔다는데 동물 가죽 사용을 반대해서 그런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긴 세월 영국을 상징해왔던 인물이었던 만큼, 또 자동차에 애정이 있던 여왕이었던 만큼, 자동차와 얽힌 이야기가 앞으로 더 발굴되어 소개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