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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VW그룹 회장되는 포르쉐 CEO, 정치 스캔들에 빠지다

지난 금요일이었죠. 폴크스바겐그룹을 이끌던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이 물러나고 포르쉐 수장 올리버 블루메가 새롭게 그룹 최고 자리에 앉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독일 언론들은 이번 사임 소식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헤르베르트 디스는 지난 해 7월 임기가 2025년까지 연장됐습니다. 잘 흘러가는 듯한 폴크스바겐그룹 경영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아쉽게 임기를 끝까지 채우지 못하게 된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 / 사진=폴크스바겐

 

직장평의회에 찍힌 회장

 BMW에서 2015년에 폴크스바겐으로 건너온 헤르베르트 디스는 2018년부터 그룹을 이끌었습니다. 회사 경영 안정화는 물론, 빠른 전동화 전략 수립과 실행으로 대주주들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고집이 쎈 면이 있었습니다. 공격적으로 회사를 경영하던 그는 회장 자리에 오른 후 얼마 되지 않아 직장평의회와 부딪치게 되죠.

 

직장평의회는 노조대표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독일법에 따라 회사 경영에 참여할 정도로  권한이 막강한 조직입니다. 폴크스바겐그룹 경영진을 감독하는 감독이사회의 구성 인원이 20명인데 그중 절반이 이 직장협의회 관련 인물(7명 회사 내부, 3명 외부 노동조합 관계자)들일 정도입니다.

 

당시 노조 대표이자 감독이사 핵심 5인 중 한 명이었던 베른트 오스터로는 헤르베르트 디스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베른트 오스터로와 직장평의회에 흔한 말로 찍힌 겁니다. 코로나19가 터진 직후 배당금 발언 (헤르베르트 디스는 100억대 연봉을 받았는데 자신의 배당금 포기는 최후의 수단이고 우린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음)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또 신형 골프 광고가 인종차별 논란에 빠지며 경영자로서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역시 노조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천 명의 직원들이 모인 화상회의에서 회사 내부 얘기가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다며 그 배후를 감독이사회에 두는 비판적 발언을 한 것이 갈등의 직접 발화지점이 됐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그룹 회장과 폴크스바겐 사장 자리를 겸하고 있던 헤르베르트 디스는 그룹 회장 업무에만 전념하는 쪽으로 감독이사회와 타협을 했고, 이후 다시 회사 경영이 정상화되면서 회장직 연장까지 이뤄내는 등, 앞날이 순탄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베른트 오스터로에 이어 다니엘로 카발로 직장평의회 대표와도 갈등이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구조조정 차원의 직원 해고안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려다 그렇지 않아도 직장평의회와 갈등을 겪고 있던 헤르베르트 디스가 결국 그들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라는 게 대체적으로 독일 언론이 보는 이번 사임 배경의 핵심입니다.  

 

헤르베르트 디스는 결국 2025년까지 보장된 줄 알았던 자리에서 쫓겨나듯 물러나게 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9월부터 포르쉐 CEO 올리버 블루메가 그룹 전체를 이끌게 됐습니다. 50대 중반의 젊은 경영자 올리버 블루메는 아우디 수습생으로 그룹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폴크스바겐그룹 내 여러 브랜드를 돌며 포르쉐에 안착,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올리버 블루메 포르쉐 CEO / 사진=포르쉐

 

디젤 게이트로 마르틴 빈터코른이 회장직에서 물러났을 때 당시 포르쉐를 이끌던 마티아스 뮐러가 그룹을 이끌었듯, 올리버 블루메는 포르쉐 CEO로는 두 번째로 그룹 전체를 지휘하는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 젊고, 합리적이며, 직원들과의 갈등도 크지 않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에 이번 회장 선임은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재무장관과 올리버 블루메 회장의 커넥션?

하지만 현재 올리버 블루메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최근 독일 최대 타블로이드지 빌트가 독일 연방 재무장관인 크리스티안 린트너가 올리버 블루메와 협력해 E-연료가 연립정부의 공식 협의사항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의혹을 보도했기 때문인데요. 올리버 블루메는 회의 중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이 지난 며칠 동안 거의 매시간 (E-연료 협의와 관련한) 정보를 알려주었다.’고 자랑을 했다는 것이 (내부 소스를 받은) 빌트의 주장입니다.

 

한 자동차 기업의 회장과 독일 정부를 이끄는 재무장관이 특정 사안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는 의혹으로 현재 린트너 장관과 블루메 회장은 여론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관료와 기업인의 커넥션에 민감한 독일 사회라는 점에서 이 의혹은 여러 언론으로부터 게이트로 분류되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포르쉐는 아시다시피 전기차뿐만 아니라 E-연료에 가장 적극적인 자동차 기업 중 하나입니다. 물과 이산화탄소에서 생산되는 합성연료인 E-연료는 석유 한 방울 쓰지 않고 내연기관이 만들어내는 배출가스를 놀라운 수준까지 떨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EU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합의했죠. 전기차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E-연료가 정치적으로 또 하나의 화석연료 대안으로 선택된다면 E-연료를 적극 밀고 있는 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E-연료 가치를 알리기 위해 별도의 홍보자료를 만들 만큼 적극적인 포르쉐도 그렇게 이익을 얻는 기업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왜 린트너와 블루메의 접촉 의혹이 독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지 이해가 되셨을 겁니다.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은 친기업 정당인 자유민주당(FDP)을 이끌고 있는 40대의 젊은 정치인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포르쉐를 좋아하는 포르쉐의 오너이기도 하죠. 이런 배경은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합니다. 물론 린트너 장관은 이런 언론의 의혹 제기에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크리스티안 린트너 장관 / 사진=위키피디아 & Olaf Kosinsky

 

하지만 올리버 블루메는 빌트 암 존탁과의 인터뷰에서 내부 회의 때 내가 잘못된 단어를 선택했다.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이 점은 유감이다.’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부정을 한 린트너 장관과 달리 뭔가 둘 사이에 교류가 있긴 있었다는 그런 뉘앙스로 들릴 만한 그런 인터뷰였습니다.

 

만약 이 의혹이 의혹으로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종의 부정한 커넥션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올리버 블루메는 경영인으로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폴크스바겐그룹은 다시 새로운 회장을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직까지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나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언론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맞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시작하려는 폴크스바겐그룹엔 좋지 않은 일이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의혹으로 E-연료가 갖는 장점까지 퇴색되어 논의의 장 뒤편으로 하릴없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