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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왜건 사는 사람 이해가 안 가요”라고 말하는 것

자동차와 관련한 글을 오래 쓰다 보니 반복적으로 보고, 듣게 되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기억나는 대로 떠올려 보면, “왜건 사는 사람들 이해가 안 가요.” “ 독일에서 프랑스 차를 왜 사나요? “ “ 독일 애들이 미쳤다고 현대나 기아 차를 삽니까?” 등입니다.

독일에서 살고, 독일 차를 중심으로 유럽 차 이야기를 하고, 가끔 한국 차에 대해 이야기도 하게 되다 보니 이런 표현들을 블로그 글이나 칼럼 등에서 많이 보게 되는 듯합니다. 물론 제가 그런 댓글이 달릴 만한 소재로 글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독일인들이 한국 차를 왜 삽니까?

사진=현대자동차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독일산 자동차를 놔두고 현대나 기아 등의 한국 차를 사는 사람이 있겠냐는 의견에 대한 것입니다. 이건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이야기인 듯한데요. 하나는 그냥 현대자동차가 싫은 겁니다. 자동차 회사가 보여준 태도 등에 실망한 사람들이 현대나 기아와 관련한 소식이 나오면 그게 뭐가 됐든 비판, 혹은 비난을 하는 것이죠.

또 하나는 말 그대로 벤츠나 폴크스바겐의 나라에서 정말 한국산 자동차를 사겠느냐는, 액면 그대로 의문을 품는 사람들입니다. 독일 연방자동차청(KBA)의 최근 자료를 한 번 보죠. 2019 1월부터 11월까지 독일에서 팔린 현대 자동차는 총 10개 모델 118,109대로 3.6%의 점유율을 보이는 수준입니다. 기아는 현대보다 적어서 12개 모델이 64,011대가 팔렸습니다. 점유율은 1.9%.

두 회사 점유율을 합치면 5.5% 수준입니다. 절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닛산이 1.0%, 푸조가 2.0%, 르노가 3.6%, 토요타가 2.4%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작은 차 중심으로 가격 좋고(상대적으로 기본 사양이 풍부), 보증 기간 좋다 보니 많이 팔립니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성능이나 디자인도 좋아졌습니다. 인정할 건 해야죠. 문제는 여전히 독일 소비자의 인식은 가성비에 더 가 있다는 점인데요. 이런 인식을 바꾸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가성비 때문이든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든, 어쨌든 독일에서 독일 사람들이 한국산 자동차를 생각보다는 많이 사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런 질문, 이런 비판은 더는 안 나왔으면 합니다. , 판매가 어찌 됐든 브랜드, 기업에 애정을 주지 못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것,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 있는 것이니 기업도 이런 비판적 소비자의 태도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무조건 억지 부리고 말도 안 되는 얘기로 현대차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독일에서 프랑스 차를 왜 사나요?

사진=푸조

두 번째는 독일에서 독일 자동차를 놔두고 다른 나라 차를 살까? 산다면 얼마나, 왜 사는 걸까 하는 점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판매량이 많은 프랑스 브랜드는 르노로, 11월까지 독일에서 총 120,128대가 팔렸습니다. 푸조는 66,631, 시트로엥은 55,058대입니다. 과거에 비하면 판매량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프랑스 자동차는 독일에서 잘 팔려나갑니다. 피아트도 있고 비록 독일 브랜드 산하에 있지만 스페인의 세아트, 체코의 스코다도 있습니다. 르노 계열의 저가 브랜드 다치아는 71,891대를 같은 기간 팔았을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독일산 자동차만 살 거로 생각하는 분들은 이런 점을 아셔야 합니다. ‘독일 차는 독일에서도 비싼 차다.’라는 것을요. 실제로 아우디 점유율은 7.5%, BMW 7.6%, 벤츠는 9.5%, 포르쉐가 0.9%, 국민차라는 폴크스바겐이 18.6%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 합쳐야 44.1%입니다. 절반이 안 되죠. 여기에 법인과 공장 등이 독일에 있는 오펠과 포드를 독일 자동차로 친다고 해도 총 58% 수준입니다.

44% 수준밖에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가격 때문입니다. 보증 기간도 오랜 세월 2년으로 통일되었다가 최근 BMW 3년으로 무상보증 기간을 늘렸을 정도로 아주 독일 내에서 보증 기간에 독일 브랜드는 박한 편입니다. 물론 가격만 가지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 이태리 출신은 자국의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향이 좀 더 강합니다. 또 국적 상관없이 오로지 차에 대한 자신의 취향과 판단에 따라 독일 차를 살 수 있음에도 다른 브랜드를 선택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것이죠.

왜건을 왜 타는지 이해가 안 가요

사진=아우디

왜건은 유럽인들이 가장 아끼는 가족용 세단의 하나입니다. 해치백과 왜건을 빼고 유럽, 독일 자동차 시장을 말할 수 없습니다. 왜건은 실용성, 주행 안락함, 주행 안전성 등, 여러 면에서 여전히 SUV보다 낫습니다. 왜건 트렁크 이용하는 게 얼마나 편한지는 경험해 본 이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알려줄 겁니다. 문제는 스타일인데요. 하긴, 예전 왜건 모델들 지금 보면 어떻게 저렇게 생겼을까싶어 보이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왜건의 디자인 밸런스가 너무 좋아졌습니다. 옛날의 그 직사각형이 아니란 거죠.

왜건을 짐차 정도로 여전히 이해하고 있는 분,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안 이뻐 보인다는 분도 유럽에서 1년만 살아보면 어느 사이엔가 왜건이 이쁘게 보일 겁니다. 환경에 의해 우리가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는 멀리 가지 않아도 저부터가 경험하고 있고 간증(?)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도 한국에 있을 때에는 왜건 이쁜 줄 몰랐던 이였으니까요.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가 오늘 이런 이야기를 쭈욱 드린 이유는 누군가 어떤 자동차를 선택했을 때 가급적이면 그 선택을 존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상대가 내게 의견을 구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을 아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의견을 내도 타인의 선택에 대해 너무 험한 말로, 마치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렸다는 듯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겁니다. 누군가는 폴크스바겐보다 프랑스 푸조가 더 좋을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BMW의 스포티함보다 고장 잘 난다는 알파 로메오의 주행 감성이 더 좋을 수 있는 겁니다.

SUV의 탁 트인 시야가 너무 좋지만 롤링이 싫은 분도 있고, 안락함과 실용성이 겸비된 왜건에 더 매료될 수 있습니다. 큰 차보다 작은 차를 좋아할 수도 있고, 노치백보다 해치백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각자의 선택, 각자의 취향이 있는 것이고 저는 이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내 생각과 다른, 내 판단과 다른 누군가의 결정이 조금 이해가 안 가더라도 상대의 선택을 그것대로 바라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