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프랑크푸르트모터쇼로 잘 알려진 독일 ‘국제 자동차 전시회(Internationale Automobil-Ausstellung)가 큰 변화를 맞습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 이사회가 2021년부터는 프랑크푸르트가 아닌 독일 남부 뮌헨에서 모터쇼를 열기로 한 것인데요. 총 7개 도시가 참여 의사를 밝혔고, 그중 베를린, 함부르크, 그리고 뮌헨이 최종 후보에 올라 치열하게 유치전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독일 시각으로 3월 3일 저녁 뮌헨이 최종 선정됐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모터쇼 현장 / 사진=IAA
69년 만에 모터쇼 빼앗긴 프랑크푸르트
파리오토살롱과 격년(짝수는 프랑스, 홀수는 독일)으로 열리는 독일 모터쇼는 1897년 한 호텔에서 8대의 자동차를 전시하는 것으로 출발했습니다. 베를린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지던 모터쇼는 2차 세계대전 후인 1951년, 서독 프랑크푸르트로 옮겨가게 되죠.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린 경제 성장과 함께 독일 자동차 산업 역시 크게 발전합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모터쇼’는 그런 독일 자동차 산업의 빛나는 발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협회는 지난해를 끝으로 메세 프랑크푸르트(Messe Frankfurt)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년에 수십 개의 박람회가 열리는 곳이지만 도서박람회와 함께 프랑크푸트트를 전 세계에 알린 일등 공신이 프랑크푸르트모터쇼였기 때문입니다.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도시 브랜드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프랑크푸르트는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걸까요?
간판을 내린 이유
이유를 알기 위해선 모터쇼 때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9월 12일부터 22일까지 열흘 동안 프랑크푸르트모터쇼 현장을 찾은 관람객은 약 56만 명으로 2년 전인 2017년의 81만 명, 그 전인 2015년의 93만 명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미국 모기지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2009년에도 85만 명이나 찾던 프랑크푸르트모터쇼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사진=IAA
우선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모터쇼 불참을 선언한 것이 영향을 줬습니다. 전통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페라리, 알파 로메오 같은 스포츠카 브랜드는 물론 포드, 볼보, 푸조와 같은 유럽 브랜드, 닛산, 마쯔다, 토요타와 같은 일본 업체 등, 스무 개가량의 완성차 업체가 불참했죠. 물론 독일 브랜드만으로도 공간을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더 다양한 브랜드의 더 많은 자동차를 보고 싶어 하는 관람객의 욕구를 완전히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전기차와 콘셉트카 중심의 전시회 분위기도 흥행을 힘들게 한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전기차가 빠르게 성장 중이기는 하지만 엔진 자동차 시장과 아직 비교할 수준은 아님에도 전기차 중심으로 모터쇼가 구성된 것이 흥미를 덜 느끼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IAA
또 하나의 흥행 실패 요인으로는 모토쇼 개막일부터 시작된 대규모 환경 시위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린피스와 독일의 환경 단체 DUH, 그리고 자전거 클럽 등이 주도한 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2만 5천 명이 참여했습니다. 이산화탄소 감축, 그리고 ‘STOP SUV’ 등의 구호를 외치며 모터쇼 역사상 가장 큰 시위가 벌어진 것인데요. 행사 그 자체보다 독일에서는 이 시위에 대한 보도가 더 많았을 정도로 큰 이슈였습니다.
이처럼 안팎의 여러 문제를 겪은 프랑크푸르트모터쇼는 결국 흥행 대실패(?)로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시위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모터쇼 위기론은 이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에 대한 막대한 투자, 또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엄청난 벌금, 브랜드 개별적 경영의 어려움 등이 뒤섞이며 제조사들은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고, 대신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가전, 전자 박람회 참여나 SNS를 통한 홍보 등에 집중하는 것으로 지출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모터쇼 개막일 시위대 모습 / 사진=DUH
뮌헨모터쇼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렇다 보니 독일자동차산업협회는 기존 방식을 탈피하지 않는다면 모터쇼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협회 전무 이사인 마르틴 쾨르스는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개념, 새로운 방향, 새로운 도시’가 필요하다고 밝혔는데요. 신차를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이동성(MOBILITY)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모터쇼가 열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시 교통은 점점 네트워크, 지능화되고 있고, 자동차는 계속 디지털화되고 있는데 모터쇼가 옛날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시대 흐름과 맞지 않다는 것이 독일 협회의 판단으로 보입니다. 이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도시를 찾는 과정이 있었고 결국 뮌헨이 선택됐습니다. 협회 대변인은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점, 접근성이 좋은 점, 행사를 펼치기에 매력적인 장소이며, 또한 뮌헨에 많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것 등을 경쟁력으로 꼽았습니다.
뮌헨 올림픽 주경기장과 공원, 그리고 멀리 보이는 BMW 본사 / 사진=Michael Siebert
모터쇼 기간도 열흘에서 일주일로 줄였고, 뮌헨의 대표적 축제 옥토버 페스트와 연계해 (옥토버 페스트 일주일 전 개최) 주목도도 높일 계산입니다. 또 전시 공간 자체를 크게 하기보다는 전시장을 찾는 과정부터 첨단 교통 시스템을 적용하는 등, 도시 그 자체가 박람회 공간으로 활용되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당장 이런 결정에 화답이라도 하듯 BMW는 모터쇼 기간 본사 건물에 BMW 로고 대신 모터쇼 로고를 새겨 넣고 싶다는 뜻을 전했는데요.
1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자동차 박람회는 변화를 택했습니다. 시대 흐름에 대한 응답이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입니다.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결정은 어떤 형태로든 다른 국제 모터쇼에도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모터쇼의 미래는 밝을까요? 예전의 인기와 영광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요? 뮌헨모터쇼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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