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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테슬라에 밀리면 어쩌지?' 폴크스바겐 회장의 고민

전기차 시장의 3 대장, 또는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곳이라고 한다면 미국, 중국, 그리고 유럽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은 그간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성장이 둔한 편이었죠. 그런데 요즘 이곳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보통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약진입니다.

1분기 주요 자동차 시장의 전기차 판매 현황을 조사 분석한 ‘PwC and Strategy&’ 20201분기 전기차 판매 리뷰를 보면 중국의 경우 보조금 삭감,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판매량은 53%나 줄어 135,000대가 판매됐습니다. 미국은 배터리 전기차가 15% 성장한 반면 플러그인과 하이브리드 모델은 각각 8%, 13% 줄었습니다.

그런데 유럽은 주요 5개 시장(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만 해도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8%가 증가해 총 313,000대가 팔렸습니다. 내연기관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 상황은 더 아찔한데요. 1분기에만 신차 판매의 16.3%를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그리고 배터리 전기차 등이 담당했습니다. 역대 최고 기록입니다.

모델 3 / 사진=테슬라


3개 주요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TESLA 모델 3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미국과 유럽은 2분기 이후 영향을 받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전기차가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3개 거대 시장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전기차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테슬라 모델 3인데요. 전기차가 위축된 중국에서도 모델 3는 오히려 점유율을 30%까지 늘렸으며, 미국에서 배터리 전기차의 점유율이 늘어날 수 있었던 것도 모델 3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독일 브랜드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에서도 모델 3는 판매 1위를 달성하는 등,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테슬라가 가장 경계하고 긴장해야 할 곳이지만 모델 S에 이어 지난해 모델 3로 다시 한번 큰 성공을 유럽에서 거두었습니다.

카세일즈베이스닷컴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작년 유럽에서 테슬라 모델 3는 총 95,168대가 팔려 전기차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뒤를 르노 Zoe(45,129)와 닛산 리프(31,792), 그리고 폭스바겐 e-골프(28,710) 등이 이었는데요. 2위 그룹과 차이가 크죠? 2020년 시작은 조금 좋지 않습니다. 1, 2월 두 달만 놓고 본다면 르노 Zoe 16,048대로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했고, 닛산 리프가 5,626대로 2, 그리고 테슬라 모델 3 5,013대로 3위를 차지했습니다.


폭스바겐 회장 말속에 묻어나는 테슬라 경계와 부러움

이처럼 모델 3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누적 판매량 기준으로 보자면 유럽 1위는 여전히 르노 Zoe입니다. 모델 3가 등장해 기세가 꺾일 줄 알았으나 판매량을 크게 늘리며 쭉 치고 나가는 모습입니다. 이쯤이면 신경이 쓰일 만도 한데 폭스바겐은 Zoe가 아닌 테슬라 모델 3를 바짝, 아주 바짝 신경 쓰는 모습입니다.

최근 독일 자동차 경제지 아우토모빌보헤는 폭스바겐 회장 헤르베르트 디스가 사내용 웹캐스트를 통해 테슬라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한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따라잡는다는 말만 보면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올 1월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테슬라를 어느 시점에서 추월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까지 했으니까요.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 / 사진=VW

자동차 만들기라는 기본에 있어 테슬라는 쟁쟁한 브랜드가 포진한 폭스바겐 그룹의 경쟁 상대라 할 수 없고, 그러니 저 거대한 회사가 나름의 근거, 어떤 전략이 있으니 큰소리를 치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회장 발언을 보면 또 그게 아닌 듯 합니다. 헤르베르트 디스는 테슬라가 지속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2주마다 테슬라 운전자들에게 개선된 속성의 새로운 운전경험을 제공하고 있다며 그들의 시스템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모델 3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주행 관련 정보 / 사진=테슬라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이것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계속 애를 먹고 있는 폭스바겐 상황을 생각하면 그의 발언이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번 글을 통해 전했듯 폭스바겐은 전용 플랫폼을 통해 내놓은 자신들의 첫 번째 전기차 ID.3가 소프트웨어 문제로 제때 출시되지 못하는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테슬라 모델 3의 진정한 대항마로 기대받던 모델이 나오기도 전부터 소프트웨어 문제로 주춤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게 ID.3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은 웹캐스트를 통해 소프트웨어 부서의 분발을 촉구했습니다. 테슬라 따라잡을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도 보입니다. 과연 요구대로 해법이 즉시 나올 수 있을까요?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한 그의 발언을 보면 자신도 이게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합니다. 전기차 브랜드로 거듭나겠다며 야심 차게 밝힌 전동화 계획은 이렇듯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발목을 잡히고 있습니다.


자동차, UX 높이는 것이 중요해졌다

사진=콘티넨탈

자동차는 그동안 기계적 안전, 물리적 안락함, 주행 성능, 가격이 주는 경제성, 그리고 디자인 등이 시장 생존을 위한 핵심 요소로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경우에서 보듯 앞으로 자동차는 첨단 기술에 의해 소비자 사용 만족도를 높이는 부분까지 신경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공지능이 자동차 상태를 스스로 점검 관리하고, 증강현실을 이용한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며, 자동차와 자동차가, 자동차와 도로 인프라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안전하고 쾌적한 운전이 가능한 최적의 값을 뽑아내는 등, 우리가 상상하던 것들이 앞으로는 도로 위에서 구현될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누가 실수 없이 잘 준비하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용자(User) 요구에 따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능도 마련해야 합니다. 경쟁 브랜드보다 조금이라도 더 재밌고 새로운 오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작동법은 누구에게나 쉽도록 직관적이어야겠죠. 스마트폰 업데이트에 익숙하고, 그걸 통해 새로운 기능 익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고객들에게 어울리는 그런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연비 경쟁, 디자인 경쟁, 성능 경쟁, 그리고 이젠 디지털 경쟁입니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회장은 지금 이 경쟁에서 밀리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