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유럽이 더 그렇죠. 이렇다 보니 웬만한 유럽 관련 뉴스는 묻힐 수밖에 없는 분위기인데요. 하지만 아무리 바이러스로 어수선하다고 해도 북유럽 두 나라에서 날아온 조금 특별한 교통사고 관련 소식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헬싱키 110년 만에 교통사고 보행자 사망 제로
독일의 종합 주간지 슈테른은 지난달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한 보행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 현지 영문판 헬싱키 타임즈에 실린 관련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2019년 헬싱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총 3명으로 2명은 오토바이 이용 중, 한 명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안타깝게 사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헬싱키 시내 전경 / 사진=Ralf Roletschek
헬싱키 경찰에서 집계한 자료도 공개했는데요. 지난해 이 도시에서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한 사람은 총 400명이었고 보행자가 8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보행자 사망이 없었던 겁니다. 정확한 통계가 시작된 1960년 이후 처음이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간대를 더 늘려보면 1908년 이후 110년 만의 일이라는 게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설명이었습니다.
참고로 헬싱키는 맞닿은 주변 도시 포함 광역권 인구가 약 130만 명 정도 됩니다. 우리의 대전시와 비교하면 인구수는 약 10~15만 명 정도 적고, 인구밀도는 대전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핀란드의 이웃이죠? 노르웨이에서도 의미 있는 뉴스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오슬로, 교통사고 사망자 1명
자전거 교통사고 사망자 0명
노르웨이는 전기차의 천국이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세계에서 가장 적은 곳 중 하나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2016년 인구 10만 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2.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스위스(2.7명)와 스웨덴(2.8명)이 바로 뒤를 따랐고, 조금 떨어진 곳에 독일/일본(4.1명)이 있었습니다. 세계 평균 18.2명과 비교해 유럽 평균인 9명도 낮은 편인데 그 유럽에서도 노르웨이는 훨씬 더 낮았던 겁니다. 참고로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는 9.8명입니다.
이런 노르웨이에서 올해 초 무척 의미 있는 자료가 공개됐는데요. 2019년 수도 오슬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1명이었습니다. 인구 60만 명의 도시에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1명밖에 나오지 않다니! 이 소식은 빠르게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노르웨이 전역에서 자전거를 타는 15세 이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청소년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슬로 시내 / 사진=Chris Nyborg
여러 요인이 만들어낸 결과
핵심은 제한속도 낮추기?
독일 언론의 관심이 상당했습니다. 독일 역시 교통사고 사망자가 적은 편이지만 많은 언론이 자국 중앙 및 지방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언론과 유럽 교통안전위원회(ETSC)와 같은 기관에서 이 소식을 다루며 공통으로 언급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한속도입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최고제한속도를 낮춘 것이 무척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본 것입니다.
유럽 교통안전위원회는 헬싱키의 사례를 그림으로 설명하기도 했는데요. 헬싱키 많은 도로가 최고제한속도를 시속 50km에서 시속 30km로 낮췄고, 그것과 비례해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게 아니겠냐는 의견이었습니다. 오슬로 역시 교통량을 줄임과 동시에 제한속도를 낮춘 게 효과를 보았다고 ETSC는 분석했습니다.
헬싱키 도시 제한속도 변화도 / 출처=ETSC 트위터
최고 속도 30km/h 제한 구간 계속 늘어날 듯
최고제한속도는 요즘 도로 교통 정책의 주요 아젠다(과제)의 하나입니다. 지난 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세계보건기구 주최로 ‘도로 안전에 관한 3차 세계 장관 회의-글로벌 목표달성 2030’이라는 긴 제목의 회의가 이틀에 걸쳐 열렸습니다. 세계 80개 나라 약 1천 7백 명의 교통 관련 관료가 모인 회의에서 2030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현재의 절반까지 줄이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여기서 나온 선언문에는 18개의 합의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중 과속 방지를 위해 법 집행을 강화하고, 보행자와 차량이 함께 있는 도시의 이면도로에서는 최대주행 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하는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최고제한속도를 낮추는 게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는 것은 물론 기후변화와 대기 질 개선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이 스톡홀름 선언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시속 30km 구역을 계속 넓히려는 세계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실제로 ‘30존’을 운용하고 있는 독일 베를린의 경우 해당 구간에서 교통사고가 10% 줄었고 질소산화물 배출량도 최대 29% 줄었다며 계속 구간을 늘릴 계획입니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의 여러 도시가 블록 전체, 혹은 일부 구간을 시속 30km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무제한 구간인 아우토반의 속도제한 요구와 강하게 연결돼 있기도 합니다.
사진=픽사베이
우리나라도 속도 낮춘다!
우리도 속도를 줄이는 것에서는 예외가 아닌데요. 지난 연말 서울시는 어린이보호구역과 생활도로(이면도로)의 최고제한속도를 30km/h로, 그 밖의 일반도로는 시속 60km에서 50km/h로 낮추기로 하고 이를 공개했습니다. 교통안전공단은 그렇게 해도 시청에서 잠실까지는 약 4분, 봉천에서 양재까지는 2분 정도만 더 시간이 걸린다며 큰 불편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속도를 낮춤으로써 교통사고 사망 확률이 낮아집니다. 또 환경 개선으로 얻게 되는 사회적 이익이 큽니다. 환경과 보건, 그리고 안전이라는 세 가지 시대적 가치를 거부할 만한 명분도 마땅치 않은 게 현실입니다.
서울 도로 풍경 / 사진=이완
다만 우리나라 대도시 도로는 유럽과 달리 차도 중심의, 그것도 다차선 중심의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틀 속에서 모든 도로, 모든 시간대에 일괄 적용했을 때 부작용 없이 제도가 안착할 수 있을지 염려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자동차 제한속도 낮추려는 움직임은 한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유럽 여러 도시는 시속 30km 구간을 더 확대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중입니다.
미래의 도시는 자동차가 아닌 보행자와 자전거, 그리고 대중교통 중심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상은 그에 맞게 제도와 시스템을 시나브로 변화시키고 있고요. 우린 이처럼 이동성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혼란스러운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도시를 가득 채운 자동차의 질주, 그 빛나는 자동차 주연의 시대가 서서히, 아주 서서히 저물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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