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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치고 나가는 독일, 치고 들어온 테슬라 모델 3

유럽은 2015년부터 자동차 연평균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130g/km을 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규정은 2021년부터 더 강화되죠. 이때부터는 대당 평균 95g/km를 넘어가면 안 됩니다. 넘기면 어떻게 될까요? 자동차 판매 대수에 95유로를 곱해 벌금으로 물게 됩니다.

이 기준대로라면 현재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조 단위의 벌금을 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2030년까지 2021년 기준의 37.5%,  그러니까 이산화탄소 평균 배출량을 59g/km까지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무겁고 큰 차, 그러니까 SUV 같은 자동차가 많이 팔리는 바람(?)에 오히려 전년보다 평균 CO2 배출량이 늘어 버렸습니다. 거꾸로 가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디젤차 판매량 감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에서 장사를 해야 하는 자동차 회사들은 이산화탄소 줄이기가 제1의 생존 과제가 돼 버렸습니다.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배터리 전기차와 수소전지차 등이 일반화되는 것이 가장 좋은데, 현재는 발전이 더딘 수소전기차 쪽보다는 배터리 전기차 쪽에 제조사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사진=볼보

전기차, 치고 올라가는 독일

유럽연합이 이산화탄소 감축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전기차의 판매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습니다. 2009년까지 유럽 내 배터리 전기차 누적 판매량은 고작 3,62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기차는 남의 이야기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10년 만에 세상이, 아니 유럽의 태도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2019년까지 누적 판매량은 배터리 전기차가 총 647,778,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역시 626,032대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도로를 누비는 유럽의 전기차는 1백만 대 벽을 넘을 수 있게 됐습니다.

누적이 아닌, 연도별 판매량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그 증가세는 더 두드러지는데요. 2009년 배터리 전기차는 유럽에서 29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단 2대만 팔렸습니다. 그런데 2019년에는 배터리 전기차가 238,773대가 팔려나갔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도 115,574대나 판매됐습니다. 10년 전 297대였던 것이 10년 후에는 354,347대까지 늘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판매를 주도한 몇 나라 중 독일이 눈에 띕니다.

사진=아우디

유럽연합 대체 연료 관측소(EAFO)의 자료에 따르면 유럽에서 전기차(배터리+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가장 많이 팔린 곳은 독일로 지금까지 총 265,979대였습니다. 영국(247,492), 프랑스(208,176), 네덜란드(173,438), 스웨덴(105,588) 등이 그 뒤를 이었죠. 그런데 2019년 한해만 놓고 보면 차이는 더 큽니다. 독일에서 지난해 새롭게 등록된 전기차는 94,743대로 2위 프랑스(53,440)를 크게 따돌렸습니다.

<2019년 유럽 전기차 판매량 상위 5개국>

1 : 독일 (94,743)

2 : 프랑스 (53,440)

3 : 네덜란드 (43,599)

4: 영국 (33,263)

5 : 스웨덴 (28,581)

 다만 2019년 전체 신차 대비 전기차의 비중으로 따지면 네덜란드가 10% 1위였고 스웨덴이 9% 2, 핀란드가 6% 3위를 차지했습니다. (참고로 전기차 점유율이 압도적인 노르웨이는 EU에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2018년 독일에서 팔린 전체 전기차가 66,279대였으니 1년 사이에 30%나 증가하는 등, 빠르게 전기차 시장이 독일에서 형성되고 있습니다.

전기차에 관심이 높은 메르켈 정부 / 사진=VW

독일이 이렇게 전기차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가 많아졌고, 그 덕에 선택지가 늘어난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높은 사회적 분위기가 자동차 소비 패턴에 어느 정도 변화를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정말 빠르게 충전 인프라가 늘었는데 이는 소비자의 심적 부담을 더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 전기차 시장 전망은 매우 밝습니다. 올해부터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인데요. 폭스바겐의 전기차 ID. 3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질 만한 자국산 전기차가 쏟아질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언론도 전기차 띄우기에 한창입니다. 독일 자동차 관련 뉴스의 상당 부분이 전기차, 친환경 차 등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엊그제 슈피겔은 독일 자동차 분석 기관 CAM의 자료를 빌려 독일이 세계에서 세 번째 전기차 대국이 되었으며, 주춤한 미국과 중국을 올해도 숨가쁘게 추격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ID. 3 / 사진=VW

여기에 더해 배터리 전기차는 물론 수소전기차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며 독일 언론은 연방 정부를 압박하는 중입니다. 정부도 구체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50여 개 수준의 수소 충전소를 빠르게 늘려갈 예정입니다. 독일 전기차 시장은 큰 틀에서는 배터리 전기차가 주도하고 수소전기차가 따라가는 그런 모양새로 앞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큽니다.

함부르크에 있는 수소충전소 / 사진=이완


치고 들어온 테슬라 모델 3

독일이 지난해 유럽 전기차 시장의 강국으로 빠르게 성장했다면 전기차의 경우 테슬라 모델 3가 유럽에 큰바람을 불러일으킨 한해였습니다. 그동안 유럽의 전기차 시장은 르노 조이(Zoe)와 닛산 리프의 주도로 달려왔습니다. 여기에 BMW i3와 폭스바겐의 e-골프, 그리고 비싼 가격에도 잘 팔려나간 테슬라 모델 S등이 함께 시장을 견인했죠.

<유럽(EU) 누적 판매량 기준 전기차 TOP 10>

1 : 르노 조이 (153,766)

2 : 닛산 리프 (109,924)

3 : BMW i3 (59,538)

4 : 테슬라 모델 S (55,752)

5 : 테슬라 모델 3 (54,622)

6 ; 폭스바겐 e-골프 (40,619)

7 : 스마트 포투 ED (33,982)

8 : 기아 쏘울 EV (20,559)

9 : 테슬라 모델 X (20,267)

10 : 현대 코나 전기차 (18,652)

기타 : 124,640

유럽에서 누적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는 Zoe / 사진=르노

순위에 한국산 전기차가 두 대나 이름을 올린 게 눈에 들어올 텐데요. 유럽에서는 5위를 차지한 테슬라 모델 3가 지난해 특히 화제였습니다. 유럽에 들어온 지 채 1년도 안 돼 5만 대 이상을 팔아치웠기 때문이죠. 2019년 한 해 동안 유럽에서 판매된 전기차 순위를 보면 모델 3가 얼마나 활약했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2019년 유럽 전기차 판매 순위>

1 : 테슬라 모델 3 (54,611)

2 : 르노 조이 (37,943)

3 : BMW i3 (24,044)

4 : 닛산 리프 (23,506)

5 : 미쓰비시 아웃랜더 PHEV (20,376)

6 : 현대 코나 전기차 (16,526)

7 : 폭스바겐 e-골프 (16,353)

8 : 스마트 포투 ED (10,150)

9 : 미니 컨트리맨 PHEV (9,401)

10 : BMW 225xe 액티브 투어러 99,021)

기타 : 132,416

모델 3 / 사진=테슬라

품질 문제, 고객 응대 논란 등으로 말이 많은 테슬라이지만 그럼에도 유럽 시장에서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적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가치를 만드는 데 모델 S가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SUV 붐과 함께 모델 X도 선전을 했습니다. 여기에 가격 부담이 훨씬 덜한 대중적인 모델 3는 테슬라의 영역을 한 단계 더 넓혀 놓을 게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테슬라는 긴 호흡으로 유럽 시장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유럽, 그중에서도 자동차 시장의 강자인 독일에 두 번째 해외공장을 건립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현지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유럽이 테슬라 전기차 사업에 아주 이상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유럽 시장에서 작은 신생 기업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테슬라는 이미 좋은 이미지, 브랜드 가치를 유럽에서 만들어 놓은 상태입니다. 이렇게 한 번 새겨진 이미지는 쉽게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느 곳보다 전기차 활성화가 기대되는 인구 5억의 거대 시장에 안착한 테슬라가 적극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진=테슬라

물론 테슬라가 휘젓고 다니는 동안 바라만 봐야 했던 유럽 경쟁자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테슬라가 긴장할 부분입니다. 이전에 없던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테슬라 입장에서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전통적인 유럽 자동차 강자들과 전기차 경쟁을 펼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힘을 받고 있는 전기차 시장은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관심은 시장 규모를 키우는 동력이 될  것이고 그만큼 판매되는 전기차도 많아질 것입니다. 현재까지 유럽 전기차 시장은 악재가 거의 없는, 쾌청함 그 자체입니다. 과연  테슬라는 어떻게 성공을 올해도 이어갈까요? 아무리 봐도 그들에겐 우려보다는 기대가 더 큰 2020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