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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관련 유머 중 이런 게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은 독일에서도 혁명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고 불가능하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푯말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공공질서를 잘 따르는 독일인들의 특성이 드러난 유머가 아닌가 싶은데요. 다소 과장돼 전달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독일인들의 규칙과 법규를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은 분명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2005년 독일 아우토반 A66의 모습 / 사진=위키피디아 & Achim Engel


늘 모범 같았던 길 터주기 문화. 하지만

혹시 이 사진 보신 분 계시는지 모르겠는데요. 6~7년 전쯤일 겁니다. 긴급출동 차를 위한 길 터주기 글을 쓰면서 독일의 경우를 설명하기 위해 검색해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사진은 몇 커뮤니티로 퍼졌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중에는 '독일에서는 저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벌금을 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는 얘기도 있었죠.

하지만 당시 독일은 사고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차나 소방차, 구급차 등을 가로막는 경우 20유로의 벌금만 물면 됐습니다. 20유로면 지금 환율 기준 약 2 6천 원 정도니까 생각보다 범칙금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그러니 벌금 무서워 길을 터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교통 문화에 의해 저런 장면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급차가 출동 중인 모습 / 사진=adac

실제로 아우토반을 달리다 보면 막히는 구간에서 1차로의 차들이 최대한 좌측, 그러니까 중앙 분리대 쪽으로 밀착해 서행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만약 차가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되면 길을 터주기 어렵기 때문에 주행 단계에서부터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막히는 구간에서 이런 식의 운전을 하는 독일 운전자 모습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정체 시 레퉁스가세(Rettungsgasse, 긴급차로를 의미하는 독일 단어)를 만들어 달라는 현수막이 하나둘 걸리더니 이제는 독일 아우토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정체 시 긴급차로 만들라는 현수막 / 사진=이완


벌금 강화,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

결국 독일 중앙 정부는 2017년 긴급차량의 출동을 방해하는 운전자에게 20유로의 10배인 200유로의 벌금을 물리기로 하고 법을 개정했습니다. 2 6천 원짜리 고지서가 26만 원짜리로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성에 안 찼던 모양입니다. 새 교통부 장관이 몇 가지 사례와 함께 길 터주기 위반 벌금을 다시 320유로로 올리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우리 돈으로 범칙금이 약 42만 원으로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으로 뛰는 것입니다. 벌금만 물면 다행이죠. 벌점과 함께 1달 면허정지 처벌이 동반됩니다. 강화된 이번 개정안이 최종 단계를 아직 통과한 것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많은 독일인이 찬성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아우토반에서 사고가 난 트럭의 한 운전자가 긴급차로를 막고 있던 차들로 인해 구조가 늦어져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져 분위기는 벌칙 강화 쪽으로 더 쏠린 느낌입니다.

최근 독일 아우토반의 길 터주기 모습 / 사진=위키피디아 & Hubert Berberich

가장 먼저 이 소식을 보도했던 빌트의 온라인 설문에는 약 4 3천 명의 독자가 참여해는데 그 중 64%가 이번 개정안에 찬성했습니다. 반대는 32%.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의 조사에는 현재까지 1,794명이 참여해 '조금 과하다'라는 의견이 42%, '옳다' 28%, '더 벌금을 올려야 한다' 30%를 차지했습니다. 빌트와 다른 진보 성향의 시사주간지 슈피겔 설문에서도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될 것(50%)'이라는 의견이 '이전과 다르지 않을 것(40%)'이라는 의견보다 높았습니다.

벌금이 만능 열쇠는 아니다

하지만 벌금을 올린다고 이것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건 아닙니다. 독일의 어느 네티즌도 지적했듯, 자동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를 보호하는 모습과 서로의 안전을 위해 약속된 운전, 규칙에 따른 운전을 해야 한다는 기본이 무너지면 벌금만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늘 이야기를 드리지만 교통 문화의 발전적 변화는 면허 취득 과정에서의 올바른 교육, 지속적인 계몽, 철저한 단속과 벌칙이라는 3가지 영역이 맞물려 돌아갔을 때 이뤄질 수 있습니다. 면허 취득 과정은 소홀히 한 채 오로지 벌금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할 수 있을까요? 계속되는 계몽 과정 없이 면허 취득 과정에서의 단 한 번의 교육만으로 좋은 운전자 의식이 뿌리내릴 수 있을까요?

길 터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그림 / 사진=위키피디아 & Johannes Kalliauer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독일의 '길 터주기 위반' 벌칙 강화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독일의 면허 취득 과정은 매우 까다롭고 철저하게 이뤄집니다. 또한 정부와 언론은 물론 다양한 교통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도로 안전 늘 홍보합니다. 여기에 엄격한 단속과 벌칙이 따른다면 독일인들이 내심 자부했던 길 터주기 문화는 다시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한 것은 결국 우리나라의 교통 문제도 이런 3가지 부분, 면허 취득 프로그램 강화, 지속적인 교통안전 교육, 그리고 철저한 단속이 함께 작동을 해야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우리 도로 정말 많이 좋아졌죠. 하지만 개선될 부분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쪼록 '어떻게 하는 게  우리나라 도로를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인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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