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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현대 N을 위해 BMW M을 떠난 두 남자

지난 7월 말이었죠. 독일의 유명 자동차 서킷 뉘르부르크링에서는 현대의 고성능 브랜드 N과 관련된 행사가 열렸습니다. 유럽 쪽 자동차 미디어를 대상으로 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i30 N은 물론 곧 출시를 앞둔 i30 패스트백 N이 위장막을 쓴 채 기자들을 태우고 달렸습니다. 또 N의 미래에 대한 발표 시간도 가졌습니다. 

위장막을 쓰고 있는 i30 패스트백 N / 사진=현대자동차


그리고 이 행사에 참여한 두 명의 독일인이 특히 유럽 언론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한 명은 2015년에 현대로 스카우트된 알베르트 비어만 현대자동차 그룹 고성능차량 담당 사장이었고, 또 한 명은 2018년 3월 설립된 '고성능 자동차 및 모터스포츠 사업부'를 이끌게 된 토마스 쉐메라(Thomas Schemera) 부사장이었습니다.

알베르트 비어만 / 사진=현대자동차

토마스 쉐메라 / 사진=현대자동차


BMW M 출신이라는 공통점


그들에게는 독일인이라는 점 외에도 BMW 고성능 브랜드인 M에 몸담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비어만 사장은 만 61세, 쉐메라 부사장은 55세라는 절대 적지 않은 나이로 현대자동차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는 점도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어만 사장은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1983년에 입사해 2015년 현대로 옮기기까지 30년이 넘게 BMW 한 회사에서만 일을 했고, 쉐메라 부사장 역시 뮌헨 응용과학 대학교에서 역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1987년 BMW에 입사해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2003년 BMW 투어링카 기술 책임자 시절의 알베르트 비어만(오른쪽) / 사진=BMW


비어만 사장은 서스펜션 전문가 및 섀시 전문가로 역량을 키워왔는데, 이미 고등학생 때 직접 자동차를 조립해 타고 다닐 정도의 능력자였습니다. 독일 자동차 포털인 모터토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엔진을 제외한 모든 부품을 직접 만들어 자동차를 조립했다 이야기할 정도였죠.


쉐메라 부사장 또한 설계 엔지니어로 출발해 영업부터 딜러 개발 등, 다양한 업무를 소화했고, 현대로 옮기기 전까지 북미 지역의 BMW M 사업부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BMW M3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알베르트 비어만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2세대 M3를 독일 투어링카 마스터스(DTM)용으로 개발한 명작 E30 그룹 A의 개발에 참여했기 때문인데요. 알베르트 비어만 자신도 이 경주용 M3를 자신의 드림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DTM에서 맹활약했던 E30 그룹 A / 사진=BMW


현대자동차를 선택하게 된 이유


이처럼 BMW M의 최고 엔지니어와 M의 영업 전략을 짜던 핵심 인물이 시차를 두고 현대자동차로 옮겨온 이유는 뭘까요? 두 사람 모두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비어만 사장은 늘 운전이 재밌는 자동차를 선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가 그런 자동차 만들기에 도전할 것이라며 손을 내밀었죠. 여기에 경영진부터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있던 당시 BMW 분위기는 현대행의 보이지 않는 촉매였을지도 모릅니다.


그와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도 있습니다. 남양연구소에서 테슬라 모델 S를 분석했을 때입니다. 당시 한 연구원의 제안으로 연구소 임원이 시승을 하게 되죠. 이제 겨우 두 번째 모델을 내놓은 작은 테슬라가 만든 모델 S의 성능에 놀란 임원은 시승 후 최고 경영진에게 고성능 자동차의 필요성을 보고했습니다.


마침 독일 공대 출신의 해당 임원은 이후 비어만의 영입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알베르트 비어만이라는 고성능 자동차 전문가가 현대에 합류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고성능 브랜드의 영업 전략과 브랜드 전략을 잘 아는 토마스 쉐메라의 영입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BMW 시절 토마스 쉐메라 / 사진=BMW


쉐메라 부사장은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알베르트는 여기(현대차)에서 뭔가 큰 것(의미 있는)을 만들고 있었어요. 현대는 우리에게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커다란 자유를 줬죠. (고성능 자동차) 시장의 기초를 만드는 것부터 개성 없는 현대차를 바꿀 수 있습니다."


영국 탑기어와의 인터뷰에서 비어만 사장 역시 현대자동차에서 자신이 정말 자유롭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두 남자가 갖고 있는 실력과 경험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터전을 현대가 마련해주었고, 이것을 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엄청난 연봉이 주는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겠고요.


두 올드보이의 도전은 진행 중 

사진=현대자동차


쉐메라 부사장은 현대가 WRC나 뉘르부르크링 내구레이스, 그리고 WTCR 등의 다양한 경주 대회에 참여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젊은 고객들이 이런 레이스의 영향, 그리고 고성능 모델의 등장으로 현대차 대리점을 많이 찾게 됐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라고 봤습니다. 현대의 이런 전략은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끌어 올리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N 브랜드는 이전에 없던 색깔과 감성, 젊음을 현대자동차에 불어 넣을 수 있을까요? 그 성공 여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N 브랜드를 지켜보고 지원하겠다는 회사의 확고한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경험과 기술을 품고 있는 준비된 두 올드보이가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