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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에서 현대와 기아의 고민 '제자리 걸음'

현대자동차 그룹에 독일은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헤드쿼터, 그러니까 본부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우선 프랑크푸르트 옆에 있는 오펜바흐에는 1991년에 설립된 현대자동차의 유럽 법인이 자리하고 있는데 독일법인과 현대자동차 유럽 디자인 센터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현대와 기아를 위한 유럽 기술 연구소도 있죠.

유럽법인 전경 / 사진=현대자동차


그리고 유럽 법인에서 조금만 동쪽으로 가면  WRC 출전으로 부쩍 관심을 끌고 있는 현대 모터스포츠 법인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그 유명한 뉘르부르크링에 테스트 센터도 있어서 이곳에서 주행 테스트를 합니다. 기아 역시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 바로 옆 멋진 건물에 유럽법인과 디자인센터가 자리하고 있죠.

기아 유럽법인 / 사진=기아자동차


건물뿐만이 아닙니다. 현대자동차 유럽 디자인센터를 이끄는 센터장은 독일인 토마스 뷔르클레 씨입니다. 기아에서 출발해 이젠 현대자동차 그룹 전체 디자인을 총괄하는 페터 슈라이어 사장은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로 역시 독일인이죠. 또 고성능 브랜드 N 하면 떠오르는 알베르트 비어만 고성능 차 개발 담당 부사장 역시 BMW에서 커리어 대부분을 보낸 독일인입니다. 

페터 슈라이어 / 사진=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는 1977년 처음 유럽 시장에 뛰어든 후 지금까지 참 열심히 달려왔고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올해 처음으로 유럽에서 현대와 기아는 연간 1백만 대 판매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최근에 전해진 바에 따르면 중요한 독일 시장에서 올 상반기 기준 역대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현대가 58,982대를 팔았고 기아가 33,770대로 총 95,752대가 팔려 나갔습니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각각 10.9%, 8.4% 증가한 숫자인데요. 이쯤 되면 그간의 노력이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현대와 기아의 또 다른 고민이 읽힙니다. 


독일 땅에 엄청난 투자, 그러나 정체된 성장세


앞서 알려드린 것처럼 독일에서 상반기 기준 역대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는데요. 하지만 판매 대수가 아닌 시장 점유율로 보면 다른 그래프가 그려집니다. 현대의 경우 2012년 3.2%의 점유율을 보인 이후 6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2006년 독일 신차 시장 점유율은 1.5%였죠. 2018년 상반기는 두 배가 넘는 3.2%였습니다. 하지만 변화 추이를 보면 거기까지입니다. 딱 멈춰 있습니다.


현대차 독일 신차 시장 점유율 변화 (자료 : 독일자동차청)

2010년 : 74,287대 (점유율 2.5%)

2013년 : 101,522대 (점유율 3.4%)

2015년 : 108,434대 (점유율 3.4%)

2017년 : 108,518대 (점유율 3.2%)

2018 상반기 : 58,982대 (점유율 3.2%)


기아차 독일 신차 시장 점유율 변화 

2010년 : 36,624대 (점유율 1.3%)

2013년 : 55,654대 (점유율 1.9%)

2015년 : 55,689대 (점유율 1.7%)

2017년 : 64,068대 (점유율 1.9%)

2018년 상반기 : 33,770대 (점유율 1.8%)

현대와 기아 모두 2010년 이후 점유율이 큰 폭으로 올랐지만 이후에는 더 이상의 상승 없이 계속 머물러 있습니다. 많은 투자, 정말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는 시장임을 고려한다면 5년 넘게 점유율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걸까요?


원인 1 : 대박 모델 부재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흔히 말하는 '대박 모델'이 아직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에서 현대차의 효자 모델들이라고 하면 i20, i30, 그리고 투산 등을 꼽을 수 있을 텐데요. 세 모델 모두 좋은 디자인과 가성비 등으로 올 상반기 기준 1만 대 이상이 팔렸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대박을 터트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올 상반기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현대차 i20 / 사진=현대자동차


한 때 투산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시장에 돌풍을 일으킬 정도의 역할은 아니었으며, 대표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는 i30 역시 꾸준히 성능이 개선되고 이미지를 끌어 올렸지만 결과적으로 현재의 점유율을 지탱하는 역할 그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나 상승세가 눈에 띄지만 소형 SUV 경쟁이 심화하고 있어 이 성장세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킬링 파트(대박 모델)가 없는 것은 기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포티지가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기아를 견인하고는 있지만 상승세는 한풀 꺾인 모습입니다. 독일에서 상반기 기준 6,802대를 판매하는 데 머물고 말았죠. 현대보다 더 많은 모델을 유럽에서 팔고 있음에도 좀처럼 반전 상황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기아에겐 고민이 될 것입니다.


원인 2 : 경쟁사들의 급성장


큰 성공 모델이 없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요인을 꼽는다면 경쟁사들의 빠른 성장이 아닐까 합니다. 현대는 유럽은 물론 독일에서 스코다에 판매량이 밀린 지 꽤 됐고, 최근에는 스페인 브랜드인 세아트에도 밀리며 10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스코다와 세아트 모두 폭스바겐 그룹 산하에 있는 브랜드로, 스코다는 뛰어난 공간능력과 가성비 등으로 높은 성장을 이뤘고, 세아트 역시 빈약한 라인업을 SUV와 경차 등으로 극복하며 만년 적자 기업에서 기대하게 되는 브랜드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상승세에 자신감을 얻은 것인지 세아트가 고성능 트림 쿠프라를 독립시키기로 했다. 사진 속 모델은 준중형 SUV 아테카의 고성능 모델인 '쿠프라 아테카' / 사진=세아트


현대가 상반기 기준 독일에서 10.9%나 성장을 했다지만 스코다 (106,802대, 독일 시장 점유율 5.8%) 역시 올해도 어김없이 높은 성장(8.1%)을 했고 세아트는 16.4%나 늘어나 (61,461대) 현대를 따돌리고 말았습니다. EU로 비교 영역을 넓혀도 세아트(19.6%)와 스코다 (8.9%)의 성장세가 좋아서 이런 식이라면 내년이면 세아트가 유럽 시장에서조차 현대와 기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 독일에서 한동안 주춤하던 푸조의 높은 성장세(13.1%),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섭게 치고 올라가고 있는 르노 그룹 내 저가 브랜드 다치아(24.6%)의 놀라운 상승세도 기아 점유율에 타격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정체된 점유율 어떻게 깨야 할까?


현대와 기아에게 유럽은 한국과 달리 도전하는 시장이죠. 따라서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혜택들로 시장 공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근 5~6년 동안 두 자동차 회사의 점유율은 더 이상 상승하지 않고 있습니다. 파격적인 무상보증의 혜택과 풍부한 기본 사양 등으로 가성비 좋은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 성장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보이는 듯합니다. 


만약 현대가 현재 성장 정도에 머무는 게 아니라 더 가고자 한다면 이제 가성비나 무상보증, 그리고 디자인 등으로 만든 경쟁력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해 보입니다.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신형 유럽전략 모델 씨드 / 사진=기아


그렇다면 현대와 기아는 무엇으로 유럽 시장에서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해법은 역시 가장 크고 가장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독일 시장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멈춘 성장이 다시 진행되기 위해서는 40년 넘는 기간 동안 박혀 있는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노력이 지금보다 더 크고 과감해져야 합니다.


40년이 넘었지만, 그렇게 독일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도 현대와 기아를 잘 모르는 독일인이 있습니다. 또 여전히 무난하고 평범한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걸 깨야 합니다.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위한 대대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해질 필요가 있겠죠.


과감성. 실패에 대한 염려가 아닌, 실패해도 좋으니 한번 미친듯 달려보자는 그런 뜨거운 도전의 마음이 없다면 유럽 땅에서 이미지 개선도, 유럽인들을 마음을 사로잡을 히트 모델의 등장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 신화를 만들었던 정주영 회장의 열정과 과감성, 그 초심이 지금 현대자동차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