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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1차로 정속주행도 보복운전? 우리와는 조금 다른 독일

얼마 전 독일의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주차할 공간을 찾기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죠. 저 역시 빈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투는 듯한 모습이 보이더군요. 한 남성이 주차 칸을 차지하고 서 있었고, 그곳에 차를 대려던 다른 운전자가 그 남자와 목소리를 높였던 것입니다.


상황을 보니 서 있던 남자가 먼저 찜(?)을 했으니 못 비키겠다고 한 모양입니다. 화가 난 듯한 운전자는 한번 엔진음을 거칠게 내고는 후진을 해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승자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저 운전자 만약 후진이 아니라 저렇게 굉음과 함께 서 있던 남자 쪽으로 진행을 했더라면  뇌티궁(Nötigung)으로 감옥 갈 수도 있었다고 말이죠.


Nötigung은 독일 단어로 '강요' '강제' 등을 의미합니다. 법률 용어로는 '협박'에 해당하죠. 특히 교통, 운전과 관련되면 우리의 '보복운전'과 거의 같은 의미로 해석됩니다. 독일의 보복운전 규정이 어떤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찾아봤더니 정말로 주차 칸에 서 있던 남자를 위협할 목적으로 운전자가 차로 압박을 가했다면 큰일 날뻔했습니다.


난폭운전과 보복운전의 차이

사진=픽사베이


우리나라는 난폭운전과 보복운전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고 처벌 내용 또한 다른데요. 난폭운전은 도로교통법에 따라 다음과 같은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신호 또는 지시 위반 

중앙선 침범 

속도위반 

횡단 ∙ 유턴 ∙ 후진 금지 위반

안전거리 미확보, 급제동 금지 위반, 급제동 금지 위반

앞지르기 방법 또는 앞지르기의 방해금지 위반

정당한 사유 없는 소음 발생

고속도로에서의 앞지르기 방법 위반

고속도로, 자동차전용도로에서의 횡단 ∙ 유턴 ∙ 후진 금지 위반

여기에 설명된 9가지 중 두 개 이상의 행위를 연속으로 했거나, 아니면 하나의 행위를 지속, 반복적으로 해 다른 사람을 위협했거나 또는 위해를 가한 경우, 그리고 교통상 위험을 발생시킨 경우를 난폭운전으로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반면 보복운전은 교통법이 아닌 형법으로 처벌받고 있죠.


그렇다면 난폭운전과 보복운전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운전을 하다 보면 다른 운전자 등과 사소한 시비를 겪게 되죠. 그런데 이것을 못 참고 '고의로 상대를 위협해 공포감을 갖게 만드는 일체의 행위'는 한 번의 경우라도 보복운전으로 보고  처벌합니다.

고의로 급제동하는 것

고의로 다룬 차량과 충돌하는 것

다른 차량 앞으로 갑자기 끼어드는 것(급 차로 변경)

다른 차량을 밀어붙여 위험에 빠뜨리는 것

다른 차량의 앞을 막는 것

하차 후 다른 운전자에게 폭언을 하거나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

사진=adac


대략 이런 것들이 보복운전 행위가 됩니다. 피해가 없어도 처벌되고 피해가 발생하면 특수상해, 특수손괴, 특수폭행, 특수협박이 돼 훨씬 높은 형량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경적을 짜증스럽게 울리거나 상향등을 켜 다른 운전자를 불편하게 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죠. 


그렇다고 그런 행위를 한 운전자를 향해 급제동을 하거나 차에서 내려 욕설과 함께 흉기 등으로 위협을 하는 것은 폭력 행위일 뿐, 어떤 것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독일의 경우는 어떨까요? 큰 틀에서는 우리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도 있죠.


우리와 조금 다른 독일의 보복운전 범위


앞서 이야기를 해드린 것처럼 주차장에서 자동차로 사람에게 고의로 위협하는 것을 독일에서는 보복운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리를 찜하고 있는 게 얄밉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를 가할 듯 행동하는 건 안 됩니다. 또한 앞차와 간격을 두지 않고 바짝 붙어 계속 운전하는 것도 독일에서는 위험스러운 보복운전으로 보고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월을 방해할 목적으로 1차로에서 느리게 달리거나 아예 1차로에서 정속주행을 계속하는 경우도 보복운전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우리와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다만 의도 없이, 예를 들어 외국인이 잘 모르고 1차로에서 정속주행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교통법으로 처리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의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입니다.

독일 아우토반 / 사진=픽사베이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고속도로 지정차로제 이용법을 모르는 분들이 많죠. 만약 독일처럼 1차로 문제를 무겁게 처리한다면 얼마나 많은 운전자가 처벌될지 모를 일입니다. 그나마 독일은 철저하게 면허 취득 과정에서 교육을 한다지만 우리는 그런 것도 없으니 혼란 그 자체일 겁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화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운전대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호흡이 가파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했으면 합니다. 시동이 걸리고 바퀴가 굴러가는 순간 자동차는 우리 일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구가 된다는 것을요. 그러니 운전은 늘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합니다. 분노의 질주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