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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리콜 공포에 떠는 제조사? 말은 바로 합시다!



자동차 리콜이 한국 내에서 급증하고 있습니다. 2012년 20만 6천 대 수준에서 작년에는 104만 3천 대로 5배 가량 대폭 늘었는데요. 올해는 5월 현재까지 벌써 50만 대에 육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특정 메이커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업체 전체적으로 리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죠.


이미지 by 스케치북


우선 리콜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리콜이란 게 뭔지, 그리고 리콜과 무상수리는 또 어떻게 다른지 기본적인 개념부터 간단히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리콜과 무상수리의 차이점은?


리콜 : 자동차를 제작할 때 결함이 발생해서 이것이 안전운전에 지장을 준다면 자동차 관리법에 따라서 제조사가 수리, 교체, 또는 환불 등을 하도록 시정 조치하는 걸 말합니다. 리콜 명령이 떨어지면 법적으로 이를 언론에 공지해야 하고요. 해당 차량 소유주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제조사가 문제를 해결 해야 합니다. 대략 개시일로부터 1년 반 정도의 기간 안에 수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리콜은 크게 자발적인 리콜과 강제적 리콜로 나뉘는데 큰 의미는 없습니다.


무상수리 : 자동차 관리 법령에 규정된 결함이 아닌(안전 관련) 품질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취하는 것이 무상수리죠. 이 경우는 법적으로 공지를 하지 않아도 되고 강제성도 없습니다. 반드시가 아니기 때문에 운전자가 모르고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리콜 보다 무상수리?


제조사들은 대체로 리콜 보다는 무상수리 쪽으로 문제를 몰아 가려는 경향이 있죠. 이유는 리콜보다 무상수리가 브랜드 이미지를 보호하는 데 유리하고 수리 비용을 더 아낄 수 있기 때문인데요. 리콜을 결정하는 일은 최고 경영자나 그에 준하는 그룹에서 싸인을 하는 경우가 제조업체 전반적으로 많은데, 이런 경영진의 마인드가 소비자 보호 보다는 자기 브랜드 보호에 더 치중되어 있어 무상수리로 맞춰가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상수리, 국내 제조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작년 말 한겨레 신문에 실린 내용을 보니까 한국에서 조립 판매되는 국산 차 메이커들의 대응 방식이 회사마다 달랐습니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유일하게 무상수리 결정이 나면 해당 소유주들에게 우편이나 전화 등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의 경우는 둘로 나뉘는데요.


국토부에 신고를 해야 하는 무상수리는 고객에게 고지를 하고, 자체 무상수리의 경우엔 서비스 센터에 차량이 입고하면 그 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대와 기아는 어떻느냐? 고객에게 고지를 하지 않고, 직영 서비스센터나 네트워크 되어 있는 정비소에 해당 차량이 오면 그 때 알려주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현대와 기아차를 타는 분이 무상수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동네 아는 정비소를 갔다고 치죠. 만약 그 정비소에서 이 내용을 마침 알고 있어서 고객에게 알려주면 다행인데,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운전자는 무상수리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모르면 한 마디로 당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 있는 수입차들도 대체로 무상수리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나쁜 의미에서의 한국화(?) 된 경우라 하겠는데요. 이런 현상은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덤벼들면 고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과연 잘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지네요. 어쨌든 올 해에는 무상수리도 의무적으로 고객에게 알려야 하는 쪽으로 법이 개정이 될 거라고 하는데, 돼야 되는 거니 지켜 봐야겠습니다.




그렇다면 리콜은 왜 증가하고 있나?


일단 표면적으로는 제조사들이 적극적으로 리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즘은 인식이 달라져 리콜을 반드시 나쁜 것으로만 보지 않고 '투명한 기업' 등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긍정적 요소로 받아 들이고 있다는 거죠. 자동차가 2만 개가 넘는 부품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수 없고, 이를 숨기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걸 소비자들은 당연히 바라고 있고, 이런 소비자들의 바람에 제조사들이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제가 볼 땐 아직도 리콜에 대해 부담을 갖고 문제를 축소시키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봅니다. 작년인가요? 쌍용 코란도가 주차 시 'P'에 미션을 놓아도 차가 흘러 내리는 현상이 발생해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무상수리로 처리했죠. 그것도 소비자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버티다가 마지못해 응한 것이라는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현대의 그랜저 배기가스 유입 문제는 너무나 유명하죠. 교통안전공단에선 '리콜'을 권고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국토부에선 '적극적 무상수리'라는 개념으로 다운그레이드 시켜 결국은 무상수리로 처리됐습니다. 여전히 자동차 회사들이 부담되는 리콜보다는 같은 값이면 무상수리로 돌리려 하고 있다는 증거는 이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전자장비의 증가를 들 수 있겠죠. 기계보다 훨씬 민감한 전자장비의 고장이 리콜을 자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에어백이 전 세계적으로 리콜을 많이 하는 장치 중 하나인데요. 이 역시 전자적인 기능들이 포함된 모듈(장치 덩어리)에서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모양입니다. 센서 오작동이나 제어 장치가 적절하게 역할을 못하는 등, 자동차 전자장비는 더 복잡해지고 더 많아지고 있는데 이것들에 대한 안전성 담보가 확실히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라고 한다면  개발 기간의 부족을 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신 차 출시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죠. 차는 더 복잡해지는데 다음 차를 내놓기까지의 시간은 더 줄어들고, 결국 그만큼 고장의 확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도한 원가절감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토요타는 리콜 많이 하기로 유명한데요. 2009년 미국에서 일어난 급발진 의혹 사건에 따른 리콜의 규모는 상당했습니다. 한 가지 부품이 여러 자동차에 적용이 되어 있는데 이게 잘못되면 여러 차 종 수만 수천 대에서 동시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처럼 일원화된 부품은 다량 생산될수록 가격은 떨어지게 되겠죠. 아무리 품질 관리를 잘 한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이유들이 리콜을 급격하게 늘리고 있습니다.




리콜 공포에 떠는 제조사? 말은 바로 합시다!


어제 모 언론사에서 요즘 부쩍 늘어나는 리콜에 제조사들이 시달리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올렸더군요.  특히 GM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요. 엔진 점화장치의 이상을 10년 넘게 숨겨오다 운전자들이 이 문제로 여럿 사망했다는 의혹들이 드러나면서 GM의 리콜은 상상할 수 없는 양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늑장 리콜에 따른 여론의 악화와 미 정부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리콜을 하면서 이미지를 개선시키려 했지만 리콜된 차량의 수가 그들의 조절 능력 밖으로까지 터져 나오면서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미 정부는 청문회를 통해 GM을 압박함은 물론 3,500만 달러라는 과징금 제한선 자체를 아애 없애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GM 본사 전경. 사진=위키피디아


최근 소식을 들으니 GM이 리콜한 차량의 수가 미국 내에서만 1300만 대가 넘는다고 합니다. 세계 시장 전체로 보면 1,500만 대가 넘어가고 있고 이와 관련된 비용만 2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 보고 있습니다. 차량 결함을 숨기다 들통나 리콜을 했고, 상황을 반전하고자 리콜에 적극적이었지만 이제는 너무 많은 리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이제는 GM이란 기업의 철학 그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GM을 필두로 세계 곳곳에서 리콜이 발생하는 상황에 정작 공포를 느껴야 하는 건 제조사가 아니라 소비자입니다. 그런데 '제조사들 리콜 공포' '리콜에 시달리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마치 제조사가 피해자인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를 언론이 쓰면, 그 내용을 대하는 대다수의 소비자들 기분이 어떨까요?  결코 곱게 기사가 보일 리 없을 겁니다.


특히 그 기사에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회장의 간담회 내용이 추가가 돼 읽는 이들을 더 분노케 했는데요. 마르치오네 회장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 잦은 리콜이 일상적인 일이 된다면 비용부담이 고객에게 전가되며 차량 판매가격에 (리콜 비용이) 반영될 것입니다."


이건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인가요? 


리콜의 정의가 어떻게 시작되었죠? '자동차를 제작할 때 결함이 발생해서'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기업이 물건을 잘못 만들어 반품이 들어가는 것인데 그게 잦아지면 결국 소비자들이 그 비용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뇨? 아마도 리콜에 강경한 미국 정부에 대한 은근한 불만 표시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렇다고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도 되는 건가 싶습니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걸 은연 중에 시인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게 됩니다.


자, 이쯤 되면 소비자 입장에선 리콜에 대해 제조사들의 태도는 공포가 아니라 짜증이라고 느껴지게 됩니다. 그런데 '시달린다'라는 표현을 써서 일종의 피해자 이미지를 자동차 회사들에게 씌워준다면  국민들 입장에선 언론이 우리를 대변하는 게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선이 어디 언론만을 향할까요?




감독 소홀한 정부


위에도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리콜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무상수리로 단계를 낮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리콜 명령을 받은 업체가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음에도 국토부는 이를 감시하지 않았다가 감사원의 감사에서 걸리고 말았죠.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현대가 제네시스와 엑센트의 결함이 발견돼 리콜 명령을 받았고, 이를 우편으로 제대로 통지를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2012년 7월에 크라이슬러코리아의 일부 차종에 대해 리콜 명령을 내렸지만 리콜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는데 이듬해 4월까지 국토부는 이를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고 언론들이 전했습니다.


감독 기관이 이러고 있는데 제조사나 수입사들이 어찌 만만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들, 국민들 몫인 거죠. 특히 리콜은 안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차량에 문제가 생겨 생명을 잃기라도 한다면 이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그러는 걸까요? 


정말 제조사들이 리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면 앞서 보여드린 태도들은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정말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우선 생각한다면 저런 무책임한 자세를 보여서는 안됩니다. 언제까지 내 안전이 이렇게 소홀하게 취급되어야 할까요? 또 다른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나면, 그 때 또 법석을 떨 건가요? 안전에 대한 우리 모두의 생각은 이제 물리적 변화가 아닌 화학적 변화를 맞아야 합니다. 여기엔 남녀, 노소, 이념의 다름은 의미 없습니다. 모두의 안전이니까요.


 "다시 한 번 또 말하지만, 자동차 리콜에 제조사가 공포에 시달린다고요? 아니요, 공포에 시달리는 건 국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