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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포르쉐 조상 'TYP64'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포르쉐 박물관을 가게 되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자동차가 있습니다. 사실 자동차라고 하기도 뭐한 게 엔진도 섀시도 없이 그냥 몸통(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색을 입히지도 않은 투박한 알루미늄 차대를 왜 방문객들이 제일 처음 보게 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차는 포르쉐 박사의 꿈의 시작이며 동시에 포르쉐의 자동차들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가야 할 길을 제시한 직계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TYP64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TYP64의 복원된 차대 모습. 포르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베를린-로마 자동차 경주를 위해 만들어지다


히틀러가 자동차를 국가의 통치수단, 나치 이념의 주요 통로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틈이 나는 대로 말씀을 드렸죠. 그리고 독일 산업의 기술력, 독일 인종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싶은 히틀러에겐 자동차 경주 또한 좋은 도구가 되었습니다. 히틀러 때문에 독일 은빛화살(설버 애로우라는 이름의 독일 스포츠카들이 만들어진 시기)의 전설이 극대화 되었을 정도로 스피드와 그걸 이용한 승리는 매우 중요한 프로파간다 (선전)였는데요.

 

1939년에 독일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와 함께 장거리 레이싱 대회를 계획했습니다. 베를린-로마 경주가 그것이였죠. 1300km라는 긴 거리를 달리는 시합에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자체 제작한 모델들을 가지고 참여할 예정이었습니다. 포르쉐도 예외는 아니었죠. 이미 1920년대에 아우스트로 다임러에서 사샤와 같은 소형 스포츠카를 만든 적이 있지만 남의 회사에서 만든 모델인지라 포르쉐의 이름표가 붙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것이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의 첫 번째 경주차가 되는 셈이었죠.

 

포르쉐는 엔지니어들과 함께 유선형의 가벼운 몸체의 스포츠카 한 대를 만들어 준비를 하게 되는데 이 차가 TYP64였습니다. 공식적인 이름이 붙여지지 않아 제조명 TYP64로 처음엔 불리게 되는데요. 40마력의 이 자그마한 스포츠카는 최고속도가 145km/h 정도 되었습니다. 실제로 볼프스부르크에서 베를린까지 평균 시속 135km/h를 달성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고 하네요.

 

TYP64의 모습. 사진=favcars.com

 

 

전쟁으로 TYP64는 뜻하지 않는 길로...


1939년 초에 예정됐던 경주대회는 다시 9월 중순으로 연기가 됩니다. 다행이었는지 포르쉐의 경주 참가용 TYP64는 그 해 8월에서야 겨우 출전 준비를 마치게 됐죠. 하지만 독일이 폴란드를 1939년 9월 침공하며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으로 인해 베를린-로마 경주대회는 열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 후로 유럽에선 6년 동안 어떠한 자동차 대회도 열리지 못했습니다.

 

포르쉐는 계속 경량 스포츠카에 대한 꿈을 지켜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경주대회가 아닌 기록 제조용으로 표면적 이유를 바꿉니다. 나치가 그의 스포츠카 계획에 혹이라도 반대해 이를 금지시킬까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포르쉐 본인이 속내를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쟁 중에도 스포츠카에 대한 포르쉐의 의지 만큼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1939년 12월에 두 번째 TYP64가, 이듬 해인 1940년에 세 번째 모델이 조립이 됩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TYP64는 주행 중 크게 부서지게 되죠. 결국 이 녀석의 몸체가 세 번째 TYP64를 만드는 기초가 되어줘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총 3대 중 2대만 남게 되었고, 남은 두 녀석은 기약 없는 전쟁으로 인해 서류를 전달하는 등의 잡무용 차로 회사 내에서 사용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TYP64 두 번째 모델은 오스트리아에서 미군들의 여가용으로 다시금 굴러다니게 됩니다.하지만 미군들이 자국으로 돌아갔을 땐 이미 차는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나마 세 번째 TYP64는 비교적 건강한(?)상태로 남아 있어줬죠. 그리고 이 녀석은 오스트리아에 자리를 잡은 포르쉐의 업무를 위한 회사 차로 다시 사용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포르쉐의 마음에서 TYP64가 떠났던 것일까요? 전후 프랑스에 의해 구금돼 프랑스 국민차 프로젝트에 동원되었던 포르쉐는 1947년에 풀려났지만 기력이 이미 많이 쇠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어 회사를 살려야 했죠. 마지막 불꽃을 356에 집중을 했고, 그러는 사이 TYP64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드라이버에게 갖가지 부속품들과 묶여 팔려가게 됩니다.

 

 

마테 오토는 TYP64의 진짜 주인이었다!


주유소 사업과 윤활유를 제조 판매 회사를 운영하던 마테 오토는 오스트리아에서 아마추어 레이서로 유명했습니다. 바이크 대회에서 심하게 오른손을 다치며 레이서로서의 경력이 끝나는가 싶었지만 전후 오스트리아의 각 종 경주대회에서 그는 자신이 직접 고안한 1인승 자동차 '조각 비행기'로 선전을 펼치게 됩니다. 이 조각 비행기라는 1인승 자동차는 오른손을 쓸 수 없던 오토 마테가 무릎으로 기어를 변속할 수 있게 특수 고안이 되었는데 포르쉐에서 TYP64 사올 때 딸려온 부속품들을 이용해 만들어졌습니다.  

 

오토 마테의 모습. 그의 오른손은 늘 주머니 속에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F1 드라이버 니키 라우다의 롤 모델이기도. 사진=technischesmuseum.at

 

오토 마테가 소유하고 있던 유일한 TYP64를 다시 독일로 옮겨간 포르쉐는 되사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1950년대 포르쉐 회사 측에서 몇번 의사를 타진했지만 당시 오토 마테는 팔 생각이 없었죠. 그런데 칠순을 넘긴 1980년대에 이르러 오토 마테의 마음에 변화가 찾아 옵니다. TYP64를 포르쉐 박사의 아들이자 911을 만든 페리 포르쉐에게 선물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죠.

 

아마 전혀 얘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깜짝 방문이었던 모양이에요. TYP64를 끌고 포르쉐 공장에 도달한 오토 마테는 뜻밖의 일을 겪게 됩니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만 정문에서 제지를 당한 것입니다.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는 다시 TYP64를 끌고 되돌아 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오토 마테가 1995년 세상을 떠나자 그의 올드카들 중 10여 대가 1997년 경매에 나오게 되죠.

 

포르쉐 집안에서는 이 소식을 전해듣고 가족 회의를 했다는군요. TYP64를 다시 가져와야 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을 나눴는데 결론은 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돈으로 약 6억 원 정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팔려나가게 되었는데 이 차의 보험가치는 90억에 가까왔다고 합니다.

 

1981년 트랙을 달리는 오토 마테의 TYP64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두 명의 독일인들 역사를 이어가다!


이렇게 해서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줄 알았던 포르쉐 조상 TYP64는 두 명의 독일인 올리버 슈미트와 토마스 쾨니히에 의해 다시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됩니다. 1997년 경매로 팔려나간 자동차들 중 '조각비행기'와 불리 등 몇 대를 두 명의 사업가가 2008년에 사들이게 되는데요. 프로토타입이라는 자신들이 세운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매한 물품 중엔 TYP64의 오리지널 운전대와  두 번째 TYP64의 차대 일부, 차축 등 많은 부품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죠.

 

함부르크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 프로타입 전경. 사진=automuseum prototyp

박물관 내부에 전시돼 있는 VW의 녹색 불리와 경주용 차 '조각비행기'의 모습. 사진=automuseum prototyp

 

두 사람은 이미 TYP64를 복원할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부품들을 이용해 최고의 자동차 복원 전문가들과 함께 3년이란 시간 동안 TYP64를 되살려 내는 노력을 기울였고 드디어 2011년 복원된 TYP64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복원된 TYP64. 번호판도 원래 모델에 있던 것 중 하나를 그대로 적용. 사진=Photographers Hamburg

사진=위키피디아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알루미늄으로 차대를 정확하게 만들고, 엔진과 각 종 동력 장치들을 복원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두 명의 독일인이 품은 꿈과 열정이 자칫 조용히 사라졌을 포르쉐의 원조, 조상을 다시 불러낸 것이죠. 포르쉐는 TYP64에 심어진 가볍고 작으면서 잘 달리는 스포츠카라는 정체성을 그대로 이어가게 됩니다.

 

포르쉐 356 쿠페. 사진=favcars.com

356 로드스터와 함께 포즈를 취한 생전의 페리 포르쉐의 모습. 사진=포르쉐

 

긴 세월 포르쉐의 초기 역사를 담당했던 포르쉐 356으로 이어졌고,

 

 

이 작은 은색의 스포츠카를 발견하지 못한 운전자의 실수로 제임스 딘은 자신의 애마와 함게 젊은 생을 마감합니다. 사진=favcars.com

 

제임스 딘의 자동차로 잘 알려진 550 같은 차로 계속 해서 그 본질은 이어집니다. 그리고 1964년 지금의 포르쉐를 있게 한 911이 태어나며 TYP64의 유전자는 전 세계인에게 각인되게 됩니다.

 

포르쉐 911. 사진=포르쉐

 

폴크스바겐 XL1에서 TYP64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사진=netcarshow.com

 

그리고 이후 여러 형태의 포르쉐 자동차가 등장하지만 늘 그들에겐 TYP64에게 심어진 자기 색깔이 이어져왔습니다. 모든 포르쉐의 뿌리가 확실하게 되어 준 것이죠.  복원된 TYP64는 그 해 영국의 '인터내셔날 히스토릭 모터링 어워즈'에서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이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스포츠카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고 첫 디딤돌이 되어 준 TYP64. 박물관에서 가장 먼져 만나야 하는 자동차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TYP64는 '베를린 로마 자동차'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역사 속에서 달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