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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 자동차클럽 최악의 스캔들 터지다



지난 주 목요일. 가입자 규모로는 두 번째 (1840만 명)이자 세계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신뢰할 만한 클럽으로 평가받고 있는 독일운전자클럽 '아데아체 (ADAC, Allgemeiner Deutscher Automobil-Club)'에서 매년 주는 겔버 엔겔 (Gelber-Angel)상, 그러니까 '노란천사상' 시상식이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자동차 업계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상받기 위해 폼내며 앉아 있음. 사진=ADAC


뮌헨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데아체에 대해서는 몇 차례 이미 다뤘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조직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저도 목소리를 높이고 그랬습니다. 매년 회비(제공 서비스에 따라 50~100유로 사이)를 받아 운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는 있지만 엄청나게 많은 부대 사업을 펼치고 있어 1년 예산만 해도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기업과 같은 그런 조직입니다.


2005년부터 겔버엔겔 트로피를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수여하는데 그 상의 가치가 여간 높은 게 아닌데요. 당연히 여기서 트로피를 받게 되면 제조사들은 최대한 마케팅에 이 부분을 드러내죠. "우리 아데아체에서 이런 상 받았어요~!" 라고 자랑하는 겁니다. 자랑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클럽이니까요. 그런데 올해, 아니 노란천사상 자체에, 아니 아데아체라는 조직의 신뢰에, 치명적일 수 있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신사옥의 전경. 사진=ADAC


신사옥과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클럽하우스(좌) 모습. 사진=ADAC





투표수 조작 사건




남부독일을 대표하는 쥐트도이체차이퉁이라는 신문사가 있습니다. 독일 내에서도 특종 잘 터트리는 신문사죠. 여기서 노란천사상의 투표가 조작됐다는 기사를 냈습니다. 시상식 당일 아데아체 총괄 매니저 칼 오버마이어는 콧방귀를 뀌며 대응할 가지가 없는 얘기라 일축했지만 다음 날 그는 기자들 앞에 서야 했습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이하 SZ)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죠.


올해 노란천사상 투표에 수십만 명의 회원이 참여했고 이들이 던진 표 중 34,299표가 폴크스바겐 골프에 갔습니다. 그래서 2014 겔버 엔겔상 대상을 골프가 타게 된 것이죠. 여기까지가 아데아체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SZ에 따르면 실제로 투표에 참여한 회원들은 훨씬 적었고, 골프가 받은 표는 34,299표가 아닌 3,409표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부 조사를 통해 이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죠. 열 배를 뻥튀기 해버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나?



투표수 조작은 그렇다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요? 노란천사상은 아데아체가 회원들을 위해 발간하는 자동차 잡지 모토벨트(MOTOR-WELT)를 통해 투표에 참여케 합니다. 그런데 이 잡지의 편집장이자 커뮤니커에션부서 총책임자 자리를 겸하고 있던 미하엘 람쉬테터가 투표수를 부풀렸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미하엘 람쉬테터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졌고 이걸 어떤 부서의 누구도 관리하고 감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이 내용도 내부 감사 결과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람쉬테터 단독 범행(?)인지 아니면 꼬리 자리기를 한 것인지 100%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아데아체는 순위 그 자체엔 변화가 없고 단지 참여자 수를 늘린 것뿐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조직 전체에 대한 신뢰도는 땅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2008년 모토벨트 표지를 장식했던 미하엘 슈마허의 모습이 현재 그의 상황과 맞물려 묘하게 다가옵니다. 사진=ADAC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투표수 조작이 올해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람쉬테터가 자료를 모두 폐기해 공식적인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SZ는 작년 경우 146,000명의 회원이 투표에 참여 했다고 발표된 것 중 70,000표가 허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내용의 기사가 나온 걸로 봐서는 분명 내부에서 누군가 정보를 흘린 거 같은데요. 신뢰와 치밀한 조직력이 생명이던 아데아체로서는 치명적인 상황을 맞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독일 언론들은 일제히 투표 조작 사건을 머릿기사로 다루고 있습니다. 아데아체가 펼치는 모든 사업이 의심을 받아선 안된다는 기사도 있지만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 들이긴 쉽지 않은 게 현재 분위기입니다. 그냥 독일자동차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장 많이 팔린 차가 뭔가 확인하는 것만이 팩트라는 비아냥 섞인 내용도 볼 수 있었습니다.


벤츠 E클래스 긴급제동시스템 테스트 중인 모습. 사진=ADAC





왜 이런 짓을 했을까?



현재까지 미하엘 람쉬테터 전 편집장 (화요일 공식적으로 사임)이 왜 투표수를 부풀렸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정확하게 발표된 내용은 없는데요. 언론들은 하지만 노란천사상의 권위를 투표수를 통해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 중요 이유가 아니겠냐 추측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모터벨트라는 자동차 잡지에 실리는 광고입니다. 광고 수입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데아체의 권위는 추락했고, 이로 인해 광고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독일인들은 매우 큰 충격과 실망에 빠졌죠. 자신들이 그토록 자부심을 갖고 있던 조직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당연할 겁니다. 어떻게 이런 투표가 한 사람의 손끝에서 조작이 가능했는지 황당해 하고 있고, 배신감에 고개를 젓고 있습니다. 


불똥은 아데아체를 이끌고 있는 수장 페터 마이어로까지 튀었는데요. 벌써부터 여론은 사퇴하라는 분위기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페터 마이어는 자신이 아니면 이 사건을 완전히 밝혀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사퇴를 현재까지 거부하고 있네요. 하지만 설령 명백하게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고 해도, 조직을 이런 식으로 이끌었다는 책임론에서 결코 그는 자유롭지 못하리라 봅니다. 물러나는 게 맞겠죠.


폴크스바겐도 상당히 뻘쭘해진 상황이에요. 순위 조작까진 없다고 해도 회사로서는 결코 그 트로피를 쥐고 있는 게 도움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노란천사상 트로피를 되돌려 줄 것인지를 놓고 내부적으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분위기는 점점 상 자체의 존폐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투명한 경영과 꼼꼼함을 자부하는 독일인들에게 아데아체 투표수 조작사건은  남다른 문제입니다. 그것도 독일을 대표하는, 아니 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관련 조직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회원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아데아체는 깊은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더 신뢰받을 수 있는 조직이 되겠다 선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추락한 신뢰를 되찾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이전의 명예로운 조직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신뢰를 잃은 조직이나 기업이 얼마나 힘든 길을 가게 되는지는 아마 아데아체의 앞으로의 모습을 통해 독일인들은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데아체만의 문제, 독일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신뢰라는 것, 이 사건을 통해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데아체란?

1903년 독일 바이크 운전자들 모임에서 시작된 아데아체는 1911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면서 자동차가 중심이 된 클럽이 되었다. 현재까지 약 1850만 명의 회원이 이 클럽에 가입되어 있으며 긴급출동 서비스를 기본으로, 각 종 충돌테스트를 비롯한 수십 가지 테스트, 기술 개발 사업, 모터스포츠 주최 및 후원, 운전스쿨 및 안전교육, 보험 및 법률 서비스에서 여행 관련 서비스까지, 자동차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해수욕장 모래 및 수질 테스트까지 하고 있다.)


1928년 아데아체 출동 서비스 모습. 사진=ADAC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긴급출동서비스 풍경. 사진=ADAC

다양한 충돌테스트 중 일부. 사진=ADAC


헬기출동서비스 모습. 사진=ADAC


터키까지 날아가 회원 구조를 펼치고 있는 모습. 사진=AD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