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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국민을 위한 정부? 자동차 회사를 위한 정부!

국가는 무엇입니까? 국민의 안녕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 나라가 지향하는 바를 꾸준히 지탱해 가는 조직체입니다. 국가는 국민이 주권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뉜 정치체제가 국민의 뜻을 조직적으로 대신하죠. 되게 복잡한 거 같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면 국가는 국민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런 국가의 살림을 사는 정부가 국민들의 안녕과 이익을 돌보거나 챙기지 않는다면 이런 정부는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겠죠? 오늘은 다소 거창하게 시작을 했는데요. 최근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과 관련해 나오는 뉴스들에 국민들이 속을 끓이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의 행태가 더욱 큰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자동차 제조에 관해 세계적인 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 자동차 소비에 있어서도 엄청나게 성장한 시장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1가구 1차량은 물론 1가구 다차량 시대로 가고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실상 자동차와 관련한 국가조직도, 문화도 많이 뒤떨어져 있습니다. 양적 성장, 그러니까 수치로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그 속내를 보면 껍데기만 화려한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특히!

 

국민의 입장에 있어야 하는 정부가 자동차 메이커의 입장만 대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런 나라에서 제대로된 자동차 정책이란 게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정부를 비판하려고 하는지, 지금부터 3가지 사례를 통해 따져 보고자 합니다. 잘 아는 내용이겠지만 끝까지 읽어봐주시기 바랍니다. 3가지 사례는 정부기관의 행태에 초점을 맞췄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1. 급발진은 없다?

자동차 블랙박스가 대중화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들이 부쩍 많아진 것인지, 요즘 들어 급발진 관련 뉴스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급기야 그 동안 부정하기에 바쁜 자동차 메이커, 사람이 다치든 죽어나가든 별 관심이 없던 정부가 함께 몇 가지 사건들을 모아 합동조사라는 것을 실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전엔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그나마  여론의 압박에 부담을 느낀 두 집단이 움직인 것인데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급발진은 없다'는 결론을 내고 합동조사는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최근에 이와 관련해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나름 심도 있게 취재하고 방송을 했습니다. 뭐 자동차 메이커야 그러려니 한다지만 합동조사반의 태도는, 이게 정말 급발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만 들 뿐이더군요.

우선 합동조사반에 참여했던 자문위원이 밝힌 사실 중에 대구에서 일어난 쏘나타 급발진 사건 대목이 있습니다. 조사반 회의 중 "급발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차량이 대구 쏘나타 사건이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사반 내부적으로 사건 샘플들 중 가장 급발진 가능성을 높게 본 게 대구 쏘나타 건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 합동조사반은 데이터 공개를 미루고 있습니다. 또 시뮬레이션을 사고 당시 상황에 맞춰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조건으로 하자는 의견이 무시된 것이죠. 자문위원 중 한 명은 "제조사 면죄부를 주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합동조사반의 활동이 왜곡됐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국회에서 당시 회의록을 요청하자 녹음파일 자체를 아예 폐기처분해버리고 맙니다.

 

뭘 감출 게 있다고 파일을 파기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국토해양부 기자실에서 공개한 자료 중 임신한 아내분을 태운 운전자분의 스포티지 EDR 자료가 공개됐는데요. 이것도 데이타의 공신력에 문제가 있음이 방송을 통해 보여집니다. 그나마 제조사 입장에서 가장 급발진과 무관하다고 내세운 케이스 조차도 정확하게 데이타로 설명이 안되고 있던 것입니다.

 

합동조사반을 이끈 반장이란 교수분은 이번 조사를 이끈 교통안전공단이 발주한 연구 프로젝트를 4개나 맡고 있더군요. 각각 1억이 넘는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또 ECU 오작동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기간을 12일 정도는 필요하다는 업체의 의견을 무시하고 3일 만에 결과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기술적으로 12일이나 걸리는 문제는 어떻게 3일 만에 점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합동조사반 조사위원들 중 5명은 전직 현기와 르노삼성, 한국GM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사람들이였다고 합니다. 이런 일련의 문제점들은 국민들이 이번 조사 결과를 온전하게 믿고 받아들일 수 없게끔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국토해양부가 의지가 있었다면 오해의 소지를 피해 최대한 많은 시간을 들여 정확하게 조사를 했어야 하고, 나온 자료 모두를 공개했어야 합니다. 

 

이런 부실한 조사결과를 국민들에게 받아들이라고 하는 정부가, 과연 국민을 위한, 국민의 편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 K5 리콜은 없다?

지난 달 30일 소비자보호원이 기아 K5 연료량 측정센서 '연료센더'의 인식불량으로 차가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고 기아차에게 통보하면서 안전 조처를 하라는 권고를 했습니다. 시스템이 안전에 치명적인 위험을 주는 결함이 발견됐으니 이건 누가 봐도 리콜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어찌된 게 기아는 자발적수리로 대체를 했습니다.

 

자발적수리? 원하는 소비자에 한해 교체를 해준다는 건데요. 만약 이 사건을 공개한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내용을 모르고 있는 K5 운전자는 언제 차가 멈출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차를 계속 운행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주행 중 차가 멈춰 설 수 있다는, 그런 치명적인 문제에 대해 강제 리콜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간 국내 메이커가 리콜과 관련해 보이는 행태는 늘 그래왔습니다. 새삼스러울 것 없죠.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런 메이커를 제도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국토해양부에서 강제리콜조치를 지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과연 미국을 비롯한 주요 해외시장에서도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하는 것과, 미국 같은 나라 정부도 우리의 국토부같은 대응을 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마침,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연비 과장 표시로 보상금을 수백 억 물게 됐다는 기사나 나왔더군요. 그 사건의 경우 미국 환경보호청이라는 정부기관에서 발표를 했고, 이에 개별 소비자와 컨슈머워치독이라는 소비자단체가 그 발표자료를 근거로 법원에 제소를 해 판결을 받아내게 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가 확대될지 모를 꽤나 큰 사건인데요. 이런 문제가 우리나라에서 발생됐다면 과연 정부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K5 리콜 명령을 하지 않는 국토부와 연비 과장문제를 발표한 미국 환경청은 하는 일은 조금 달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정부기관이라는 점에선 같습니다. 하지만 그 행보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레몬법 아시죠? 차량에 같은 문제가 3번 이상 반복되고, 이를 제조사가 증명해내지 못하면 돈이나 새 차로 바꿔줘야 한다는 법 말입니다.


우리나라처럼 피해를 입은 운전자가 차의 시스템적인 결함을 밝혀내야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는 걸 알게 해주는 법이 아닌가 싶은데요. 물론 레몬법을 적용받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이처럼 힘없는 개별 소비자가 막강한 제조사에 맞설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국가가 마련해줬다는 점에선 우리나라와 비교가 됩니다.


배기가스가 차 내로 유입이 되고, 엔진이 꺼지는 등의 치명적 결함 조차도 리콜이 안되는 나라. 그리고 그걸 주도하지 못하는 정부. 과연 이게 국민들을 위한 정부라고 할 수 있을까요?



3. 쌍용차 사태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가 정치권으로 점점 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한쪽 언론에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는데, 오죽하면 국정감사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을까요. 쌍용차 문제는 일단 노동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전 주인인 상하이자동차가 먹튀를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회계조작을 한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조 2천억짜리 회사를 5,900억에 꿀꺽한 상하이자동차가 원래 1조 이상을 투자하기로 약속하고 인수했지만 이 약속은 회사를 팔아먹고 도망간 그 시점까지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09년 금융위기를 기회(?)로 삼은 상하이자동차는 고의부도를 내기 위해 회계법인과 모의해 회사의 가치를 대폭 낮추게 되죠. 


그 결과 회사의 부채비율은 엄청 높아지게 되고, 이런 부실기업을 유지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그럴싸한 변명으로 상하이자동차는 핵심 인력과 기술들을 가지고 중국으로 되돌아 갑니다. 하지만 상하이자동차의 쌍차 고의부도의 더 큰 이유가, 검찰에서 기술유출과 관련한 수사를 벌이자 이에 부담을 느낀 것이라는 게 최근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이처럼 회계조작의 결과물을 가지고 법정관리를 하던 정부는 노동자 2650여 명을 해고하고 저렴한 가격에 다시 인도 마힌드라에 매각을 감행했습니다. 한 마디로 마힌드라는 편안하게 앉아서 깔끔하게 정리된 회사를 싸게 먹은 것입니다. 현정부는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이 쌍용차를 어렵게 했다는 논리로 여론을 형성하려 했습니다. 사실 쌍용차 문제는 현정권과 이전 정권, 여와 야 모두가 반성을 할 대목이 있지 않나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어쨌든 부당한 해고로 인해 수십 명의 해고노동자가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살이라는 행위 그 자체는 옹호될 수 없겠지만 오죽하면 그들이 그런 선택을 했겠는가를 생각하면, 노동자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자들이 국가권력을 쥐고 있는 한 명예회복과 복직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쌍용차 사건과 관련한 동영상이 여기 한 편 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 많겠지만 못 보신 분들은 꼭 보십시오. 해고노동자들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해도, 조금의 상식만 있다면 쌍용차 사태를 어떻게 봐야할지 어렵지 않게 답을 주는 그런 동영상입니다.





마무리

국가는, 정부는, 국민을 위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국가와 정부는 국민들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부기관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게 자동차에 있어서는 정부가 힘없는 개인의 편이 아닌 힘 있는 기업의 편에 서 있어 보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된 정부의 자화상일까요? 국민들은 이런 정부, 이런 국가에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언제까지 우리는 '대기업은 국가의 성장동력'이라는 보릿고개시절의 캐츠프레이즈 앞에서 권리와 안녕은 무시되어야 하는 걸까요? 언제까지 서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있는 자들을 위한 행정과 입법이 이뤄지는 비참한 현실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까요? 급발진 문제, 리콜 문제, 자본의 논리에 희생되는 힘없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그냥 멍하니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요?

좀 다른 얘기지만 최근 독일에선 에어콘 냉매와 관련해 아우디빌트라는 한 자동차 잡지가 여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냉매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고, 그들이 반대하는 냉매를 쓰는 메이커와 자동차에 대해서 계속해서 정보를 공개하며 회사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매체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광고주들인 자동차 회사들이 우선이 아니라 자신들의 잡지를 구매해주는 소비자, 국민들이 우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 시스템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언론은 광고주인 자동차 메이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구독이나 유료회원제가 불가능한 우리나라 구조상 한 편으론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정부와 자동차 회사를 향해 옳은 소리하고 국민의 편, 소비자의 편에 서서 싸워주는 그런 언론을 가져야 하고 키워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언론 스스로 진실되고 정당해야 하며, 국민들은 그런 언론을 위해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구독을 하든 회원에 가입을 하든, 그런 지지를 보내는 게 결국은 나의 이익과 안전으로 돌아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또 늘 얘기하듯 건강한 소비자 단체가 출현해 정부기관이나 메이커를 압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얘기 드리면 늘,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돼요. 구조적으로 이래서 어려워요." 라는 말씀들이 있는데, 그런 것 때문에 못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늘 이지경, 이 수준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내 나라 내 가정, 내 자동차가 건강하고 안전해지는 길입니다. 자동차 메이커 스스로 변화하지 않겠다면 정부가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력으로 이들을 압박하고 개선시켜야 합니다. 만약 정부가 그런 의지가 없다면 국민들이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부디,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을 위해 힘써 싸우는 그런, 지극히 당연한 모습을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정부는 당신의 부릅뜬 눈빛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