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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기아 패밀리룩은 약발이 다한 게 아닙니다

오늘 모 한국의 자동차관련 미디어가 재미난 제목을 달고 기사를 하나 냈더군요. '페터 슈라이어의 약발이 다됐는가?' 하는 그런 제목이었는데, 한국 시장에서 기아의 디자인 차별화가 요즘 안 이뤄져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전과 같지 않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보면서 좀 다른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진행해보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약발이 다 된 게 아니라 아직 약을 치지도 않았으며, 핵심이 빠져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패밀리룩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그런 것이죠.

 

우선 패밀리룩에 대한 오해 아닌 오해부터 풀고 넘어가야 할 거 같은데요. 패밀리룩을 하는 건 메이커들 끼리의 차별화, 그리고 그것을 통한 아이덴티티의 확립과 브랜드 가치 상승 등이 그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영업현장에선 오히려 이 패밀리룩으로 인해 차종별 (세그먼트별)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그런 얘기가 나온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건 한국 내수 시장의 특수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대 아니면 기아차가 80% 정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에선 같은 메이커의 모델이라도 차종별로 디자인의 차이가 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소비자들한테 영업하기 편할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세계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메이커끼리의 디자인적 차별화가 매우 의미 있는, 즉 집안끼리 확실하게 차이를 두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패밀리룩에 대한 개념이 국내에 자리잡은 지 몇 년 안된 것도 있겠지만 수많은 메이커들이 경쟁을 벌이는 이 곳 유럽에서 보면 어느 메이커의 자동차인지 구별되는 건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 메이커들은 이 점을 확실하게 하고 있죠. 왜냐면 프리미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고객들로 하여금 '내가 이 브랜드의 차를 탄다'는, 존재감을 느끼게 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 브랜드만의 고유의 디자인 철학은 꼭 이런 고급 메이커가 아니라도 이제 당연한 것처럼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세계 미인대회 나가는 한국미인이 한복을 입고 한국의 미를 알리는 것을 생각하면 좀 이해가 편할까요?...그렇다면 왜?, 이제 막 시작한 기아의 패밀리룩에 대해 약발이 다됐다는 등의 부정적 얘기가 피어나는 걸까요 다른 메이커들 다 하는 이 패밀리룩을 말입니다. 여기엔 앞서 말씀 드렸듯 패밀리룩이 아직 완전히 숙성되지 못한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로 보입니다.

 

위에 사진 보이시죠? 맨 왼쪽부터...아니, 여러분이 한 번 어떤 차들인지 알아 맞춰 보시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어쨌든 대략 몇 가지 모델들을 나란히 배열해 봤습니다. 패밀리룩이라는 게 그릴 하나만 가지고 논의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가장 축이 되는 게 그릴이니 그 부분만 집중해서 배열을 했는데요. 가만 보시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변화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더 좋게 다듬고 개선하고 새로움을 입히는 일은 여러분의 관심이 큰 독일차들도 자주 하는 짓입니다. 하지만 기아차의 변화는 단순히 더 나은 것으로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안 섭니다. 아마도 K5가 너무 강렬하게 기아차 디자인에 대한 인상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K5는 앞과 옆, 뒤, 지붕과 연결된 뒷유리, C필러 등, 디자인의 부분부분이 모여 합을 이뤘을 때 그것이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디자인상을 수여받는 등의 전문가의 시각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의 소비적 시선에서도 이 차는 한국차에선 그간 볼 수 없던 혁신적인 모양새를 하고 태어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아에 기대했던 건 바로 이런 종합적이고 조화로운 룩(LOOK)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이게 새로운 모델들이 나오면서 계속해서 바뀌어 나갑니다. 페터 슈라이어라는 대가는 호랑이 코라 불리우는 그릴이 모든 것을 커버할 것처럼 얘길를 했지만 그건 지엽적이고 한계가 보이는 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히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작품에 일개 블로거가 이런 얘길 한다고 코웃음 치는 분들 계실 텐데요. 뭐 그냥 이런 의견도 있다는 거 참고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K5의 헤드램프나 그릴 안개등이나 범퍼 등 계속 변화를 맞습니다. 그리고 요즘 나오는 신차들의 경우는 그릴의 기본 형태를 그대로 두되 디테일을 보강하고 헤드램프를 좀 더 강하고 화려하게 다듬어 조금은 새로운 패밀리룩으로 변화를 보여줍니다. 물론 중간에 K9과 같은 논란이 컸던 디자인도 있었지만 적어도 중형 이하에선 방향을 잡아가는듯 합니다.

여기 보여드린 모델들은 가장 최근에 공개가 된 준중형 3개와 미니밴 카렌스입니다. 어떠세요, 그래도 나름 일관성 있어 보이죠? 얼마 전에 패밀리룩이 너무 복잡해서 정리가 안돼 있다고 이 블로그를 통해 비판한 적이 있지만 적어도 준중형에 있어서는 나름 다듬어진 느낌을 받습니다.

 

결국 기아의 패밀리룩은 대략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우선 K9과 이번에 새로 선보일 K7이 그 한 그룹. 그리고 K5와 중국형 모델 K2, 거기에 SUV 모델들인 스포티지와 소렌토 등이 한 그룹. 그리고 모닝과 프라이드를 묶어 한 그룹. 마지막으로 위에 4가지 모델을 한 그룹. 이런 식으로 그릴과 헤드램프를 중심으로 묶을 수 있지 않나 싶은데요.

 

개인적으로는 기아가 세단과 SUV 두 개의 디자인 축으로만 나누고 나머진 모두 같은 모습을 유지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진정한 패밀리룩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 . 백날 이렇게 그릴과 헤드램프, 그밖의 부분들이 룩의 일관성을 강하게 어필한다고 해도 뭔지 모르게 2%가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전 그게 기아의 로고, 엠블럼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우디 S6과 A3의 앞모습입니다. 헤드램프와 싱글프레임 그릴이 거의 똑같습니다. 아주 미세하게 디테일한 부분들이 차이가 있을 뿐 기본축은 같죠. 그리고 거기에 하나가 더해집니다. 바로 로고... 네 개의 링이 달리 많은 설명을 하지 않고 이 차가 어떤 메이커의 차임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벤츠의 가장 작은 A클래스와 가장 큰 G클래스 모습인데요. 역시 그릴과 램프의 일관된 기본 안에서 다양한 변화들이 이뤄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가 알아볼 수 있는 삼각별이 박혀 있습니다. 헤드램프나 그릴 등을 따로 놓고 보면 특별한 디자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로고 하나 제대로 박혀 있는 덕에 벤츠임을  윗집 코흘리개조차 알 수가 있게 된 것이죠.

 

 

독일차 말고 프랑스의 대표적인 모델 푸조를 보세요.208과 부분변경된 RCZ의 앞모습인데, 디테일은 의외로 많이 다릅니다만 사자 마크 하나 가운데 박혀 있음으로 인해 이 차가 푸조임을 바로 알게 됩니다. 만약 이렇게 로고를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기아만의 룩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결국 알파 로메오 같은 매니아적인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방법 외엔 길이 없어 보입니다.

 

소형 미토와 중형 159 모습인데요. 이건 로고 없어도 누구나 알파 로메오인 것을 압니다. 하지만 기아는 알파 로메오와는 다른 길을 가는 메이커입니다. 좀 더 디자인이 보편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고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사실 알파 로메오가 로고가 강조 안되어도 된다고는 했지만 알파 로메오의 로고는 매우 독특하고 멋집니다.

 

특히, 그런 로고를 휠이나 실내 내장재에 잘 활용을 하고 있죠. 잘 만든 로고 하나가 차의 가치를, 메이커의 독창성을 얼마나 살려내는지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 로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곳이 있는데 그건 바로 차의 뒷모습입니다.

 

실물로 보면 물런 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다르긴 하겠지만 위에 보이는 독일 프리미엄 삼총사들 뒷모습 보세요. 로고 떼면 디자인 그 자체로 어필이 그리 크지 않아 보입니다. 전면부처럼 그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뒷모습은 램프 디자인과 로고가 매우 중요하게 차의, 그리고 메이커의 변별력을 키워주죠.

 

반대로, 로고가 힘이 없는 메이커들이 내놓는 자동차의 뒷모습은 뭔가 상징성이 떨어져 보입니다. 위에 것은 세아트 톨레도이고 아래는 포드의 S-MAX인데요. 특히 포드 S맥스는 실제로 보면 도장을 얼마나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가 참 강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그닥 맘에는 안 들지만 리어램프도 신경을 많이 써서 디자인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로고가 약하니까 차의 느낌이 한풀 꺾인다고 해야 할까요? 암튼 그렇습니다. 기아가 포드의 영향을 받은 메이커라 로고도 그렇게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저런 밋밋한 로고들은 차의 독창성이나 가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아차의 뒷모습에 더 나은 로고가 붙어 있다면 어떨까요?...결국 로고가 약하니까 그걸 채우기 위해 디자인이 너무 강해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멋진 로고 하나 큼지막하게 달려도 패밀리룩에 대한 정체성 의문이나 갈피를 못잡는듯 보이는 디자인 방향성도 수월하게 해결되지 않을까 싶네요. 바로 패밀리룩의 완성엔 로고가 있고, 지금의 기아 로고로는 경쟁력 있는 패밀리룩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기아가 자주(?) 비교대상으로 삼는 BMW, 그 중 6시리즈 실내 디자인입니다. 갑자기 로고 얘기하다 실내로 왜 넘어왔냐면요. 패밀리룩이라는 게 꼭 익스테리어에서만 논의가 되어선 안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기아의 인테리어는 나름 개성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익스테리어처럼 디자인 변화가 심하고 마감이나 소재 등에서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베엠베처럼 비싼 소재 쓰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일관성 있는 디자인과 깔끔한 마감 등은 패밀리룩 완성의 또 다른 요소입니다. 사실 차의 겉 모습은 시각적인 부분에서만 주로 어필을 하지만 실내는 시각은 물론 직접 앉고 만지기 때문에 차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직접적인 작용을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도만족을 주어야만 기아 디자인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또 차의 성능도 패밀리룩과 무관치 않습니다. 퍼포먼스에서 내세울 만한 것이 있다면 외모에 대한 평가도 한층 긍정적으로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푸조는 디젤, 시트로엥은 승차감, BMW는 펀드라이빙. 이런 것처럼 기아하면 '뭐!' 이렇게 단박에 나와줘야 합니다. 넓은 실내? 이런 것만으로는 기아차만의 아이덴티티, 가치를 분명히 하기 어렵습니다. 

 

성능이란 게 하루 아침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방향성을 분명히 해줘야 성능과 디자인이 어우러질 테고, 그때서야 진정한 기아만의 무엇이 완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기아의 패밀리룩은 약발이 다한 게 아닙니다. 아직 제대로 약칠도 안 됐습니다. 그 약은 새로운 로고의 완성, 실내의 질감, 기아만의 내세울 수 있는 퍼포먼스. 이런 것들이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만약 당장 효과를 보고자 한다면 로고와 실내 업그레이드 등이 그 대상이 되겠죠. 문제는 백날 우리 같은 사람들이, 또는 생각을 같이 하는 해당 메이커의 일반 직원들이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마음을 열고 이런 다양한 의견들을 경청해 줘야 됩니다. 그래서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건강한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한 두 사람의 흩날리는 목소리가 아닌, 여럿이 만든 큰 덩어리의 소리를 내는 것, 그게 필요합니다.

 

아무쪼록 기아자동차의 패밀리룩이 제대로 완성돼 경쟁력 있는 메이커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단순히 어느 한 부분만을 부여잡고 있고, 혹은 뜯어 고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 알아줬음 하네요.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수용과 실행이 아닐까요? 겉치장만 요란한 메이커가 아니라 겉과 속이 모두 가치 있고 훌륭한 메이커가 되기 위한 창조적 결단이 지금 기아엔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