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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아반떼가 된 3시리즈, 소나타가 된 A6

퀴즈로 오늘 내용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한 번 맞춰 보시겠어요?

여기 이렇게 3대의 차량이 있습니다. 맨 위가 아우디 A4이고요. 중간이 현대 i40 살룬, 마지막이 푸조 508세단입니다. 그러면, 이 차들의 세그먼트 분류를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세그먼트 분류라는 건 차의 크기를 말하는 건데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소형차냐 준중형이냐 중형이냐 뭐 이런 뜻입니다. 자~ 다 해보셨나요? 답을 알려드립니다. 우선 한국기준, 한국 포털에 공식적으로 기재된 것으로 기준하면 A4는 - 준중형, 살룬은 - 중형, 푸조508 - 중형으로 분류됩니다.

참고로 A4의 전장은 4.7미터, 살룬의 전장은 4.74미터, 푸조 508의 전장은 4.79미터입니다. 유럽 기준으로 중형인 A4가 준중형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렇다면 A4와 살룬 사이에 중형과 준중형의 경계가 있다고 예상할 수 있겠죠? 정말 그럴까요?

 

이게 법률에 근거한 차량 분류 기준표입니다. 경차/소형/중형/대형으로 간단하게 나눠져 있죠. 소형과 중형 사이에 있는 수 많은 차들 때문에 준중형이라는 게 들어가 있지만 여전히 공식적인 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중형과 대형 사이에도 간극이 크기 때문에 준대형이라는 분류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법률적 분류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관계로 혼란이 생기는 것인데요. 우리나라는 전장, 그러니까 차의 앞에서 뒤까지의 길이를 일종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 위의 기준에 따르면 전장이 4.7미터 이하면 중형이 아닌 소형(준중형 포함)으로 분류됩니다.

이게 기준인 것이죠. BMW 3시리즈나 벤츠 C클래스는 이 기준에 따라 준중형으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아우디는 전장의 중형 기준인 4.7미터에 맞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하면 전장이 4,701mm가 되죠. 그러니 중형으로 분류가 되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아우디 A4를 중형으로 하면 동일하게 취급되는 C클래스나 3시리즈와 체급이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됩니다. 누가 봐도 A4의 동급 라이벌은 BMW 3시리즈, 메르세데스 C클래스죠. 이건 전장의 기준과는 다른, 현실적인 기준에 따라 볼 때 그렇다는 겁니다.

여기서 차를 바라보는 현실과 법률적 괴리감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위의 기준법은 이런 보강을 했습니다. 전장 뿐 아니라 전폭과 전고 중 하나라도 중형 기준에 맞다면 중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이렇게요. 그렇다면 전폭이 1.7미터 이상이면 중형이 되는 거겠죠? 3시리즈는 1.8미터가 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또 문제가 있어요. 이 기준 대로라면 준중형(유럽기준)으로 평가되는 BMW 1시리즈나 골프 등도 전폭이 1.7미터를 넘기 때문에 중형으로 분류가 될 수 있습니다. 뒤죽박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단히 전장에 좀 더 비중을 두어 분류를 하는 건데요. 일견 맞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까요? 저는 비현실적인 한국의 분류법 보다는 해외의 경우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서 어떤 기준점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거죠.

이건 위키백과에 나온 세그먼트 분류표입니다.

미국은 중형을 둘로 나누고 있죠. 양산메이커의 중형과  베엠베나 벤츠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들만을 따로 분류하는 고급 엔트리카로 이원화했습니다. 유럽은 그냥 중형을 D세그먼트 하나로 분류하고 있죠. 3시리즈 A4, C클래스 등이 모두 이 D세그먼트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미국 기준이든 유럽기준이든 다 중형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는 거죠. 도표 맨 오른쪽 예로 든 차들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은 좀 변수가 있을 수 있죠. 차들이 워낙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차체가 작은 유럽차들은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럭셔리 엔트리카로 별도 분류 개념을 통해 큰 틀에서 중형 안에 놓고 있는 것입니다.

대형은 유럽이나 미국이나 더 세분화 되어 있습니다. 한국만 그냥 대형이라고 덜렁 한 가지로 만들어 놓고 있네요. 독일의 경우는 중형 이상을 대형이라고 하기 보다는 중형이상, 그러니까 준대형 이상으로 큰 틀에서 집어 넣습니다.

이제 정리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차량 체급을 보는 시각이 다르고 복잡한 이유는 앞서 말씀 드렸듯 우리나라의 차량 분류법 자체가 너무 형식적이라는 것에 있죠. 그런데 여기서 꼭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흔히 언론에서나 자동차에 대해 토론하는 공간에서 자주 하는 말 중에, " 아반떼급 3시리즈, 쏘나타 수준인 아우디 A6" 이라는 거죠.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 그 돈 주고 그 작은 차를 왜 사냐?" 라는 것으로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수입차 타는 이들을 허영에 찌든 인간으로 폄하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인데요. 3시리즈를 중형으로 놓으면, A6이 준대형이라고 해버리면 비판의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 체급씩 낮춰 버리면 "작은 외제차 비싼 돈 주고 사는 정신 나간 사람들" 수준으로 비판의 근거가 좀 더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너무 극단적인가요? 폴크스바겐 골프를 기아 프라이드 수준(크기에 한정된 표현임)으로 깎아 내리며 이야기하는 분들, 그리고 많은 언론들을 보면 저의 이런 얘기가 극단적인 게 아니라 그런 분들의 관점이 왜곡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차 자체가 좋고 나쁨은 차치하고 그냥 크기만 갖고 얘기하는 그런 분들 말이죠.

바로 최근에도 기자 한 분이 A6을 소나타급인데 수천만 원 한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더군요. 저는 수입차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수입차를 선택하는 이들을 단순히 크기로 공격하는 분들의 근거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뭐 하나 더 보여드리죠.

 

YF 쏘나타 전장 : 4820mm

 

5G 그랜져 전장 : 4910mm

 

아우디 A6 전장 : 4920mm

 

아우디 A6이 한국 분류의 중요 잣대인 전장만 보면 그랜져 보다 더 길죠. 소나타와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런데 포털에서 보세요. 쏘나타와 A6을 '중형'으로, 그랜져를 '대형'으로 분류해놓고 있습니다. 참고로 신형 5시리즈는 그랜져 보다 전장이 1센티미터 짧을 뿐입니다.

이건 분명 앞뒤가 맞지 않는 분류법이죠. 근데 더 웃기는 건 수입사들도 이런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고, 자신들 홈페이지에서도 이런 식으로 차를 다운그레이드 시켜놓고 있더군요.

하루빨리 우리나라도 차량 체급 분류가 현실을 반영할 수 있길 바랍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계속해서 이런 소모적인 대립과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차의 가치를 크기로 따지며 다투는 일도 사라졌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