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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 아우토반에 관한 몇가지 이야기들


아우토반을 달린다는 건 자동차 좋아하는 분들에겐 작은 바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무제한 고속도로로 잘 알려진 이 도로에 대해 후뚜루마뚜루 알고 있는 대로 한 번 적어볼까 합니다. 처음엔 거창하게 '아우토반에 대한 오해와 진실' 뭐 이렇게 제목을 달까도 생각을 했었는데 말 그대로 너무 거창해서 포기하고 편안한 대화형식의 잡문으로 오늘 포스팅 방향을 잡았습니다.

뭐 전문가도 아니고 얄팍한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 내용들인지라 사실관계에 있어 오류가 있을 수 있사오니 혹이라도 정확히 알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우토반은 히틀러가 만들었다?

아우토반이 히틀러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아우토반은 이미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서 실험적으로 시작이 됐습니다. 물론 지금의 아우토반 형태를 갖춘 것은 제 3제국 즉,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터이지만 이런 도로의 개념과 시작은 히틀러가 처음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어쨌든 최초의 아우토반은 퀄른과 본 사이를 잇는 것으로 1932년 개통했습니다. 참고로 아우토반(Autobahn)이라는 단어는 자동차를 뜻하는 Auto와 길을 의미하는 Bahn이 합쳐진 것으로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인 1929년부터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고속도로 개념은 독일 아우토반이 세계 최초다?

아닙니다. 도시에서 도시간 이동을 목적으로 자동차 전용 도로를 만든 곳은 이탈리아인데요. 베네치아에서 토리노까지의 구간부터 시작된 아우토스트라다라는 이 유료 도로는 1923년에 처음으로 완공됩니다.





아우토반은 전쟁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히틀러에 의해 본격화된 아우토반은 사실 전쟁 보다는 극심한 경제 위기를 타개하고 이를 나치정권 홍보를 위해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경제 대공황 등으로 인해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치솟는 실업율 등은 독일을 사느냐 죽느냐의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는 많은 공공산업을 펼쳐졌고 그 공공산업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 바로 아우토반 건설이었습니다. 2차 대전으로 인해 한동안 사업은 중단되었지만 당시 독일 경제의 버팀목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그렇다고해서 아우토반이 전쟁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실제로 아우토반은 비행기 착륙을 위해 설계가 되었고, 전쟁이 터지면서 많은 터널 등은 군수품 창고나 격납고 등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우토반의 두께는 미국 도로의 두 배에 이를 정도라고 하니 히틀러의 응큼한 마음 한 켠엔 전쟁을 위한 도구로써의 아우토반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네요.





아우토반은 속도 제한이 없다?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아우토반은 속도 제한이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보다 무제한 구간이 많았던 시절에도 160km/h를 권장속도로 두기도 했었는데요. 그래도 좌측에 보이는 이 무제한 표시가 등장하면 1차선은 가공할 만한 속도 전쟁이 시작됩니다.

예전에 '아우토반이 만들어낸 독일자동차의 특징들' 이라는 포스팅을 통해서도 이 무제한 도로가 어떻게 독일 자동차산업을 발전시켰는지를 말씀드린 적이 있을 정도로 무제한 도로의 역할은 단순히 '빨리 달린다' 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이야 전체 아우토반의 20% 정도로 무제한 구간이 줄어들어 운전자들에겐 아쉬움이 크지만 반대로 아우토반의 확장을 반대할 정도로 환경을 생각하는 독일인들에겐 어쩌면 필연적인 변화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참고로 우측 사진을 보시면, 평소에는 꺼져 있다가 전방에 사고가 났거나 정체되어 있어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을 시엔 저렇게 임시로 속도를 제한하는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저 붉은 원이 켜지면 아무리 무제한 구간이라고 할지라도 제한속도 이내로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아우토반에서는 오토바이도 달릴 수 있다?

 


 
예전에 찍어 놓은 사진입니다. 여긴 아우토반 맞구요. 보이는 오토바이는 정상적으로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독일에선 아우토반에 오토바이가 달릴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굉장히 위험해 보이지만 의외로 아우토반에서의 오토바이 사고는 자동차 사고에 비해 적은 편이라고 하는군요. 사진에 보이는 노란 차선은 공사구간이라 임시로 그어놓은 것입니다. 한국과는 달리 독일이나 유럽의 여러나라는 차선이 흰색으로 되어 있다는 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우토반은 통행료가 있다! 없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통행료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 여러나라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국경을 넘을 시엔 각 국가별로 통행료를 징수하게 됩니다. 스위스의 경우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일괄적으로 한 달 짜리 통행료만을 발급해 비싼 편인데요. 하루를 이용하든 반나절을 이용하든 독일에서 스위스로 넘어가기 위해선 한 달짜리 통행료를 끊어야 합니다. 그 외의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하루에서부터 일주일, 한 달 등 다양한 통행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 다른 나라에서 독일로 들어올 땐 어떤가요?....없습니다. 독일 내에서 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독일로 들어올 때 역시 통행료를 받지 않습니다. 다만 12톤 이상의 화물트럭들은 도로 보수 비용이나 교통량 증가, 환경오염 등에 대한 문제로 요금을 받고 있는데 이것을 실시 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독일 정부에서는 재원 확보를 위해 아우토반의 통행료 징수를 원하는 눈치이지만 '세금 많이 걷잖아!' 라는 목소리들이 워낙 강해 아직까지는 선뜻 통행료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분위깁니다.






아우토반에도 한국과 같은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다?

고속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는 독일이지만 한국식 거대 휴게소 같은 공간은 찾기 거의 어렵습니다. 대부분은 주유소가 운영하는 작은 편의점 안에 스낵바처럼 의자 몇 개 놓여 있는 게 전부인데요. 가격도 비싸서 자동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대신 고속도로 주변으로 작은 호텔 등 숙박시설이 갖춰진 곳들이 제법 있는 것은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부분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고속도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장거리 여행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당연하지 않나 싶네요. 

참고로 하나 더 알려드리자면, 아우토반에서 달리다 보면 좌측에 보이는 표지판을 자주 발견 하게 됩니다. 이건 말 그대로 잠시 주차하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인데요. 여긴 대부분 화장실과 차를 댈 수 있는 공간 외엔 아무 것도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졸음 운전을 하는 분들에겐 잠시 눈을 붙이기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아우토반에서 우측 차선으로의 추월은 불법이다?

한국 분들이 아우토반을 처음 이용할 때 가장 한국과 달리 느껴지는 부분이 바로 우측 차선을 달리는 차들이 절대 좌측 차선의 차 보다 빨리 달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1차선이든 4차선이든 아무쪽으로나 추월해 나가지만 독일사람들은 좌측으로 갈 수록 속도가 빠르고, 우측으로 갈수록 속도가 느려야 한다는 교통법규를 철저하게 지킵니다.

가끔, 아주 가끔은 이런 걸 깜빡하는 운전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 흔치 않은 경우인데요. 이런 약속과 룰이 정확하게 지켜지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달려대는 아우토반에서의 사고율이 의외로 낮은 것입니다. 자주 말씀 드렸습니다만 1차선은 추월차선이자 고속차선입니다. 특히 속도 무제한 구간에서 1차선은 시속 300km/h로 달리는 차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요. 이 때 1차선에서 비켜주지 않아도 단속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1차선으로 달리다가도 뒤에서 자신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가 있다면 백이면 백 2차선으로 빠져주는데요. 2차선에서도 뒤차 보다 속도가 늦다 판단되면 얼른 3차선으로 비껴주는 것이 기본입니다. 





아우토반엔 단속경찰이 없다?

왜 없겠습니까! 경찰차는 물론 경찰 오토바이도 다니며 과속차량이나 문제 차량들을 단속하는데요. 사실 가장 무서운 것은 암행단속의 경우입니다.

일반 승용차로 위장한 단속경찰들이 제한속도를 넘어 위험하게 달리는 차량들을 카메라로 확인하면 그 차량 앞으로 달려나가 보시는 것처럼 저런 표시(멈춰라, 혹은 따라오라 등의 표현들이 적혀 있음)를 꺼내 듭니다. 이런 경우는 ' 당신 지금 딱 걸렸으...얼른 따라오시오' 뭐 이런 의미인데요. 그땐 단속차량의 안내에 따라 갓길이나 고속도로 벗어나 주유소 등지에 차를 세워야 합니다. 보통은 동영상으로 과속 순간을 찍어놓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운전자에게 확인시키고 바로 딱지를 끊게 되는데요. 워낙 엄청난 속도로 달려대는 차들이 많아서 암행단속 차량들 수준이 대부분 BMW5 시리즈 급입니다. 



그밖에도 가장 긴 아우토반은 A3으로 약 770km 정도고, 가장 짧은 것은 고작 구간이 3km 밖에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의 경부고속도로나 호남고속도로 처럼 구간을 달리하는 고속도로가 약 200여개 정도 되구요. 오스트리아까지 합치면 독일의 아우토반 총길이는 15,000km에 육박합니다.

어떠셨나요? 이미 아는 내용도 있었을 겁니다. 어쨌거나 아우토반을 보면 독일인들의 특징이 잘 반영이 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인상적인 것은, 앞서 말씀드렸듯 더 많은 고속도로를 지을 수 있음에도 환경을 생각해 이를 반대하는 독일인들의 자세였습니다. 우리는 길난다고 하면 땅값 올라 좋다, 개발돼 좋다며 개발논리에 찬성표 던지는 분들이 많지만 확실히 독일은 나무를 쓰러뜨리면서까지 도로의 폭을 넓히고 길을 늘리는 일에 더이상의 공감대는 없어 보입니다. 하루빨리 우리도 이런 사회적 풍토가 조성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합리적인 도로계획이 우선되어야겠죠? 지금까지 조금은 허접한 아우토반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