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어느 자동차회사 리더의 멋진 마지막 출근길


오늘 이 글은 우연히 찾아낸 사진 한 장으로 쓰게 됐습니다. 몇년 전에 폴크스바겐 회장이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자서전 'CARS'를 읽었었죠.  여러가지 내용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이 그가 회장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는 마지막날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항상 꿈꾸던 1리터 카를 직접 운전해 이취임식이 열리던 함부르크까지 몰고 달려가던 그 과정을 묘사한 대목이었죠. 평생 자동차에 인생을 바친 한 남자의 이야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고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우연히 컴퓨터 외장하드 한 구석에 있던 사진을 보게 됐는데 그 사진엔 바로 피에히 회장이 1리터카를 타고 시험주행을 하던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 속에 묘사됐던 바로 그 장면이었던 것이죠.


몇 장 없는 1리터 카 첫 주행시험 장면일 것입니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책의 내용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이 사진과 함께 자서전 내용의 마지막장을 핵심 내용만 요약해 제가 다시 정리를 해봤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2002년 4월의 어느 날로 잠시 시간여행을 해보시겠습니까?

' 나의 폴크스바겐 회장 임기를 마지막으로 장식할 주제는 바로 1리터 카이다. 나는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65번째 생일 전에는 주행이 가능한 1리터 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점차 구체화해갔다. 그렇게 해서 폴크스바겐의 42회 주주총회와 피쉐츠리더의 취임식이 열릴 함부르크로 1리터 카를 몰고 간다는 계획이 잡혔다. 1리터 카의 프로젝트에는 절대 변할 수 없는 데드라인이 확정되었다.

2002년 4월 16일!

폴크스바겐은 1리터 카가 공식적으로 허가된 양산차의 승차감과 주행 성능에 대한 일반 표준부터 ABS, ESP, 그리고 에어백을 포함한 충돌 안정성까지 전체 기술 제원을 다 갖추었다. 1리터 카의 프로토 타입은 자동차 기술 정기 검사 협회의 규정을 충족시켜야만 했다. 어쨌든 이번 프로젝트의 근본은 아무래도 1리터 연비였다. 그래서 1리터 카의 핵심적인 부분은 공기역학, 경량 차체와 구동장치였다.


플라스틱 보디워크로 만들어진 티어드롭 형상의 디자인은 공기 저항 계수 0.159를 자랑하는데, 앞쪽이 좁기 때문에 공기 저항 계수가 특히 낮았다. 거기다 충돌 안전성을 검증받은 자동차의 총 중량이 290킬로그램에 불과하다는 것은 초경량 차체의 신기원을 이룬 것이다. 1리터 카는 프레임을 마그네슘, 보디를 카본 파이버로 만들어 섀시의 무게가 74킬로그램에 불과하다. 연결 부위, 서스펜션, 설비 등 곳곳에 경량 자재를 사용했다. 특히 하체의 중량을 줄이기 위해 연구 파트는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초소형 엔진을 세로로 배치해 뒤 차축 앞에 놓았다. 이 1기통 디젤 엔진은 4,000rpm에서 8.5마력, 2,000rpm에서 1.9kg.m의 토크를 낸다. 연료탱크 총 용량은 6.5리터에 불과하다. 시험주행 구간으로 선택된 볼프스부르크에서 함부르크까지의 거리는 237킬로미터다. 1리터 카로 볼푸스부르크에서 함부르크까지 주행한다고 막상 발표는 했지만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드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월요일과 화요일로 예정된 퇴임식과 피쉐츠리더(이전 BMW 회장이자 세아트 사장이었으며 현재 회장인 마틴 빈터코른의 전임자-스케치북 주 ㅋㅋ) 취임식에 몰려들 기자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볼프스부르크에서 함부르크 간 주행을 최대한 비밀리에 일요일 오전으로 앞당겼다.

그 때까지 1리터 카는 아직 공장과 테스트용 도로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계산상으로는 1리터의 연료로 100킬로미터 주행이 가능했다. 물론 도로 상황과 날씨는 고려되지 않은 수치였기 때문에 제발 비만은 오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도로에 물기가 있으면 '수분 저항 현상'이 생기고, 아주 꼼꼼한 사람이라면 엔진의 연소가 다소 나빠질 것이라는 걱정을 할 것이다. 그러나 예정된 1리터 카 주행일에 화창한 봄 날씨가 끝나면서 다시는 멈추지 않을 것처럼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사이드 미러도 없앴으며, 대신 양쪽에 카메라를 달아 조그만 LCD 모니터 두 개로 좌우를 살필 수 있게 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1리터 카의 실내에서 마치 안방에 앉아 있는 듯한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1리터 카 시트는 쿠션 대신 마그네슘 소재의 프레임으로 되어 있었다.

주행 내내 연료 소비와 경량 차체에 따른 연비를 세심하게 체크하는 원격 측정 자동차가 동행했다. 볼프스부르크에서 출발하고 첫 100킬로미터 구간에서 1.3리터의 연료가 소모되었다는 측정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우선 그날 내린 비로 무넺가 있었고, 두 번째로 하노버 쪽의 대규모 공사장 때문에 교통 흐름이 막히면서 주행 속도가 많이 느려졌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리터 카가 100킬로미터 주행당 0.8리터에서 0.9리터 정도의 연료를 소모하고 있는 것으로 원격 측정되었다. 아우토반 휴게소에서 한 번 정지하도록 프로그래밍했지만 특별히 손댈 것이 없었다. 다만 비가 오면서 추워진 것이 유일하게 불편한 점이었다. (영상7도의 기온)

비밀리에 진행된 시험 주행이었기 때문에 카메라맨들을 미리 차단할 수는 있었지만, 우리를 알아본 운전자들과 폴크스바겐의 시험 차량은 위험천만한 추격전을 몇 번이고 벌였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진행되었고 드디어 함부르크에 다다르게 된다. 함부르크 시내로 접어들면서 나는 어느새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발을 호텔의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담글 수 있다는 기대로 들뜨기 시작했다.


호텔 정문 앞에 도착하여 우리는 연비를 바로 측정했다. 총 237킬로미터 주행에 연료는 2.1리터가 소비되었다. 계산해 보면 평균 시속 71.5킬로미터의 속도에서 100킬로미터 주행당 0.89리터의 연료를 소모한 것이다. (리터 당 112.35km) '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탁월한 엔지니어이자 경영자였습니다. 만신창이가 됐던 멕시코 생산 골프의 문제를 해결해냈고, 골치덩이 세아트를 우량하게 키워냈으며, 부가티와 벤틀리를 성공적으로 흡수합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93년 취임당시 적자였던 회사를 퇴임시 엄청난 흑자 회사로 돌려놓았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정사에서 좀 문제가 있어서 배다른 자식들도 많은 편이었는데요. 어쨌거나 회장직 물러나고도 계속 이사회 의장으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결국 1리터 카는 얼마 전에 새로운 컨셉 모델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 내용을 다시 정리해보면서 느낀 것이, 1리터 카에 대한 그의 열정에 시선이 간 것이 아니라, 1리터 카를 타고 주행에 성공한 채 자신의 마지막날을 멋지게 마무리한 그의 아름다운 퇴장에 있었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뜨거운 시작은 포르쉐였으며, 개발자로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아우디에서 보냈고, 경영인으로서 폴크스바겐 그룹 전체를 병든 공룡에서 지배자로 되살려 놓은 그의 화려한 인생의 파노라마가 1리터 카라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는 건 우리에게, 그리고 대한민국 기업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노신사의 인생이 농축되어 있는 듯 싶어 묘한 감동이 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