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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과속단속 카메라 알림 앱에 대한 두 가지 시선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등장은 운전자들에게 여러 면에서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지도를 볼 필요도, 누군가에게 길을 묻지 않아도, 또 막히는 구간에 속절없이 갇혀 있을 필요도 없게 됐죠. 그리고 또 하나, 바로 과속단속 카메라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내비게이션의 기능입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앱이 있어 내비게이션이 없더라도 이런 과속단속 카메라 위치를 확인받을 수 있게 됐는데요. 그러니 옛날처럼 번호판에 효과도 없는 CD를 붙여 놓는다거나 갓길 운전을 일삼는 등, 흉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과속 단속 무인카메라는 과속을 통한 사고를 방지하는 게 우선의 목적입니다.

단속 카메라가 있다는 걸 표지판을 통해 미리 알려주기도 하고, 친절하게 "제가 바로 과속단속 카메라입니다."라고 명찰까지 달고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게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지방경찰청 홈페이지 등에 들어가 보면 특정 지역 무인 카메라 정보를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속단속 카메라 확인은 이젠 너무나 자연스러운 우리의 교통 문화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 우리와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를 보입니다. 앱이나 내비게이션을 사용해선 안 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과 사고 예방 등에 효과적이니 이제 좀 더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시선이 선명하게 갈려 있기 때문이죠.

독일의 과속단속 카메라

불법과 합법의 묘한 경계

과속단속 카메라 위치 정보는 어떻게 운전자에게 전해질까요? 단속 카메라 위치를 데이터화한 다음, 내비게이션에 장착된 GPS를 통해 차량의 현재 위치와 저장되어 있는 단속 카메라 위치를 계산해 미리 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종류는 고정식과 이동식, 그리고 구간 단속 카메라로 나뉘는데, 독일은 이동식 카메라의 경우 자유롭게 이동하며 단속하는 설치형과 은폐형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현재 독일에는 15만여 개의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차량에 레이저 감지기 등, 위치측정이 가능한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죠. 단, 단순히 과속단속 카메라 위치를 앱이나 내비게이션을 통해 공유하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불법이 아닙니다. 따라서 과속단속 카메라 알림 앱을 만드는 회사들은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법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운전자들이 발로 뛰어 만든 정보

독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블릿처 앱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블릿처(BLITZER.DE)라는 회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곳은 과속단속 카메라 알림 앱을 개발하는 곳으로, 5유로 정도의 비용이면 독일은 물론 유럽과 북남미, 중동과 동남아시아, 러시아 등에 있는 과속단속 카메라 정보를 스마트폰에 담을 수 있습니다. 톰톰과 가민과 같은 유명 내비게이션 회사들도 이 블릿처의 정보를 활용하고 있을 정도인데요.

특히 은밀하게 숨어 있는 이동형 단속 카메라의 경우 운전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블릿처 홈페이지에 올리면 회사는 해당 정보를 다시 자료화해 끊임없이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직접 어지간해서는 알기 어려운 내용까지도 생산해내기 때문에 최신 정보의 공유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것도 합법적으로 말이죠.

홈페이지엔 회원들이 올린 독일 내 단속 카메라 정보가 매일 쌓인다 / 사진=블릿처 홈페이저 캡처

이런 과속단속 카메라 앱을 만드는 회사들은 매년 수백억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한 독일 언론이 전하기도 했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과속 단속 내비게이션과 앱에 대해 독일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효용성이 입증됐으니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표지판대로만 운전하면 되는 것을 왜 이런 게 필요하냐는 원칙론이 팽팽합니다.

보통 자기 동네의 경우 어디에 카메라가 있고, 어디에서 이동형 카메라가 주로 설치되는지 알지만 초행길인 경우 이런 앱과 내비게이션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는 독일인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당장 제 주변만 하더라도 제한속도 표지판대로만 운전하면 된다며 이런 것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독일 언론에서조차 이런 과속단속 카메라 확인 앱이나 내비게이션 사용을 공개적으로 다루고 있고 더 체계화시키자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문제는 정리가 되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지도 읽고 표지판에서 하라는 대로 운전하던 독일과 같은 나라도 이런 변화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독일 아우토반 제한속도 표지판

보조적 역할 되어야

과속단속 카메라의 우선 목적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감속을 통한 안전 운행에 있습니다. 몰래 숨겨놓은 이동식 카메라든 고정식이든 본래 목적은 같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기계 문명의 도움을 받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가장 좋은 태도는 이런 과속단속 카메라 알림 기능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교통표지판에 나와 있는 대로 운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독일에 와 운전을 막 시작할 때 아내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표지판을 제대로 읽을 것."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교통표지판을 제대로 안 읽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단순히 속도뿐만 아니라 여러 정보가 그 안에 담겨 있는 표지판만큼 도로 상황을 확실히 알려주는 것도 없습니다. 어쨌든 아내 덕에 독일 표지판을 읽는 습관을 제대로 들였고, 지금까지 과속단속 카메라용 앱이나 내비게이션 없이도 과속으로 벌금을 물지 않고 잘 버티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늘 100% 표지판대로 운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과속단속 카메라 확인용 앱이나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혹시 모를 상황에서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잘 활용할 필요가 있겠죠. 하지만 그래도 우선순위는 표지판대로 운전하는 것이라는 것,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독일이나 한국, 그 어디에서 운전하더라도 이 규칙은 유효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