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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꿈의 자동차 매매단지 독일 '클라식슈타트'에 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프랑크푸르트가 두 곳인지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은 독일을 대표하는 금융과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유럽중앙은행이 자리하고 있으며, 비행기와 기차, 그리고 아우토반 등을 통해 유럽 어디든 갈 수 있죠. 그런데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에겐 여느 유럽의 관광도시와 비교해 큰 매력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조금만 벗어나면 둘러볼 곳이 많기 때문에 관광 거점으로서 역할은 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 아닐까 싶은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해결이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이들, 특히 자동차 박물관을 찾는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부분입니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프랑크푸르트모터쇼가 있기는 하지만 가고 싶을 때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이벤트는 아닙니다. 물론 시내, 그리고 주변으로 1시간 안에 가볼 수 있는 거리에 자동차 박물관이 몇 개 있긴 합니다만 규모가 작고 관광객을 끌어올 만한 그런 콘텐츠를 갖추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 11월 클라식슈타트(KLASSIKSTADT)라는, 드디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도 가볼 만한 자동차 공간이 등장했습니다.

클라식슈타트 전경

프랑크푸르트 동쪽으로 차를 타고 가면 만날 수 있는 클라식슈타트는 현지 거주자도 찾기 쉬운 곳이 아닙니다. 저도 내비게이션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변이 관광단지처럼 잘 꾸며져 있지도 않습니다. 오래된 공업단지 한쪽에 위치해 입간판도 잘 안 보여 입구를 놓치기 십상이죠. 하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디귿 모양의 거대한 벽돌 건물이, 물어물어 찾아온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듭니다.

자동차 매매단지 느낌이 안 든다

16,000제곱미터(4,800평 이상)의 건물에는 350대에서 400대에 가까운 중고차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중고차라는 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차가 아닙니다. 독일에서 흔히 올드타이머 (나온 지 30년 이상 된 차)로 불리는 클래식카들이고, 맥라렌 (영국인들 발음으로는 맥클라렌)이나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의 수퍼카도 함께 판매되고 있습니다. 차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유리 부스 안에 있는 노란색 맥라렌이 시선을 잡아끄는데요. 

McLaren 650S

하지만 제 눈은 건물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검정색 벤츠 220 SE로 향했습니다. W128이라는 제조명을 갖고 있으며, 1958년에서 1960년까지 만들어진 바로 메르세데스 S클래스의 조상인 그 모델이었습니다. 이 차는 일반도로에서 구경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쿠페는 800대 정도밖에 안 만들어져 더 귀합니다. 동글동글한 폰톤타입을 하고, 판매를 위해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는 W128에 이미 건물 들어서기 전부터 클라식슈타트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잘 손질된 W128은 매력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니 문 양옆으로 벤츠 두 대가 떡하니 버티고 있더군요. 붉은색  메르세데스 290 카브리올레는 1936년에 만들어진, 당시로는 고마력이던 68 PS 6기통 엔진을 달고 있습니다. 대체로 판매되는 차량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 이 차는 상담을 받으라는 표시만 있더군요. 

벤츠 290

1910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도 폭격을 받지 않고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처음엔 농기계 제작 공장으로, 그리고 독일 화폐 50마르크를 찍어내던 곳으로, 또 독일 세관 유니폼 보관 창고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다 2012년부터 2년간의 공사를 거쳐 클래식카 및 수퍼카 매매단지로 탈바꿈했습니다. 

1층 맥라렌과 람보르기니 매장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눈에 띄는 건 경주에 참여했던 F1 머신과 그 밖의 레이싱카들도 여기서 구입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독일에는 이처럼 클래식카나 수퍼카, 머신 등을 판매하는 단지가 곳곳에 있긴 하지만 클라식슈타트(클래식도시라는 뜻)만큼 큰 규모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맥라렌 매장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람보르기니 모델들

1억 이하로 살 수 있다는 르노 R27 F1 머신

또 눈에 띄었던 것은 메르세데스 벤츠 클래식카만 전문적으로 수리를 하는 정비업체였습니다. 건물 안 몇 곳으로 나뉘어 옛날 벤츠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규모가 생각보다 크더군요.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람보르기니 모델들만을 정비하는 업체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클라식슈타트에는 특별한 자동차를 다루는 정비소만 35개가 있다고 합니다.

벤츠 클래식카 전문 정비소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클래식카들을 만날 수 있는데 피아트와 알파 로메오 등, 자주 보기 어려웠던 이태리산 클래식카를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 외에도 포르쉐, 벤츠, 르노의 국민차 2CV, 볼보 등, 국적과 브랜드 가리지 않고 옛날 모델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실버

손질이 안 된 채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자동차를 파는 곳이 많았지만 규모가 큰 한 회사의 경우 깨끗하게 수리한 고가의 클래식카 수십 대를 한꺼번에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았습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어 그 안을 담을 수 없었지만, 옛날 차들이 잘 정비돼 늘어서 있는 모습은 정말 멋졌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찾던 업체의 전시장 입구 모습

4층 건물 중 1층부터 3층까지만 차량이 전시돼 있고 맨 위층에는 사무실과 클래식카 애호가를 위해 만든 개인 수집공간이 은밀(?)하게 자리해 있다고 하는데요. 36개의 협력업체가 클라식슈타트와 함께 하고 있으며 현재 45개 업체가 입점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차를 팔고 정비만 하는 게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 보험회사, 또 공인 인증 기관, 시트 커버 제작업체, 그리고 고급 오디오 업체와 모형차 판매점 및 의류 매장 등,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또 한 쪽엔 고급 레스토랑이 먹는 즐거움까지 주고 있습니다.

늘 판매가 이뤄지는 곳이다 보니 전시돼 있는 차량은 늘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박물관보다 더 매력적으로 와 닿았죠. 언제와도 이전에 못 보던 클래식카나 수퍼카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본 많은 차 중 인상적인 것들 몇 가지를 꼽아 봤습니다. 

피아트 124 스파이더 오리지널 및 신형

2016년 피아트가 내놓은 모델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피아트 124 스파이더가 오리지널과 함께 전시돼 있었는데요. 안전, 성능, 탑승자의 체형 변화 등에 따라 차체 디자인은 어쩔 수 없이 변했지만 역시 스타일만 놓고 본다면 1세대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FXX

2007년 29대 한정판으로 나온 페라리 FXX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강렬한 붉은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0 CLS 오마주 및 아트카 사진

3.0 CLS의 멋

70년대를 빛낸 레이싱카로 유명했던 3.0 CLS를 본 것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강렬한 노란색에 거대한 꼬리날개(리어윙)는 시선을 잡아끌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 모델에도 역시 가격표는 붙어 있지 않았고 구매를 원하면 연락을 달라는 표시만 있었습니다. 얼마면 살 수 있을까요?


P538

한창 자동차를 감상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셔터 소리가 계속 났습니다. 붉은색의 경주용 자동차 한 대 주변에 모여 있던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죠. 뭔가 낯이 익은 모델이었는데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비자리니의 레이싱카 P538이었습니다. 

지오토 비자리니는 페라리 250 GTO 설계에 참여했던 전직 페라리 엔지니어였습니다. 나중에 따로 회사를 세운 뒤에는 람보르기니 미우라 V12 엔진을 설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스포츠카의 낮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P538에도 잘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름다운 BMW 507부터 독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포르쉐 356, 폴크스바겐 부흥의 한 축이었던 마이크로버스 불리도 볼 수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포르쉐 카레라6도 흰색의 느낌이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책에서나 볼 법한 다양한 클래식카를 한 자리에서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클라식슈타트는 매력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예쁘다~

클라식슈타트는 매년 4월부터 10월에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죠. 야외의 널따란 주차장은 클래식카 동호회원들이 끌고 나온 자동차로 가득 채워집니다. 각종 회의와 행사가 연중 계속해서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차를 팔기 위한 공간으로만 만든 게 아니라 이름 그대로 클래식카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하나의 마치 작은 도시처럼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긴 자동차 역사가 이곳 클라식슈타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았고, 이처럼 잘 차려진 공간이 있기에 독일인들의 클래식카 사랑은 흔들림 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 어떤 자동차 박물관보다 더 박물관 같았던 클라식슈타트였습니다.

새해입니다. 올해 스케치북다이어리는 작년보다 더 활발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추천(본문 하단 공감버튼)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좋은 콘텐츠 잘 만들어 내겠습니다. 힘차게 출발할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