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폴크스바겐 판매량에 대한 자료였죠. 2016년 1월부터 11월까지 세계 시장에서 540만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7.5% 증가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디젤 게이트가 터진 건 2015년 9월 일이었고, 2015년 4분기는 디젤 게이트 여파로 판매량 폭락 소식이 곳곳에서 전해지던 때였습니다.
판매량 하락은 시작일 뿐, 폴크스바겐은 물론 그룹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확대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일각에서는 보유한 자동차 회사 중 최소한 1개 정도는 팔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곳곳에서 폴크스바겐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여러 나라가 자체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던 2016년 한 해, 디젤 게이트 이후 시장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변화는 크게 3가지 정도로 정리가 될 수 있습니다.
폴크스바겐 로고 / 사진=픽사베이
1. 폴크스바겐은 버텼고 디젤은 그렇지 못했다
그룹 회장이 바뀌고, 외부에서 디젤 게이트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 판매량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버텼고 그 생존 전략이 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폴크스바겐 전체 판매량이 플러스로 돌아선 결정적 영향은 중국 시장으로부터 받아낸 것이었죠. 어쨌든 판매량 상승이라는 희소식을 그들은 맞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판매량만으로 붙잡기 어려운 브랜드 가치 하락은 당분간 쉽게 회복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디젤 게이트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디젤 자동차는 그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독일은 11월까지 전체 디젤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가 줄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가솔린 자동차 판매량은 8.8%가 늘었죠.
프랑스는 감소율이 더 심합니다. 디젤차 비중이 70%가 넘던 프랑스는 유로6 도입 이후 60%대로 떨어졌고, 2015년 디젤 게이트 터지기 이전 발표된 디젤차 등급 라벨 계획과 디젤 게이트로 그해 하반기에 60% 아래로, 그리고 올 상반기까지 52% 수준으로 신차 디젤 판매 비중은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거기다 프랑스는 디젤차를 업무용으로 쓰는 기업에 디젤 연료 부가세 줄여주던 혜택을 내년부터는 가솔린 연료에도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버스나 렌터카, 업무용 차량을 대부분 디젤차로 쓰는 환경에 변화가 생길 건 뻔한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의 디젤 점유율도 50% 이하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디젤 신차 판매량 감소는 특정 회사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제조사 디젤 수요가 줄었습니다. 폴크스바겐은 미국 시장에서 디젤로 승부를 보려던 계획을 바꿔 디젤 판매 자체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간 폴크스바겐과 함께 디젤로 미국을 두드렸던 메르세데스와 BMW도 미국에서의 판매 중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디젤의 영향력이 떨어지게 되는 될까요? 물론 변수는 있습니다. SUV의 붐이 그것인데요. 과연 디젤을 SUV가 되살릴지도 지켜볼 대목입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제조사의 결정뿐 아니라 국가별로도 큰 변화를 예고한 한 해였다는 점입니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등에서는 2025년부터 아예 내연기관 자동차를 판매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프랑스 파리는 점차 디젤차 통행을 금지시키고자 하고 있고, 독일 역시 도시와 주별로 디젤차의 운행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국가 단위가 아니라 지역 단위로 디젤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제재의 현실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움직임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게 2016년 한 해 동안 벌어지거나 드러난 사실이었습니다. 디젤차는 이제 원하든 원치 않든,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됐습니다.
2. 미세먼지의 주범? 가솔린 직분사 엔진 새로운 화두로
질소산화물이라는 유해 물질은 사실 보통의 운전자들에겐 큰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디젤 게이트를 통해 이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제조사는 눈에 보이는 시커먼 분진(미세먼지)을 줄이는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질소산화물 배출을 후처리 장치로 조절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약속된 기준치를 실제 도로 주행 시엔 넘어섰고, 이 인체에 해로운 가스를 새로운 측정법 (RDE 등)으로 기준치 아래로 내리겠다고 EU 등은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디젤 게이트 영향이었을까요? 대기 오염 상황이 나빠지고 있던 우리나라에서는 디젤차가 내뿜는 질소산화물이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몰렸습니다. 디젤 엔진은 분진을 걸러내는 필터(DPF)가 장착돼 있어 대부분을 잡아냈지만 정부는 질소산화물이 대기 중에 미세먼지로 변하고 그 비중이 높다며 디젤(과 고등어)차에 대해 압박을 가했습니다.
논란이 일었습니다. 발전소와 공장, 그리고 중국의 영향이 크다는 점 등이 디젤 자동차로 모두 가려진 느낌이었습니다. 질소산화물이 미세먼지로 얼마나 바뀌는지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학계에서도 나왔습니다. 유럽 역시 질소산화물을 미세먼지의 직접적 원인으로 보기 보다는 인체에 유해한, 스모그 등과 연결해 비판했습니다.
아직까지 질소산화물이 미세먼지 주범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정부는 국민에게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는 사이 유럽에서는 예전부터 미세먼지를 과다 배출하는 요인으로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지적했습니다. 최근에도 이와 관련한 소식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거의 모든 가솔린 직분사 엔진들이 새로운 연비측정법에 따르면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디젤은 모든 테스트 모델이 기준치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EU 집행위는 2018년부터 가솔린 직분사 엔진이 달려 나오는 신차에 분진 필터(GPF)를 장착하게 할 것이라고 상정된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크리스마스 전의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대기오염은 디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미세먼지로만 이야기할 수준도 아닙니다. 정부는 대기오염 전반에 걸쳐 대응해야 하고 엔진 자동차가 내뿜는 정확한 배출가스 수준을 파악해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제발, 대기오염 문제에 정부는 적극적 관심을 가져주세요.
3. 전기차, 되돌릴 수 없는 흐름
디젤 게이트가 터진 후 가장 주가를 높인 건 전기차 회사들이었죠. 업계의 이단아이자 화제의 중심에 있던 테슬라는 물론, 예전부터 전기차에 많은 투자를 해온 중국, 그리고 늦었지만 유럽계 자동차 회사들의 강력한 전기차 프로젝트 등이 2016년 한 해를 달궜습니다.
미국 역시 전기차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IT 기업들이 친환경 재생에너지 사업에 계속해서 박차를 가하며 유럽과 함께 깨끗한 전기 생산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더욱더 활발하게 이뤄질 것입니다. 친환경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전기차 역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폴크스바겐은 앞으로 10년 안에 전기차 30종을 출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굉장히 많은 숫자입니다. 또 2025년까지 노력해 연간 백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VW가 한 해 판매량 1/6에 해당합니다. 폴크스바겐만이 아닙니다. 전기차는 모든 제조사가 매달리는 자동차가 됐습니다. 이산화탄소 규제는 더욱 강력해지고, 결국 돌파구를 어떻게 해서든 제조사들은 찾아야 하는데, 전기차가 현재로써는 유력 대안입니다.
유럽에서는 메르세데스, BMW, 아우디, 포르쉐, 포드 등이 급속 충전기를 지속적으로 유럽 전역에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각국 정부의 충전망 확충과는 별도의, 제조사 자발적 투자입니다. 이거 굉장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전기차 인프라 문제가 몇 년 안에 빠르게 해소되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완충 후 600km를 달릴 수 있다고 한 완전자율주행 전기 컨셉트 카 I.D. / 사진=폴크스바겐
자, 위에 언급된 것들은 모두 올 한해 드러난 사실들입니다. 디젤 게이트 이후 자동차 업계와 자동차 소비 패턴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는 앞으로 디젤의 문제와 상관없이 자체 성장 동력을 가지고 커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또 디젤차도 타격을 입긴 했지만 생존을 위한 기술적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미 몇몇 디젤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는 새로운 배출가스 측정에도 끄떡없는, 안정적 수준의 결과를 보였습니다. 이런 제조사들은 보다 자신 있게 디젤 전략을 펼칠 것입니다. 새로운 대안이 시장에 자리를 잡고 판이 완전히 뒤집어지기 전까지 디젤 생존 전략은 유용하게 작동할 것입니다. 2016년은 이처럼 디젤의 어두운 면과 또 새로운 가능성이 공존한 한 해가 아니었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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