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우토반은 질주 본능이 늘 살아있는 곳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쳤다고 생각들 정도로) 달리는 것에 완전히 타는 목마름 그 자체입니다. 약 12,000km의 구간 중 절반 수준이 속도제한이 없는 곳이고, 이곳에서는 그 어떤 공공도로에서도 느낄 수 없는 속도의 쾌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속도 제한이 있는 나머지 구간에서는 도로 상황에 따라 시속 100km/h에서 130km/h 수준으로 달리게끔 표시돼 있죠. 그런데 이 아우토반을 이용하는 독일 운전자들이 속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는데, 바로 '흐름'입니다.
아우토반 / 사진=위키피디아, RaBoe
흐름이라는 것은 자동차들이 원활하게 이동하는 정도를 말하는데요. 도로의 상태는 물론, 법으로 정해놓은 규칙을 운전자가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흐름이 좋은 도로가 될 수 있는 핵심 조건이 되겠죠. 그렇다면 이 흐름을 만들기 위해 운전자들이 알아야 하는 규칙은 뭘까요? 정확하게 차로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편도 3차로의 독일 아우토반을 예로 들어보죠. (기본 규칙은 독일과 우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진입하게 되면 맨 우측 3차로에서부터 주행이 시작됩니다. 앞지르기는 무조건 왼쪽 차로를 이용해야 하며 절대 오른쪽으로 추월해선 안 됩니다. 이는 1차로가 추월차로라는 것 못지않게 운전자가 아우토반에서 철저히 지키는 것 중 하나인데요. 그런데 우측으로 추월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좌측, 그러니까 1차로나 2차로의 상황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1차로는 추월 시에만 사용해야 하고, 2차로 역시 오른쪽 차로가 비어 있다면 비워두고 3차로를 이용하는 게 기본입니다. 이 규칙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정체 없이 흐름이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아우토반에서는 이 규칙이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분도 계실 것이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지겹게 들은 분도 계실 겁니다.
아우토반 / 사진=픽사베이
그런데 고속도로 주행규칙이 신기할 정도로 잘 지켜지고 있는 독일이지만 모든 운전자가 이처럼 약속된 운전을 하는 건 아닙니다. 가끔씩 만나게 되는 1차로 정속주행 운전자, 오른쪽 차로가 비어 있음에도 2차로 등, 왼쪽 차로를 점유한 채 운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운전자로 인해 규칙이 깨지게 되고, 깨진 규칙으로 인해 도로의 흐름 역시 좋지 않게 됩니다. 물론 사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겠죠?얼마 전 독일 최대 자동차클럽인 아데아체가 발행하는 잡지에 재미난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교통전문가에게 다양한 교통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는 그런 코너였는데요. 남편의 운전 태도에 대한 상담이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상담자 : "남편은 이상하리만큼 아우토반에서 왼쪽 차로(1차로) 주행을 고집합니다. 무조건적이죠. 그러다 남편 차보다 좋은, 혹은 큰 차가 나타나면 그때서야 길을 비켜줍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니나 반 (교통 심리학자) : "보통 왼쪽 차로에서 운전하는 사람의 경우 차선을 변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나, 아니면 (빨리 달릴 수 있고 비켜주기 때문에)편안해서, 또는 운전 시 다른 생각을 하는 등의 집중력이 떨어졌을 때 이런 태도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당신의 남편은 다른 거로 보입니다.
큰 차, 비싼 차가 나타나면 그제야 차로를 양보한다는 건 자동차에 일종의 등급을 부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회사에서 직급에 따라 상하관계를 만드는 그런 태도가 운전 중인 남편에게서 나타나는 것이죠. 하지만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무엇보다 도로교통법에서 이런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계속해서 남편에게 법을 어기면서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깨닫게 해줘야 합니다."
아우토반 / 사진=스케치북
1차로를 점유한 채 지금 이 시각에도 당연하다는 듯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운전자들에게는 이런 내용이 상담거리가 된다는 게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면허 취득 과정 이전부터 부모로부터 철저하게 고속도로 주행법을 설명 들은 독일인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바로 앞에서 설명한 원활한 도로의 흐름을 막는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죠.
뉴스에서 경부고속도로 1차로 주행 단속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단속된 한 운전자는 무엇 때문에 단속이 됐는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더군요. 우리나라 운전면허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안전하고 원활한 흐름이 있는 고속도로가 되기 위해서는 단속이 먼저가 아닙니다. 제대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을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게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런 기본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고 고속도로가 원활하게 돌아가길 바란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면허교육은 이론과 실기 모두에서 기본이 철저히 교육됐으면 합니다. 아우토반의 경쟁력은 하드웨어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철저한 교육, 그리고 배운 것을 정확하게 지키려는 문화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은 얼마든지 대한민국의 고속도로에서도 구현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운전자뿐 아니라 정부도 깊은 고민이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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