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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중고차 살 때 독일인들이 챙겨보는 자료 3가지

여러분은 중고차를 살 때 무엇을 참고하십니까? 주변인의 경험담, 또는 차를 잘 아는 친구의 권유, 아니면 자동차 매체들이 전하는 각종 시승기나 블로거가 전하는 정보 등을 참고하시나요? 혹은 복잡한 과정이 싫어 적당하게 중고차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 중 하나 골라서 구매하십니까? 

자동차는 구매 비용도 비용이지만 내 운전 습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차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고, 또 구매 후에 고장 등의 문제로 속썩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바람대로 고장 없이 딱 맞는 차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차를 사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중고차 구매에 필요한 정보를 막상 찾으려고 하면 의외로 찾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중고차 구매 요령' 등을 알리는 정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연비나 내구성 등을 객관적 지표를 통해 보여주고 소비를 돕는 그런 시스템은 보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1년에 신차 수요가 150만대 수준에 이르고, 중고차는 그보다 훨씬 많이 매매가 되는 시장치고는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생각됩니다. 그래서 독일의 예를 통해,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그런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고장 보고서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법으로 정한 자동차 정기검사라는 게 있습니다. 2년에 한 번씩인데, 요즘 1년에 한 번씩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죠. 매년 1천 5백만 대에서 2천만 대의 중고차가 독일 내에서 정기검사를 받습니다. 대형 검사 대행업체 3-4곳이 이를 담당하고, 이들이 1년 동안 점검한 정기검사 결과는 유력한 자동차 매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보고서 형식으로 소비자들에게 공급됩니다.

아우토빌트의 튀프 보고서

200대가 넘는 자동차 모델이 연식별로 결함률이 얼마인지, 그리고 어디가 어느 수준의 고장을 일으켰는지 상당히 꼼꼼히 그 결과를 밝히고 있어 중고차를 사려는 독일인(은 물론 유럽 여러 나라가)에게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차 좀 관심 있는 독일인 집에 이런 보고서 한 권씩은 아마 다 있을 겁니다. 

만약 내가 관심 있는 모델이 있는데, 배기 부분에 문제가 잦거나 많다든지, 헤드램프 등에 잦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리고 연식이 오래될수록 결함률이 크게 뛴다면 아무래도 꺼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꼼꼼히 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에게 결함 보고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자료이며, 이런 자료는 다시 제조사에게 자극제가 돼 차량 개선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연비 공유 사이트 '슈프리트모니토'

뭐든 기록하고 남기기를 좋아하는 독일인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사이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동차 오너들이 직접 자신의 자동차 연비를 기록해 정보를 공유하는 슈프리트모니토(spritmonitor)라는 곳인데요. 현재까지 56만대 이상의 자동차와 40만 명에 가까운 운전자가 이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주행거리만 1백 6억 5천만 킬로미터가 넘고, 8억 리터 이상의 기름 소비가 기록됐습니다. 

슈프리트모니토 화면 캡처

제조사와 모델을 검색하면 연식에 상관없이 해당 모델을 소유하고 있는 오너들이 기록한 주행 기록과 기름 소모 기록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운행한 날짜, 주행 거리는 물론 넣은 기름의 종류와 날씨 상태, 타이어는 물론 아우토반과 시내 등 주행한 곳과 주행 모드까지, 아주 세세하게 기록을 하게끔 되어 있어서 연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중고차 구매자에겐 제대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비록 운전자의 주관적 기록이기는 하지만 그게 계속 쌓이면서 정보양이 많아지고, 이 풍부한 자료는 특정 모델의 실제 연비 효율성을 가늠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개인뿐만 아니라 연비와 관련한 자료를 구하는 단체나 언론도 자주 이용할 정도로 대표적 연비 공유 사이트인데요. 이곳에는 그동안 측정된 연비 기록을 기준으로 가장 효율적인 디젤차와 가솔린 모델을 순위별로 공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까지 가솔린의 경우 아우디 A2가 총 129명의 오너의 기록에 따라 리터당 평균 27.77km를 달릴 수 있는 것으로 나와 1위를 차지했고, 디젤은 토요타 야리스 하이브리드가 904명의 오너가 기록한 기록에 따라 리터당 20.8km를 달리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많은 변수가 있지만 그만큼 누적된 정보가 많기 때문에 신뢰를 받고 있는 게 슈프리트모니토의 경쟁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A2 / 사진=아우디

자동차 자율 검사 기록 

보통 자동차는 국가에서 주관하는 정기 검사(2년마다)를 통해 100여 가지 부분이 점검되죠. 여기서 통과를 해야 차량 운행이 가능한데요. 이와는 별도로 독일에서는 1년에 한 번, 혹은 적정 주행거리 이후에 사비를 들여 운전자가 직접 차량 검사를 받는 '자율 검사(Freiwillige Inspektionen)'가 일반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고차 거래 시 이 '자율 검사' 기록이 있는지 없는지를 밝히는 게 또한 일반적입니다. 저도 그렇고 대부분의 독일 운전자가 중고차를 검색할 때 이 '자율 검사' 기록이 없는 차는 일단 제외하는 게 보통인데, 차량 관리 및 수리 교체 내역이 여기에 다 담겨 있기 때문에 가장 확실하게 차량 상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종이에 기록하고 정비소가 보증한다는 사인이나 도장을 찍었는데, 최근에는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정비소에서는 모두 컴퓨터를 통해 '자율 검사' 내용을 모두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사진=tuev-sued

위에 세 가지 외에도 자동차 매체들이 실시하는 비교테스트 내용이나 10만km 내구 테스트 결과도 중고차 구매를 위한 자료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고차 시장이 좀 더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독일처럼 다양한 데이터를 공유해 선택을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되면 정부가 나서서라도 다양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종합 포털사이트를 만드는 건 어떨까 싶네요.

또 운전자가 직접 관리하는 차계부 시스템을 공적 개념으로 확장시켜, 중고차 매매 시  자료로 쓰일 수 있도록 관련법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봄 직합니다. 중간에 딜러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이게 시스템으로만 자리 잡는다면 흔히 말하는 허위 매물을 줄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중고차 시장에 대한 신뢰는 말로만 해서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누구나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오늘 보여드린 독일의 경우를 참고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정부나 소비자가 함께 고민을 해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