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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순위와 데이터로 보는 자동차 정보

데이터로 확인된 '공인연비는 뻥연비'

"너무 심한데?"

며칠 전 국제청정운송위원회(ICCT)는 58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내놓으며 유럽에서 갈수록 제조사의 공인연비와 실제 주행연비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청정운송위원회라는 이 긴 이름, 어딘가 낯익지 않습니까? 지난해 터진 폴크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그 눈속임을 밝혀낸 곳 중 하나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깨끗한 운송 환경과 그를 위한 정책을 돕는 데 많은 역할을 하는 공신력 있는 비영리단체입니다.

그런 ICCT가 이번에는 유럽 7개 나라 13개의 기관과 자동차 전문 매체에서 실시한 실연비 테스트 결과를 가지고 공인연비와의 차이를 분석했습니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출시된 유럽 내 자동차 약 98만대의 자료를 매우 구체적으로 분석했고 그 결과, 2015년에는 제조사가 밝힌 유럽 공인연비와 실연비의 차이가 42%까지 벌어졌다고 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사진=tuev-sued

ICCT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유럽에서 출시된 자동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70g/km였습니다. 그런데 2015년에는 평균 120g/km로 큰 폭으로 떨어집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대한 유럽의 기준이 2009년 도입되고 나서부터 이런 감소폭이 더 커졌는데 이대로라면 2021년까지 새로운 목표치인 95g/km 달성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7개 나라와 13개 기관 / 자료=ICCT 보고서 일부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험실에서 제조사가 실시한 연비측정에 따른 것일뿐, 만약 앞서 공개한 42%의 편차대로라면 새로운 이산화탄소 규제치 도달은 결과적으로 사기가 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물론 13곳의 실연비 테스트는 여러 변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정확한 자료로 보긴 어렵다는 점은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편차가 계속해서 커진다는 것은, 무리하게 완성차 업계가 이산화탄소 규제를 맞추려는 목적에만 매달려 현실을 가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난까지 피할 순 없게 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ICCT가 분석한 연도별 유럽 공인연비와 실제 테스트 연비의 편차를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01년 : 9%

2002년 : 10%

2003년 : 12%

2004년 : 14%

2005년 : 15%

2006년 : 14%

2007년 : 16%

2008년 : 17%

2009년 : 20%

2010년 : 23%

2011년 : 26%

2012년 : 28%

2013년 : 33%

2014년 : 37%

2015년 : 42%

13곳에서 실연비를 확인하는 방법 등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모든 자료에서 공통으로 이처럼 큰 편차를 보인다는 점은 공인연비에 대한 유럽인들의 불신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뒷받침할 수준은 충분히 돼 보입니다. 


프리미엄 브랜드 편차 더 심해

특히 이번 테스트 분석 내용 중 눈길을 끈 것은 독일의 유명한 소비자 연비기록 사이트인 스프리트모니터(SPRITMONITOR.DE)에서 확인된 프리미엄 브랜드의 연비 편차 결과였습니다. 벤츠가 53% 수준으로 편차가 가장 컸고, 그 다음이 아우디와 BMW 순이었습니다. 반대로 피아트는 전체 평균 42%보다 낮은 35% 수준의 편차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진=BMW


'연비 문제는 신뢰의 문제'

이처럼 공인연비와 실연비의 차이가 큰 이유는 역시 현재 유럽공인연비 측정 방법에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 중 새로운 연비측정법(WLTP)으로 바뀌게 되지만 이산화탄소를 통한 연비측정법 역시 질소산화물처럼 실도로 테스트(RDE)를 이용해 좀 더 종합적으로 체크를 하는 것이 옳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역시 지금보다 좀 더 현실에 가까운 공인연비를 얻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공인연비와 실연비의 편차를 줄이는 것이 왜 중요한지 ICCT는 몇 가지로 나눠 설명했는데요. 우선 지금과 같은 연비 편차로 인해 실제로 운전자들은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결국 제조사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연결되며, 이런 신뢰는 판매와 직접 관련이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환경에도 더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환경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각국 정부의 세금 지출 등을 줄일 수 있기 위해서라도 편차를 줄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끝으로 ICCT는 공인연비 테스트를 감시할 수 있는 독립적 활동이 보장되어야 하며, 제조사와 연비 테스트 기관 사이의 재정적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사진=아데아체

유럽에서 나온 결과이니 그나마 유럽보다 현실적인 우리의 공인연비는 상관없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새로운 연비측정법(우리도 유럽과 동일한 방법으로 바뀜)에도 허점이 있기 때문에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 이산화탄소나 질소산화물 등 사람과 환경에 해로운 배출가스의 강력한 감소 정책으로 제조사는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를 통해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며, 이는 내연기관이 지금처럼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도 됩니다. 따라서 자동차 시장의 재편이라는 관점에서도 이 문제에 지금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