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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순위와 데이터로 보는 자동차 정보

미국 럭셔리카 자존심 캐딜락의 수모

독일은 1년에 신차 약 3백만 대 이상, 중고차 5~6백만 대가 판매 및 거래가 이뤄지는 유럽 제1 규모의 시장입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대략 두 배 정도의 규모인데요. 골프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한 차종이 세그먼트에서 득세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양한 모델이 골고루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시장이죠. 그런데 이런 편식 크지 않는 독일에서 힘을 전혀 못 쓰는 미국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캐딜락이죠.

캐딜락 로고 / 사진=캐딜락

1902년 세워져 1909년 GM에 인수되며 본격적인 미국 럭셔리카 시대를 열어간 캐딜락.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 역사적 브랜드가 영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팬들이 많은 독일이지만 여기서도 판매량은 바닥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3개월 동안의 모델별 판매량만 봐도 그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잠깐 확인해 볼까요?


캐딜락 독일 내 모델별 판매량 (자료 : 독일연방자동차청)


ATS 

사진=캐딜락

8월 판매량 : 26대

9월 판매량 : 1대

10월 판매량 : 0대


CTS

사진=캐딜락

8월 판매량 : 19대

9월 판매량 : 4대

10월 판매량 : 6대


CT-6 (9월부터 판매 시작)

사진=캐딜락

9월 판매량 : 6대

10월 판매량 : 4대


XT5 (9월부터 판매)

사진=캐딜락

9월 판매량 : 11대

10월 판매량 : 5대


에스컬레이드

사진=캐딜락

8월 판매량 : 8대

9월 판매량 : 2대

10월 판매량 : 7대


우선 BMW 3시리즈와 경쟁하겠다는 목표로 출시된 ATS의 경우 비교적 판매량이 많은 볼륨 모델이지만 독일에서 큰 이슈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10월에는 아예 1대도 팔지 못하는 수모 아닌 수모를 당하고 말았죠. 성능 개선도 이뤄졌고 스타일도 세련돼졌지만 홍보도 거의 없고 성능도 3시리즈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반전을 꾀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메르세데스 E클래스나 BMW 5시리즈와 경쟁하는 CTS 역시 판매량은 저조했는데요. 아무리 경쟁 모델의 나라인 독일이라 해도 이처럼 판매량이 낮은 것은 여전히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캐딜락은 성능에서도 독일산 모델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인식의 벽을 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근 판매가 시작된 캐딜락의 대형 모델 CT-6는 크기에서 일단 독일 프리미엄 3사의 플래그십을 압도합니다. 스타일 역시 신선하고 전체적인 균형감도 좋은 편이라는 게 개인적 생각인데요. 하지만 역시 판매량은 캐딜락 이름에 걸맞지 않습니다. 신차 효과도 못 보는 듯한데요. 그나마 유럽도 요즘 SUV 붐이 일고 있어 에스컬레이드나 SRX의 새 버전 XT5 등에 기대를 해봤지만 역시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한 번 새겨진 이미지 깨기 쉽지 않아

총 10가지 모델이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아예 한 대도 팔지 못한 모델부터 최대 월 20-30대 판매를 보이는 모델까지, 전체적으로 기대를 갖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나마 위안이라고 한다면 작년 1월부터 10월까지 판매량 (168대)보다 올해 10월까지의 판매량(258대)이 더 많았다는 점일 텐데요. 그러나 이 수치도 포드 머스탱이 독일에서 10월 한 달 판매한 수치(230대)와 비슷한 수준일 뿐입니다.

아~언제쯤 캐딜락이 미국 럭셔리카의 자존심을 유럽에서 세울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 답은 훨씬 더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적 도전, 그리고 과감한 투자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의 성능을 많이 연구하고, 스타일도 과감하게 변신을 꾀하는 등 나름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것 이상의 무언가가 없다면, 그리고 그 변화 과정이 꾸준하게 소비자에게 인식되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올드한 브랜드라는 이미지에 갇혀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캐딜락만의 것이 아닙니다. 어떤 제조사도 기술 혁신, 브랜드 혁신, 그리고 경영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기존의 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실천하느냐 안 하느냐, 결국 그 차이가 성공의 길을 가느냐 아니냐의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어린 시절 자동차에 눈을 뜨게 해준 게 캐딜락이었습니다. 힘 좀 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