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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1차로 정속주행, 필기시험만으론 해결 안돼


며칠 전 조선일보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도로교통공단이 필기시험 문제은행에 지정차로와 관련한 문제를 15개 추가했다는 내용이었죠. 기존에는 700개 중 5개밖에 지정차로 관련 문제가 없기 때문에 지정차로 관련한 문제를 풀지 않고도 필기시험을 치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지정차로 관련 문제를 적어도 1개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선일보가 1차로를 비워두자는 기획기사를 이 달 초부터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론사가 나서 차로 문제를 중요하게 다뤘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주장에 따르면 자신들의 기획기사가 나가고 나서부터 경찰의 고속도로 1차로 정속주행 단속이 시작됐고, 또 도로교통공단으로 하여금 필기시험 강화 조치를 이끌어 냈으니 그게 사실이라면 언론이 교통문화 개선에 역할을 일정부분 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특정 언론의 기사에 이처럼 재빠르게 정부 조직이 나서 대응을 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그간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했을 때는 왜 반응을 보이지 않았냐는 겁니다. 언론이 문제제기를 하고 정부가 거기에 준비된 응답을 한 것처럼 빠르고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처럼 것처럼 보여 뭔가 허탈한 느낌까지도 들더군요. 어쨌든 잘못된 교통문화를 바꿔 보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것이니 이에 대해서는 더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문제는 이런 단속과 필기시험 강화(정말 강화인지는 의문)만으로 1차로 정속주행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운전자 양식에만 호소할 게 아니다

'고속도로 등에서 1차로는 추월할 때만 사용하고 평소에는 비워둬야 한다'는 이 한 줄의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운전자들의 양식을 탓합니다. 심지어 조선일보 기사 중에도 이런 의식이 드러나 있는 내용이 있더군요. 


독일 아우토반이 최고 시속 110㎞로 제한된 한국의 고속도로보다 안전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차로 이용에 대한 운전자 간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속도보다는 ‘흐름’이 교통사고 발생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독일에서 운전자들은 앞지르기할 때를 빼고는 추월 차선을 항상 비워둔다. 1차선에서 저속 주행을 하거나 우측 차로를 이용해 끼어드는 등 원칙 없는 차로 이용으로 차량 흐름을 저해하는 요소가 거의 없다. 


공단 관계자는 “독일에서는 잠깐 추월 차선을 달릴 때라도 뒤에서 다가오는 차량이 있으면 무조건 비켜주는 것이 불문율”이라며 “80년 가까이 고속도로를 운행한 나라이기에, 독일 운전자는 배려·양보가 안전과 직결되는 요소임을 잘 알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차로에서 계속 달리는 차, 도로 흐름 막는 사고유발차> 2015년 7월 7일자 조선일보 기사 내용 일부


독일 아우토반 A8 전경 / 사진=위키피디아

위에 나타난 도로교통공단 관계자의 발언은 큰 틀에서 보자면 틀리지 않습니다. 흐름을 중요시 여기고 1차로는 추월 시에만 이용한다는 얘기 등은 정확합니다. 다만, 독일 운전자들의 배려와 안전 의식이 이런 철저한 차로 준수 문화를 만든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우토반의 1차로 준수 문화는 사실 철저한 교육과 제도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실제로 독일 등은 필기시험 자체가 매우 어렵고,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이론 교육을 14회(90분 1회 기준)에 걸쳐 받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때 차로에 대한 이해, 1차로 주행법, 횡단보도 이해, 회전교차로 이용법, 차로 변경 방법, 깜빡이 사용법, 어린이 보호구역에 대한 이해 등, 거의 모든 운전 시 필요한 핵심 교육을 받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과연 교육을 할까요? 물론 교육 시간만 늘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닐 겁니다. 


중요한 건 운전법과 교통법에 대한 핵심 내용을 얼마나 심도 있게 주어진 시간 안에 가르치는 제도가 마련돼 있느냐입니다. 또 이론으로 익힌 주행법을 실제 도로에서 반드시 체크를 하고, 강사는 추가로 더 받아야 하는 응시생에게는 추가의 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아우토반에 올라 주행을 하고 야간에 주행 연습을 하고 국도 및 시내 주행을 해야 합니다.이렇게 철저한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차로에 대한 인식이 몸에 배는 것이지 그냥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서 처음부터 알아서 1차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게 아닙니다.


독일에서 면허증 따기는 정말 힘듭니다./사진=tuev-sued.de


간소화 이전에도 우리는 1차로 개념이 희박했었다

그나마 도로교통공단 측에서 지정차로에 대한 필기시험 강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다행스럽습니다. 하지만 위에 독일의 경우를 언급했듯 핵심적인 교통법, 도로 이용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면허 취득 과정 전반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필기시험 강화만으로는 그 성과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고속도로 차로 이용법을 직접 고속도로로 나가 이행할 수 없다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라도 모든 응시생들이 이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면허 시험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면 많은 분들이 면허 취득 간소화 이후 도로가 엉망이 되었다면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하지만 면허 시험 간소화 이전에도 1차로 이용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운전하는 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면허 취득 간소화가 그 이전 보다 더 도로 상황을 나쁘게 만든 것이지 좋았던 것이 나빠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미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단속 외에도 지속적인 기본 교통법 이해를 위한 교육이나 캠페인이 이뤄졌음 합니다. 


경찰청 등에서 얇은 책자를 만들어 배포를 한다든지, 방송과 협력해 프로그램을 통해 홍보를 한다든지 해서, 회전교차로와 로터리의 이해, 횡단보도 이용법, 1차로 주행에 대한 이해와 보행자 및 자전거 보호 등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런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분들이라면 주변 지인들에게 정확한 운전 문화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제게는 매제가 한 명 있습니다. 이 친구가 굉장히 운전을 잘하는데요. 하지만 그건 기술적인 면에서의 칭찬입니다. 1차로 정속주행이라는 불법을 일삼(?)았던 그에게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늘어 놓았습니다. 처음엔 별 반응이 없던 매제도 이제는 적어도 저와 동승 시엔 1차로를 비워두고 달립니다. 또 앞 차와의 간격도 넓게 벌리기 시작했죠. 하나가 바뀌니 여러가지 문제들이 개선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제 잔소리가 떠올라 이젠 FM대로 하는 게 아예 마음 편하게 됐다고 웃으며 이야기해줍니다. 


여러분도 주변분들에게 알려주십시오. 그렇게 한 명 한 명 변하다 보면 지금 보다 더 안전하고 쾌적한 도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 면허를 따는 분들은 강화된 면허 교육 과정을 통해 처음부터 멋진 운전자로 도로 위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정부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차로는 추월차로입니다. 그러니 막히는 구간이 아닌 경우 무조건 비워두세요. 그리고 앞지르기는 무조건 좌측 차로를 이용해서 한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느린 속도로 달릴 땐 우측차로를 이용해야 합니다. 이 세가지만 여러분이 철저하게 지켜도 우리나라 도로 환경, 정말 놀랍다록 멋지게 바뀌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