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엔 여성 전용 정비소가 있다고 합니다. 고객도, 그리고 정비사도 모두 여성들이죠. 또 독일에는 클래식카를 수리하는 여성 메카닉도 있습니다. 수십 년 경력의 중년 여성이 오래된 차들을 수리하는 모습은 색다르기도 하고 멋졌습니다. 일반 정비소나 브랜드 직영 정비소에서도 여성 정비사들을 만날 수 있죠. 문득 우리나라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마침 지난 번 한국 방문 때 폭크스바겐코리아 측의 도움으로 필드를 누비는 한 여성 정비사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요. 24세의 박수현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마이스터 모터스 서초서비스 센터 5층에서 그녀를 만나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 봤습니다.
Q :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해주시죠.
A : 이름은 박수현이고 나이는 스물 넷입니다. 겨울이 되면 이 곳에서 일한 지 딱 2년이 되네요. 현재 폭스바겐 차량들의 일반정비를 주로 하고 있어요.
박수현 정비사
Q : 궁금합니다. 어떻게 정비사가 될 생각을 하셨나요.
A : 꼬마 때부터 또래 여자애들과 달리 거칠게 놀았어요.(웃음)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했고 손재주가 좋은 편이어서 만들고 수리하는 걸 즐겨했습니다. 집에 뭐가 고장이 나거나 하면 딸인 제가 도맡아 수리를 했을 정도였어요. 자연스럽게 자동차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Q : 정비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A : 반대가 굉장히 심했어요. 사실 지금도 아버지는 불만이세요. 대학 원서를 내는데 부모님 몰래 자동차학과를 적었죠. 합격한 후에 말씀을 드렸더니 엄마는 어쩌겠냐며 해보라는 쪽으로 말씀하셨지만 아버진 반대하셨어요. 일도 힘들고 기름밥 먹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다는 걸 잘 아셨기 때문이죠.
Q : 목표도 분명했지만 갈등도 그만큼 있었군요. 학교 생활은 어땠습니까 힘들지 않았나요?
A : 제가 다닌 학교에선 자동차 도장과 정비를 나눠 가르칩니다. 정비가 주 학과였지만 도장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도장 자격증도 따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했죠. 실습을 나가도 학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곳에서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계속 도전했고 1학년 마칠 땐 도장과 정비 자격증을 모두 딸 수 있었어요.
Q : 실습을 통해 처음 현장을 경험했을 텐데 힘든 점은?
A : 정비소에 가봤더니 여성을 위한 별도의 탈의실이나 샤워실 같은 게 없었어요. 당연했죠. 여성이 정비 배우러 오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결국 작업복을 입고 출근해서 지저분해진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퇴근을 했어요. 지금 일하는 곳도 입사 당시엔 샤워실이 없었는데 지금은 있습니다. (웃음)
또 여성 고객이 기억에 남아요. 담당자라고 여성 정비사가 나오니까 불안하셨나 봐요. 보닛을 열려고 하는데 "차에 손대지 말고 남자 정비사를 불러 주세요."라고 하더군요. 제가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결국 남자 선임 정비사가 처리를 했습니다. 그 때 되게 속이 상했어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더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Q : 여성 정비사이기에 받은 배려 혹은 차별 같은 건 없습니까?
A : 회사에 입사할 때 이사님과 사장님이 해준 얘기가 있어요. "남녀 차이는 있지만 남녀 차별은 없다." 마음에 와 닿았죠. 저 역시 내가 여자라는 걸 의식하지 않았고 오히려 힘들거나 남들이 꺼려할 만한 일을 찾아서 하기도 했습니다. 고객분 입장에서는 '여자 정비사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일하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자세히 설명을 드리고 꼼꼼하게 일처리하는 걸 보시면 신뢰를 보내주세요. 다음에도 수현 씨에게 맡기겠다고 얘기해주는 분도 계신데 그 땐 뿌듯합니다. (웃음) 어떤 질문을 어떤 상황에서 해도 고객에게 쉽고 정확하게 설명을 드리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합니다.
Q : 정비 공부는 주로 어떻게 하세요?
A : 회사 내부 교육자료도 있고 또 학교에서 공부했던 내용들을 다시 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기술적인 완성도 못지 않게 고객에게 얼마나 잘 설명을 할 수 있느냐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책을 놓고 공부를 할 때도 고객이 계시다는 가정 하에 설명하듯 소리내 읽고 그럽니다.
Q : 정비사로서 자신만의 철학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하네요.
A :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생각이 하나 있어요. 의사는 환자 한 명을 직접 치료하죠. 하지만 정비사는 달라요. 자동차에는 운전자는 물론 동승자도 있죠. 그 동승자는 가족이 될 수도, 친구, 연인일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겸손해야지만 나온다고 생각해요.
같은 연식의 같은 차종, 그리고 같은 문제로 차가 들어왔더라도 습관처럼 타성에 젖어 고치고 그러면 안 된다고 봐요. 그래서 지금 내 앞에 있는 차는 처음 만진다는 마음으로 대합니다. 늘 첫 차, 새로운 정비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솔직히 이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다행인 건 제가 꼼꼼한 성격이라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래요. 항상 긴장하고 집중하려 노력해요.
Q : 정비사에겐 잘 맞는 성격 같은데요?
A : 일로 보면 그런데 일상에서도 그러니 탈이죠. (웃음)
Q :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 궁금한데요.
A : 전 큰 차가 좋아요. SUV 같은 거죠. 폭스바겐 중에선 투아렉을 좋아하고, 다른 브랜드의 경우 포르쉐 카이엔요.(웃음) 지상고가 낮은 차는 이상하게 안 끌리더군요. SUV는 뭐랄까, 내가 보호받는 다는 느낌? 묘한 안도감 같은 게 있어요.
Q : 정비사가 들려주는 차량 관리법!
A : 자동차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분들, 그러니까 저희 엄마 같은 분을 위해 말씀을 드린다면 정비센터나 제조사가 제공하는 정비 책자 같은 게 있어요. 이걸 놔두지 말고 잘 읽고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 내용이 가장 정확하거든요.
정비 이력을 기록해두는 것도 권합니다. 교환시기가 언제였는지, 주행거리의 변화는 어느 정도인지, 지난 번엔 뭘 교체했는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어 좋아요. 또 차에 오르기 전에 공기압이 부족한 타이어가 없는지 눈으로 체크하는 습관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경고등이 들어오면 당황해하는 여성 운전자들이 많으신데요.
저희 어머니도 그런 분들 중 하나셨죠. 두 달 전이었나? 갑자기 경고등 하나가 떴는데 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생겼냐 여쭸더니 왕관모양이라고 하시더군요. 왕관모양? 나중에 확인해 보니 워셔액 경고등이었어요.(웃음) 대부분 분수라고 이야기를 하죠. 경고등에 대해 알아 놓는 것도 필요합니다.
끝으로 하나 더 이야기를 드린다면, 평소 차에서 나지 않던 소리, 그리고 이상한 냄새 등이 느껴지면 정비소를 찾는 게 좋습니다. 소리와 냄새는 차의 이상을 알리는 또 다른 경고등입니다.
Q : 끝으로, 꿈이 있다면?
A : 제 은사님이 이런 얘길 해주신 적 있어요. "너만이 할 수 있는 것, 너만의 경쟁력을 키워라." 이걸 그 분은 레드오션도 블루오션도 아닌 화이트오션이라고 부르셨죠. 앞으로 계속 자동차 쪽에서 일을 할 겁니다. 정말 좋은 정비사가 될 거예요. 저만의 기술력을 쌓은 정비사, 늘 겸손한 정비사.
Q : 바쁜 시간 쪼개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 : 저도 감사해요. 즐거웠어요.
인터뷰를 끝내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20년 후에도 현장에 계시길 바라겠다고. 그리고 그 때 다시 한 번 인터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그녀는 5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현재 공인 5단이라고 합니다. 아직까진 정비기술보다 태권도 기술이 더 낫지만 곧 태권도 보다 정비를 더 잘하게 될 거라고 힘줘 말했죠.
끝으로 여성이라서 차별 받고 힘든 것 보다는 정비사라는 직업 자체를 내려다 보는 사회적 시선이 가끔 아플 때가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정비사들이 보다 더 인정받는 그런 세상이 빨리 오도록 자신도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죠.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에 저도 힘을 얻었습니다. 어떤가요, 이 정도면 믿고 맡길 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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