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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으로 독일은 패닉 상태


지난 토요일, 독일 전역에서 프랑크푸르트모터쇼를 보기 위해 박람회장으로 많은 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박람회장 주변 도로는 모터쇼를 찾은 자동차들로 인해 곳곳이 정체됐고 쏟아져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독일인들에게 자국 브랜드들이 주도하는 이번 모터쇼는 자부심 가득한 축제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주말 오후 미국으로부터 폴크스바겐이 디젤차 배출가스양을 조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이 소식은 언론에 의해 집중 소개됐고, 급기야 특정 타입의 엔진을 장착한 약 1100만대의 폴크스바겐 디젤차가 조작을 위한 프로그램이 심어졌다는 폴크스바겐 본사의 발표가 있던 화요일에는 모든 언론의 1면은 폴크스바겐 소식들로 도배가 돼 버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며 분노했습니다. 지금부터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에 대한 독일 내 반응과 대응, 그리고 몇 가지 예상되는 내용들을 10개의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폴크스바겐 매장 / 사진=VW


1. 폴크스바겐, 도대체 뭔 짓을 한 건가?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폴크스바겐 그룹의 골프, 아우디 A3, 비틀, 그리고 제타 등에 들어가는 TDI 디젤엔진이 배출하는 가스가 공식 테스트 때와 달리 실제 주행 중에는 배기가스 후처리장치가 꺼진 채 최대 40배 가까운 질소산화물이 배출되고 있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정교한 프로그램을 통해 눈속임을 한 것이죠. 미국 당국은 2008년 이후 생산된 디젤 차량 48만 2천대가 이번 조작과 관련 있다며 징벌적 벌금 20조를 내라고 요구했습니다.


2. 미국 환경보호국은 어떻게 알아냈나?

이미 여러 차례 전한 바 있지만, 국제청정교통위원회(이하 ICCT)는 지난 2014년 유로6 기준에 드는 디젤차 15개 모델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실제 도로에서 배출가스 측정(RDE)을 실시했습니다. 이 때 1개 모델을 제외한 14개 모델이 모두 실제 유로6 기준치를 넘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했습니다. 최대 7배 이상 배출된 모델도 있었습니다. 불합격 모델 중에는 그나마 후처리장치로 가장 신뢰할 만한 SCR 방식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발표를 주의 깊게 본 미국 환경보호국이 결국 구체적 조사에 들어갔고, 폴크스바겐이 수치를 조작했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3. 그렇다면 폴크스바겐 외에도 더 있을 수 있다는?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폴크스바겐뿐입니다. BMW와 다임러 등 독일 메이커들은 자신들은 이번 조작과 무관하다고 하고 있으나 미 환경보호국은 다른 제조사들도 이런 조작이 없었는지 조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ICCT는 폴크스바겐만이 아닌 여러 브랜드의 차종들이 실험에 포함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최근 독일에서 ICCT와 독일운전자클럽 아데아체가 10개 브랜드 32개 유로6 디젤차를 대상으로 RDE(실제도로주행배출가스측정법)방식으로 배출가스 정도를 측정했는데 이 때 유로6 기준에 든 것은 단 10개 모델이었고 22개는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10개 제조사 중 언론을 통해 공개된 곳은 볼보(15배), 르노(9배), 현대(7배), 아우디(3배), 오펠(아우디 수준), 벤츠 (유로6 조금 넘는 수준) 등이었고, 당시 테스트에서는 BMW만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독일에서 실시된 실제 배출가스 측정에서 마쯔다6과 폴크스바겐 CC, 그리고 BMW 320d 왜건 모델 등이 과도한 질소산화물을 배출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보면 현재까지는 어떤 제조사도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4. 이번에 적발된 VW의 경우 미국 판매용 모델만 

해당되는 건가?

아닙니다. 화요일 폴크스바겐은 본사에서 미국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판매된 1100만대의 자사 디젤차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실토했습니다. 미국과 독일은 물론 우리나라와 프랑스, 호주와 스위스 등이 즉각적으로 조사를 하겠다고 밝힘과 동시에 발표된 내용이었습니다. 감춰 봐야 들통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먼저 고백을 한 것이죠. 회사가 조작을 인정한 1100만대의 디젤차는 모두 특정 타입의 엔진 'EA 189'가 장착된 유로5에 해당되는 것들로 2015년 9월 1일부터 생산되는 유로6 엔진은 이번 스캔들과 무관하다고 밝혔습니다.


TDI 엔진 / 사진=폴크스바겐



5. 폴크스바겐은 현재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일단 미국의 발표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또한 이 문제를 독일 정부와 함께 확실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메르켈 총리도 '완벽하게 투명한 처리'를 지시했습니다. 당장 독일 교통부장관 도브린트는 독일 내 폴크스바겐 디젤차를 조사하기로 했고 독일연방자동차청이 이 문제를 주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조작사건은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저지른 짓입니다. 때문에 큰 규모의 조사에 어떻게  협조하고 대응할지 아직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당장은 이 조작을 지시한 사람과 가담한 직원들이 어느 정도인지 찾아내야겠죠.


6. 가만, 그렇다면 이 조직적 조작사건을 

회장은 모르고 있었다는 건가?

현재 폴크스바겐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진보적 정론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상식적으로 회장이 이만한 조작사건을 모르고 있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빈터코른 회장의 사죄 영상 속에서도 자신은 몰랐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7.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 거취는?

9월 초, 폴크스바겐 그룹은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과 2018년까지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이번 사건이 25일 최종 이사회 투표를 앞두고 터져버린 것입니다. 쥐트도이체차우퉁은 영상 논평을 통해 당장 빈터코른 회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그가 그동안 회사에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왔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즉각적인 사퇴가 독일 경제와 자동차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시사주간지 슈피겔 역시 직원들 잘못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으며 기업을 책임지고 대표하는 마르틴 빈터코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화요일 저녁에 공개된 영상에서 마르틴 빈터코른은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혔고, 자신과 회사를 믿고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특히 일부 직원들의 잘못으로 수많은 폴크스바겐 직원들이 고통 받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론은 지금 매우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올해 제네바모터쇼 당시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 모습 / 사진=VW



8. 독일 현지 분위기는 지금 어떤가?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입니다. 분노를 넘어 커다란 박탈감에 빠져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메이드 인 저머니'가 주는 신뢰가 이번 일로 무너졌다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어떤 독일 네티즌은 'VW =Vertrauen Weg!' 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말로 하면 '사라진 신뢰!' 또는 '신뢰 아웃!' 정도가 될 겁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상황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했나. 조작이 안 밝혀질 거라고 믿은 건가? 지금은 그 어떤 것도 거짓이고 사기인 것만 같다." 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몇몇은 피에히 전 감독이사회 의장의 복수라고 했는데 많은 이들이 이런 의견에 공감을 하고 있었습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의장은 마르틴 빈터코른을 내보내려다가 오히려 빈터코른을 지지하는 감독이사회 핵심 멤버들의 반격으로 왕좌에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이자 지금의 폴크스바겐 그룹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TDI 엔진도 그가 아우디 사장으로 있을 때 직접 개발했습니다. 


이번 조작 사건을 통해 피에히가 혹시라도 복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현재 분위기로 봐선 쉽지 않아 보이며, 포르쉐를 이끌고 있는 마티아스 뮐러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물론 빈터코른이 물러난다는 가정하에서의 얘기이겠죠.


9. 음로론도 나오고 있던데

두 가지가 있습니다. 대체로 보수 언론 쪽에서 흘리는 내용으로, 하나는 미국이 토요타 사태 때처럼 성장세에 있는 폴크스바겐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르틴 빈터코른을 물러나게 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FAZ와 같은 언론은 빈터코른 회장의 계약 연장이 확정되는 25일 금요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한 전문가의 인터뷰 내용을 싣기도 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하나의 추측일 뿐입니다만 당분간은 이런 식의 다양한 음모론들이 횡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0. 앞으로의 전망은?

VW 주가가 연일 폭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주식 가치는 2011년 이전으로 돌아갔을 정도로 끝 모르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예상되는 수많은 소송, 그리고 그에 따른 배상금액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독일 내에서 가장 강력하게 반디젤차 정책을 주장하는 도이체 움벨트힐페(DUH)라는 기관은 아예 법원에 디젤차 자체의 운행을 금지하는 소송을 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단체는 오래 전부터 디젤이 질소산화물이나 분진을 많이 내뿜고 있으며 제조사들이 이를 속여왔다고 주장을 해왔습니다. 녹색당 등도 강력하게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으며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은 특히 정부가 폴크스바겐의 조작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독일인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간 유럽 내에서 조금씩 확산되고 있던 반디젤 정서에 이번 사건은 불을 지른 게 됐습니다. 단순히 후처리장치를 조작한 것만이 아니라 후처리장치 자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1급 발암물질이자 스모그의 주원인인 질소산화물은 완전히 퇴출되어야 한다는 주장 등에 더 힘이 실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전기차의 활성화는 더 빨라질 것입니다. 다만 처리장치 자체 문제가 아니며, 폴크스바겐으로만 국한된 사건으로 만약 조사 결과가 나온다면 SUV 붐 등을 등에 업고 디젤은 계속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호황이 계속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또 2011년과 2014년 계속해서 우리나라 자동차들도 질소산화물을 기준치 이상 초과해 배출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이 점도 정확하게 다시 점검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환경이나 인체에 유해한 배출가스 등에 대한 규제를 구체화 시키고 이를 어겼을 때 징벌적 배상금을 요구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어야 합니다.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사건은 어떻게 보면 자동차 산업 전체를 겨냥한 첫 번째 화살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7년 새로운 배출가스 측정법 도입을 두고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자동차 제조사들 모두가 이번 사건에 긴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과연 이번 조작 스캔들이 어디까지 흘러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결론을 맺을까요? 계속해서 지켜보겠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여러분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질소산화물 배출 관련한 ICCT 자료 분석과 반디젤 정서와 관련한 유럽 분위기를 더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몇 가지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글은 배치 순서대로 읽으시면 좋습니다. (제목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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