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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순위와 데이터로 보는 자동차 정보

디젤 자동차의 배신 "정말 깨끗한 거 맞나요?"


지난 9월 초,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넘겨버렸을 법한 기사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스무 명 남짓한 원고들이 2007년부터 시작한 법정 다툼으로, 7개의 국내 자동차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던 것이었는데요. 소송을 건 원고들은 모두 천식이나 폐기종 등의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동차의 배기가스에 포함되어 있는 이산화질소(질소산화물)와 미세먼지(분진) 등으로 병에 걸렸거나 악화되었다는 주장이었고, 그래서 이들 배기가스가 일정 수치 이상으로 나오지 않도록 법으로 규제를 해달라고 소송을 한 것입니다. 대법원까지 가는 동안 원고는 1명으로 줄어 들었고, 결국 최종심에서도 1,2심과 같은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습니다. 당시 1심 재판부와 대법원 등에서는 대략 이렇게 패소 이유를 밝혔다고 합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지만, 미세먼지의 주요 배출원이 자동차에만 있지 않고, 또 자동차 배기가스와 천식과의 인과관계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위험인자에 노출된 사실과 질환에 걸린 사실의 증명만으로는 양자 사이의 개연성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달이 훌쩍 지난 이 기사를 오늘 다시 끄집어 낸 이유는, 최근 독일의 주요 언론들이 소개한 어느 충격적인 배기가스 관련한 연구 보고서를 읽고나서였습니다. 어렵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 있어 써볼까 말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닐 뿐더러,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읽기 쉽게 전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디젤차 열풍이 불고 있는 우리나라 운전자들도 알아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었고, 그래서 포스팅을 하게 됐습니다. 좀 어렵더라도, 못 쓴 글일지라도, 꼭꼭 씹어 찬찬히 읽어 보시라 말씀 드리면서 출발하겠습니다.


사진=netcarshow.com




자동차 배기가스 

"이산화탄소 외에 또 있었나요?"


우선 오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야 할 거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배출가스는 일산화탄소 (CO), 이산화탄소 (CO2), 질소산화물(NOx), 탄화수소(HC), 미세먼지(PM) 등이 있죠. 그 외에도 더 있습니다만 주요 배기가스라고 하면 이런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 탄화수소 등은 가솔린 엔진이 디젤 보다 더 나오고, 디젤은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등이 가솔린 엔진에 비해 더 나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오늘 얘기를 해볼 건 바로 이 '질소산화물 (NOx)과 미세먼지 (PM)'인데요. PM은 흔히 분진, 그을음, 블랙카본, 검댕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소산화물과 분진을 억제하는 장치들이 디젤차에 달려 있는데 흔히 '배기가스 저감 기술 및 장치'라고 하죠. 구분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배기가스 저감 기술 : 인-실린더 연소기술 / 배기가스 재연소 기술 (EGR)

배기가스 후처리 장치 : 디젤 매연 여과 장치 (DPF) / 요소 촉매 저감 장치 (SCR)



깨끗하다는 디젤엔진, 

왜 배출가스는 1급 발암물질일까?


요 위 박스에 들어 있는 것들이 대표적인 디젤엔진에서 나오는 배기가스 줄이는 기술과 장치들입니다. EGR과 SCR, 인-실린더 기술 등은 주로 질소산화물(NOx)을 줄이는데 쓰이고, DPF는 분진을 줄이는데 쓰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에 따라서 EGR만 있는 경우도 있고, SCR과 EGR이 같이 붙어 있는 경우 (SUV들)도 있고, EGR이 두 개나 달라 붙어 있는 자동차도 있습니다.


그 중에 디젤 매연 저감 장치 (DPF)는 디젤차 타는 분들이라면 잘 아실 필터인데요. 옛날 디젤차 머플러에서 시~~~~커멓게 나오던 검댕(분진)이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게 됐는데 그게 바로 이 DPF 덕분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디젤 매연 여과장치 (DPF)가 자동차들에 속속 달려 나왔고, 지금은 기본으로 장착이 되어 있습니다. 효율이 좋아서 80~90% 이상의 분진을 걸러낸다고 하죠.


오펠의 디젤 매연 저감장치 장착된 모습.사진=motoringassist.com


DPF가 분진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면 EGR이나 SCR 등은 질소산화물(NOx)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EGR은 엔진에서 나온 배기가스를 다시 한 번 순환시켜서 연소 온도를 낮추게 됩니다. 온도를 낮추면? 질소산화물 발생이 뚝 떨어지게 되죠. 특히 폴크스바겐 등은 이 EGR(배기가스 재연소 장치)을 두 개나 단 듀얼 EGR 시스템을 적용하기도 하는데요. 정확히 얼마만큼의 저감율을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효과는 분명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는 후처리 장치라고 한다면 역시 SCR (요소 촉매 저감장치)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 7 요소 3의 비율로 되어 있는 요소액(Urea)이 치익~하고 뿌려지면서 질소산화물이 정화되게 되죠. 트럭들 기름통 옆에 또 다른 기름통 비슷한 게 있는데 이게 바로 이 요소액을 담아두는 탱크입니다. 승용차의 경우는 메이커에 따라 요소액을 넣는 위치가 다릅니다.



마쯔다 SUV RX-7의 SCR 구조 단면도. 사진=cartype.com


파사트의 요소액 주입구는 특이하게 트렁크 안 쪽에 있다. 사진=myturbodiesel.com


BMW 3시리즈 (유로 6 기준)에는 요소액 애드블루의 주입구가 나란히 있다. 사진=bmwblog.com

 

요소 촉매 저감장치에 들어가는 요소액을 독일에서는 애드블루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독일 기관에서 인증을 받으면 공인된 요소액으로 판매가 가능합니다.이 요소액은 엔진 오일 갈 때 (약 15,000km 전후) 같이 갈아 주면 되는 수준이라고 하는데요. 부족하면 경고등이 들어오니까 주유소에서 구입해 주입하거나 정비소에서 채워주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필터로 정화하고 배기가스 재순환이나 요소액으로 정화하는 등, 친환경 장치들이 디젤차에 달려 있어 질소산화물이나 분진 등의 배출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처음 보여드렸던 우리나라 배출가스 소송 얘기도 결국 법원의 판단이 맞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2012년 여름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디젤의 배기가스를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죠. 폐암과 방광암을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석면이나 담배 등과 같이 1급 판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룹 1에 들었다는 건 충분히 발암성이 입증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대법원 판결이 세계보건기구의 결정과 대립되는 건가요? 물론 개인별 질병과 디젤 배출가스와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게 어려움이 있겠지만 분명 세계보건기구의 주장은 디젤 배기가스는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WHO가 틀린 건 아닐까요?



우리에겐 '유로 6'이 있잖아!?


사실 SCR 같은 후처리 장치가 승용차에 달리기 시작한 건 유럽의 강화된 배기가스 배출 기준 EURO 6 때문입니다. 기존의 EGR만으로는 유로6의 기준을 지키기 어려워진 것이죠. 특히 SUV가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2012년 출시 차량들부터 살살 준비하던 메이커들이 2014년부터 시작된 유로6 기준을 예상대로 가뿐하게 통과했습니다 


유로5보다 질소산화물은 80%, 분진은 60%를 줄인 게 유로 6 기준이니까, 이제 적어도 유로 6 기준을 충족하는 최근 디젤 자동차들은 발암물질 내뿜는 차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보건기구가 의견을 달리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요. 이런 큰소리에 급제동이 걸렸습니다. (위에 내용들 대충 읽은 분들도 지금부터는 정독해주십시오.)


 ICCT라는 국제 친환경 운송 기구는 유로6 기준에 맞게 판정받은 디젤차들이 실제로는 그 기준을 크게 벗어나 여전히 질소산화물(NOx)를 뻥뻥 내뿜고 있다는 연구 자료를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그것도 놀라운 수치 차이를 보이면서 말이죠.


 


실주행 테스트로 드러난 디젤 배기가스 실체


ICCT는 미국과 독일에 거점을 두고 있는 환경 운송 연구 기구같은 곳입니다. 이 기구에서 6개 브랜드의 15대의 유로 6 기준에 충족하는 디젤차를 가지고 실제 도로 위에서 테스트를 했는데 보통 실시하는 연비측정 방식과 달리 실제 주행을 통해 배출가스의 값을 끄집어 냈습니다.


평균 140시간 이상, 7,600km의 거리를 달렸습니다. 63,000km를 달린 테스트 차량도 있었죠. 그리고 테스트 결과를 약 6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로 작성해 공개했고, 위에 보이는 표는 바로 그 결과를 보여주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어떤 모델인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가운데 알파벳 A부터 O까지 총 15개의 모델들 중 C 차량 한 대만이 유일하게 유로 6의 질소산화물 기준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L 모델은 25.4배, H모델은 24.3배나 기준치 보다 높게 나왔죠. 참고로 유로 6의 질소산화물 기준치는 킬로미터당 80mg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전체 평균값이 그 7배인 킬로미터당 560mg이 나온 것입니다. 7배라니!! 테스트에 참여한 차량들은 SUV 2대, 미니밴 1대, 해치백 1대, 나머지 세단으로 되어 있었고, 이들 중 10개 모델이 SCR (요소 촉매 저감 장치)을 달고 있었으며, 4개가 EGR(배기가스 재연소 기술)을, 그리고 1대가 LNT를 달고 있었습니다. (LNT 모델의 경우 가장 높은 질소산화물 배출량 배출, 1809mg/km)


LNT? 갑자기 튀어나온 녀석이네요. 사실 SCR은 요소를 넣어줘야 하고, 여러 장치를 추가로 차에 달아야 하는 등 번거롭기도 하고 차량 원가 상승에도 한 몫을 담당합니다. 그에 비해 LNT는 훨씬 저럼하게 질소산화물을 정화시키는 기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와 기아차가 이걸 적용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다만 LNT가 구조변경도 크지 않고 가격도 저렴한 대신 성능 저하가 상대적으로 크고 연비도 손해를 보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비해 SCR은 성능 저하가 덜하고 연비 효율성에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물론 저 위에 나온 LNT 장치를 단 세단이 현대나 기아의 어떤 모델이라고 단정할 순 없으니 그 점은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알파벳 'O'를 달고 있는 차의 경우 자료에 듀얼 EGR이 달린 해치백이라고 밝힌 걸로 봐서 VW의 어떤 모델이 아닐까 역시 짐작해 봅니다.


골프 고연비 모델 블루모션. 사진=netcarshow.com



높아져 가는 규제

그에 맞춰 높아져 가는 제조사의 꼼수?


ICCT가 내놓은 자료 중에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내놓는 공인연비와 실주행 연비의 차이가 과거 보다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과거 10% 정도 편차였다면 최근 들어서는 20% 정도로 더 벌어졌다게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질소산화물의 경우도 유로 6의 기준치를 크게 웃돌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물론 제조사들은 반박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얼마나 가혹한 주행이 있었는지, 또 얼마나 동일한 환경에서 결과물을 냈는지 등을 따져봐야겠죠. 하지만 자료에서는 무리하게 테스트를 한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설령 좀 밟았다고 해도 일상 주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걸로 보입니다. 특히 질소산화물의 경우는 인체에 해가 되는 물질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공인된 수치와 실제 수치의 편차가 커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연비도 그렇고 질소산화물 배출량도 그렇고, 왜 이런 큰 차이를 보이는 걸까요? 아무래도 점점 더 강화되는 규제에 대응할 만한 기술력이 아직 따라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짐작됩니다. 또는 기술이 있어도 이를 상용화 해 적용했을 때의 가파른 원가 상승을 고민했을 수도 있습니다.현재 판매되는 저감 장치들 가격만 해도 150~300만원 수준이거든요. 그래서 제조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규제를 맞추기 위한 현실적 대응방안을 마련해 놓았어야 했겠죠. (독일 언론 중 한 곳은 이 부분에서 제조사들이 연비 측정 시  그들만이 아는 트릭을 쓰고 있다고 대놓고 이야기함)


연비 효율이 좋다는 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걸 말합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2021년의 95g/km의 기준을 맞추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또 질소산화물이나 그 외의 배출가스들도 과연 현재 기준, 그리고 더 강화될 앞으로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제조사들은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수소연료전지차 등의 대안을 열심히 연구 중에 있습니다. 이 얘기는 작년부터 계속 말씀 드린 부분이기라 익숙하실 겁니다.



건강한 디젤 자동차 될 수 있을까?


깨끗하고 힘 좋다고 해서 디젤이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만약 깨끗하지 않다면, 그리고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기준 이상으로 배출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독일 ADAC자료를 보니 1980년 독일의 가솔린 비율은 92%였습니다. 그런데 2012년에는 가솔린 대 디젤의 비율이 52% : 48% 수준이 되었죠. 올해 현재까지 디젤의 비율은 47% 정도로 2012년 대비해 약 1% 떨어진 상태인데요.


디젤차에 대해 이런 신뢰할 수 없는 자료들이 계속해서 나온다면 가솔린에서 디젤로 이탈했던 사람들이 더 빠른 시간 안에 순수 전기차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으로 돌아설지도 모릅니다. 생각 보다 유럽의 디젤 전성시대가 빨리 마감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만은 않겠죠. 자동차 회사들 입장에선 힘든 현실이지만 또 극복해야 하는 현실이기도 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과연 디젤의 기술은 강화되는 규제에 완벽하게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현재 새로운 국제 통합 연비 측정법이 마련 중에 있습니다. 강화된 방식이 될 텐데요. 현재도 상황이 이런데 과연 강화된 측정법으로는 과연 어떤 결과들이 나올지 걱정이 조금 앞서는군요. 


이제는 정부차원에서 디젤의 친환경성과 인체 유해성 등에 대한 연구를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디젤이 아닌 대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등)에 대해 좀 더 적극성을 갖고 전략을 짜야 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디젤을 좋아하고, 디젤 승용차를 타고 있는 오너의 입장이지만, 오늘 만큼은 녀석의 머플러를 무거운 시선으로 보게 됩니다. 읽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