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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포르쉐, 날것으로 되돌리다' 카이맨 GT4


포르쉐에 대한 로망은 늘 911에 대한 로망이었습니다. '포르쉐=911'이라는 등식에 대해 특별히 이견을 달기 어렵죠. 하지만 911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던 포르쉐는 카이엔 같은 SUV와 박스터와 캐이맨 같은 911 아래급 모델을 통해 극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이후 파나메라 같은 4인승 쿠페형 세단을 내놓고, 이젠 마칸과 같은 좀 더 저렴한 SUV까지 내놓으며 차종이 다양해졌죠.


하지만 여전히 포르쉐와 포르쉐를 원하는 많은 팬들에겐 911은 최종 목적지 같은 그런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팔리는 박스터와 캐이맨이었지만 그들 앞엔 기술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인 면에서 911을 뛰어넘어선 안된다는 암묵적 가이드라인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박스터는 911 카브리올레에, 캐이맨은 911 쿠페에 점점 더 다가서게 됩니다. 그리고 이젠 운전자에 따라 캐이맨이 911 보다 더 재밌다는 이야기들을 내놓기 시작하죠.


말린다고 멈출 것 같지 않은 박스터와 캐이맨의 성장은 911 못 사서 산 차라는 빈정거림을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911 보다 더 저렴하지만 911 만큼, 아니 어떤 면에선 911 보다 더 낫다고까지 평가를 받게 되었고, 이제 포르쉐는 캐이맨에 '온전히 운전의 재미를 위하서 태어난 차'라는 특별한 딱지를 하나 더 붙여주게 됩니다. 바로 캐이맨 GT4가 등장인 것이죠.


사진=포르쉐

  


▶911의 기술을 입고 911을 뛰어 넘나?


신형 캐이맨 GT4에는 살짝 힘을 뺀 911 카레라S의 엔진이 들어가 있는데요. 여기에 하체는 911 GT3의 것과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크기는 911 카레라에 비교하면 약간 짧고 조금 넓고 높은 편. 그래서 공기저항을 911 카레라 보다는 더 받지만 차체가 무척 가벼워 (박스터의 1360kg 보다도 20kg이 더 가벼운 공차 중량) 민첩한 몸놀림에 유리합니다.


특히 가벼움의 강점은 제로백 등으로 확인되는데요. 400마력의 911 카레라 S의 수동변속기 제로백이 4.5초인데 반해 385마력의 캐이맨 GT4 수동변속기 모델 제로백은 4.4초로 미세하게나마 앞선 결과를 보였습니다. 물론 포르쉐의 듀얼클러치 변속기인 PDK를 장착한 카레라 S 보다는 0.1초 늦고 크로노 패키지 적용된 것 보다 0.3초 정도 뒤지는 결과를 보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속도면에서 911 카레라S와 견줄 만한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사진=포르쉐

차체를 가볍게 하기 위해 문 안쪽에 달려 있는 도어핸들이 노란 끈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포르쉐


그렇다면 GT4에 PDK 변속기를 달면 어떻게 될까요? 연비 효율성과 엔진 힘을 수동변속기 보다 더 잘 전달해주는 이 능력좋은 변속기가 달린다면 확실하게 GT4는 자신에게 심장을 이식해 준 진골 카레라S 수준을 스펙상 넘어 설 것입니다. 하지만 GT4엔 오로지 6단 수동변속기만 적용이 가능하도록 포르쉐는 일종의 억제장치(?)를 해놓게 됩니다. 과연 이 선택이 911 보다 잘 나서는 안되는 태생의 서러움과 관련 있는 걸까요?


*PDK : Porsche Doppelkupplungsgetriebe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포르쉐식 이름으로 독일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선 '피디케이'라고 안 읽고 '페데카'라고 읽기도 합니다. 현대는 DCT, 폴크스바겐은 DSG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DSG 역시 독일어로 되어 있어서 독일에선 '데에스게'라고도 읽기도 합니다.



본연의 즐거움을 위한 선택인가

  911을 넘어서면 안된다는 무언의 약속인가


수도 6단 변속기만 장착되는 GT4 실내. 사진=포르쉐


수동변속기만 달려 나온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아쉬워했습니다. 심지어 911 터보나 911 GT3조차도 PDK를 품고 나오는데, 아니 PDK만 선택하게끔 해놓았는데, 무슨 배짱으로 수동변속기만 달고 나온 것일까? 의견은 둘로 나뉠 수 있을 겁니다. 역시 911을 넘어서는 걸 용납치 않는 것이라는 것과, 운전의 즐거움에 모든 초점을 맞춘 결과물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한국에선 전자의 경우가 아니겠냐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독일 쪽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비록 캐이맨이지만 GT 모델에 수동변속기가 장착된 것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911을 넘어서지 않았다는 안도감 때문에? 포르쉐측의 의중은 독일 언론과의 관계자들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먼저 GT 파트를 책임지고 있는 우베 브라운이라는 엔지니어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 우리는 그 동안 포르쉐 하드코어 팬들의 수동변속기에 대한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


이 이야기는 뭔가요? 911 GT3에 조차 PDK만을 장착하기로 결정했을 때 포르쉐 골수팬들의 입에선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효율만 강조하다가 스포츠카 본연의 날것이 퇴색되었다는 비판들이 흘러 나온 것이죠. "포르쉐가 점점 안락한 차가 되어 가고 있어!" 라는 얘기 속에는 변화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하지만 포르쉐가 편안한 차로 거듭날 수록 판매량은 늘어만 갔습니다.


장사가 잘되니 그 선택을 되돌리긴 어렵겠죠. 하지만 포르쉐 내부적으로도 오랜 팬들의 비판과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GT4와 수동변속기 조합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현재 포르쉐의 테스트 드라이버로 활약 중인 발터 뢸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GT4의 성능에 대해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해댔습니다. 그중에 두 가지만 볼까요?


"포르쉐의 그 어떤 스포츠카도 GT4만큼 정확하게 움직이는 차는 없습니다." (슈피겔 인터뷰 내용 중)


"GT4의 균형감은 최고죠. 엔진과 수동변속기의 조합은 완벽합니다. 그리고 이 차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델이 아니에요. 오로지 운전의 즐거움을 찾겠다는 이들에게 어울립니다."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 인터뷰 내용 중)


사진=포르쉐


옵션 적용이 가능한 풀버킷시트는 부분적으로 탄소섬유 소재가 적용됨. 사진=포르쉐



원초적 본능이 살아 있는 GT4


우베 브라운과 발터 뢸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이미 캐이맨 GT4는 운전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911을 넘어섰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GT3나 911 터보 등에 비하면 스펙상으로는 분명 밀리지만 이 차는 트랙 등에서 온전히 밟고 돌고 멈추고 변속하는 스포츠카의 원초적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캐이맨 GT4는 날것 포르쉐로의 귀환이라 해도 좋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GT4를 타보지 않았으니 성능에 대해 너무 칭찬을 하는 것도 사실 이상할 수 있겠죠. 하지만 현재까지 몇몇 시승기나 인터뷰를 보면, 이 차가 가지는 스포츠카로서의 가치는 칭찬받을 만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판매량을 생각하면 당연히 PDK 를 선택했어야 하지만 포르쉐는 그걸 포기하고 골수 팬들에게 "우리, 당신들을 외면하지 않았거든요?"라고 외치고 있는 거 같아서 그게 반가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를 편안하고 안전한 이동수단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포츠카까지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포르쉐는 그간의 안락함으로 무장하던 자신들의 행보가 미안했는지 살아 움직이는 활어 한 마리를 우리 앞에 내놓았습니다. GT4 정도면 괜찮죠?라며 아직 원초성을 잊지 않았음을 보여 줬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차를 즐길지는 알 수 없지만, 판매량 보다는 스포츠카의 날선 즐거움을 먼저 생각하고 만든 GT4가 성공해 야생의 질주가 앞으로도 계속헤사 이어질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추신 : 수동변속기 모델이라 한국에 수입이 안될 거라는 얘기들이 있더군요. 자동차 전문지 기자 한 분이 제게 그런 얘길 해줬습니다. "어차피 포르쉐는 세팅해 놓고 이 차 얼마입니다 하는 회사는 아니잖아요? 주문을 받으면 그 때부터 만들기 때문에, GT4에 대한 요구가 있다면 왜 판매를 안 하겠어요. 다만 수동변속기의 캐이맨을 얼마나 원하느냐가 문제겠죠." 


사진=포르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