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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그 돈 주고 미니 왜 타냐는 분께 이 글 드립니다

기아 쏘울이 출시와 함께 계속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 자체의 평가 보다는 론칭 때 회사 임원분의 블라인드 테스트 언급, 그리고 어제 모 언론 시승기에 드러난 관계자의 미니 폄하(?) 발언 등으로 일종의 구설수에 오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요.

저도 쏘울과 관련해 또 이런 이야기를 하려니까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자니 걸리는 게 있어서요. 특히 오늘 얘기가 그렇습니다. 아마 기사를 본 분들도 계실 테고 잘 모르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신형 쏘울에 대한 언론 시승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와중에 한 언론에서 기아차 관계자의 말을 기사화했는데요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3~4천만 원짜리 미니가 왜 한국에서 많이 팔리는지. 직접 타보고 나니 더 이해가 안 가요. 운전이 편합니까, 실내가 좋습니까? 아무리 따져 봐도 같은 배기량 국산차 2대를 살 만한 가치는 없어요."

저는 일단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현대나 기아차의 신차 출시 때 항상 이런 식으로 프리미엄 메이커의 모델들과 제원이랄지 이번처럼 승차감 인테리어 비교를 하면서 현대나 기아차가 뒤쳐지지 않는다. 아니 더 낫다고까지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얘기를 듣고 있으니까 "코딱지 만한 골프를 미쳤다고 그 돈 주고 사냐고" 했던 어떤 이의 말이 떠오르네요. 그러면 왜 미니라는 차를 사람들이 그 돈주고 사는지...왜 소비자들이 이해 안되는 선택을 하는지 나름 변론을 해보고,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럼 질문을 이렇게 하면서 시작해 볼게요. " 미니의 어떤 점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걸까요?"

 

1. 역사

모리스 미니 마이너 1959년. 사진=favcars.com

미니라는 차는 1959년 8월 세상에 첫 선을 보입니다.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유럽에 기름 수급이 원활치 않게 되었고, 그 때문에 기름을 아낄 수 있는 작은 차를 만드는 분위기로 급격하게 바뀌게 되죠.  70년대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석유 파동으로 소형 해치백들이 쏟아져 나온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이태리에서는 피아트가 미니 보다 2년 전인 1957년에 피아트500이라는 미니카를 내놓았고, 그 보다 몇 년 전에는 이세타라는 2인승 미니카가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세타는 1955년 BMW가 소유권을 사들이게 되면서 위기 의식을 느낀 영국 자동차는 작은 차에 대한 본격적인 경쟁을 펼치기 위해 미니를 내놓게 됩니다. 오스틴 & 모리스 (BMC) 사에서 로버로, 로버사에서 다시 독일의 BMW로 미니의 주인이 바뀌었는데요.

우여곡절의 시절을 지나 오면서도 미니는 굳건하게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 갔습니다. 2013년 기준으로 출시된 지 54년이 넘은 차가 미니입니다. 단순히 역사가 길다고 해서 그 차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한 차 종이 브랜드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한 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힘이라 하겠습니다.

 

2. 스타일

오스틴 미니 1959년. 사진=favcars.com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 차는 매우 작습니다. 당시 출시되었을 때 전장, 그러니까 차의 길이가 3미터 5센티미터였어요. 현재 기아 모닝이 3미터 60센티미터니까 모닝 보다 55센티미터나 더 짧은 차였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미니카였죠. 그런데  이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4명의 성인이 차에 탑승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디자인은 한 눈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죠. 또한 독특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탄생과 함께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췄습니다. 실제로 이 차를 디자인한 알렉 이시고니스 경은 남의 디자인을 베끼는 것, 혹은 참고하는 것 조차 옳은 디자이너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독창적인 디자인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저런 작은 차체에서 나올 수 있는 디자인이라는 건 한계가 있겠죠. 또 이전에 나온 피아트500이나 이세타 같은 더 개성 있는 미니카도 이미 있었고요. 그리고 50년대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에서도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미니가 나오기 전에 이미 페라리나 애스턴 마틴과 같은 메이커들의 모델들에서 그런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미니는 어디서 봐도, 누가 봐도 미니라는, 자신만의 색깔과 스타일을 갖고 있었습니다.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이 유지가 된 것이죠. 그리고 처음에 추구된 그 디자인이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계속해서 유지가 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 스타일의 연속성도 미니의 성공의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하지만 미니의 진짜 성공은 바로 '스토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3. 스토리

로버 미니 1990년 사진 =favcars.com

역사가 길다는 것은 그 기간 안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서 그것이 자신만의 가치로, 또 전통으로 승화되고 다져졌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미니가 그렇게 된 것이죠. MINI라는 차를 이야기 할 때 자주 언급 되는 것이 바로 '미니 스커트'입니다. 

 

1970년대 초반의 미니스커트 입은 아가씨들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메리 퀀트라는 영국의 여성 디자이너는 미니의 오너였죠. 그녀는 자신의 차가 정말 마음에 들었고, 그 미니에서 영감을 얻어 귀엽고 짧은 여성용 치마를 디자인하게 됩니다. 미니 스커트는 그렇게 태어났죠. 또 이 차는 유명인들이 소유한 것으로도 잘 알려졌는데요. 영국의 여왕도 미니를 한 대 소유했고, 비틀즈 역시 미니를 구입했습니다.

또 60년대 유명한 영화 이탈리안잡 (2003년에 리메이크 됐죠.)은 아예 '미니'를 위한 영화가 되어주었죠. 머스탱, 포르쉐, 비틀 등 수많은 자동차들은 영화의 주요한 소재, 혹은 아예 영화속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에게 자동차에 대한 환상 혹은 로망을 갖게 해줬고 미니 역시 그러했습니다.  나중에 BMW에 인수가 된 이후에도 미니의 컬쳐카 이미지는 이어지는데요. BMW가 하는 유명한 아트카 프로젝트에 미니도 참여를 하게 됩니다.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차가 대표적이죠.

 

폴 스미스의 미니 1999년 사진 =MINI

하지만 미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미니의 아버지라 불리는 알렉 이시고니스 경입니다. 그리스계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터키에서 태어나  영국 국적을 얻고 나중에는 결국 'Sir'라는 기사 작위를 얻기에 이릅니다.  왜 그러면 디자이너에게 미니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붙었을까요?

알렉 이시고니스 경은 디자인만 한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링까지 도맡아 했습니다. 디자이너가 엔지니어였고, 엔지니어가 디자이너였던 것입니다. 온전히 알렉 이시코니스의 주도 하에 미니의 모든 것이 탄생되었습니다. 미니 외에도 디자인을 많이 했지만 역시 뭐니 뭐니해도 그의 평생의 역작, 가장 명예로운 작품은 미니 하나였습니다.

 

알렉 이시고니스 경. 사진 = MINI

알렉 이시고니스와 그의 작품 미니는 몇 년 전에 아예 우표로도 디자인이 되어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죠. 어떻게 보면 국가 차원에서 미니 띄워주기를 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니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미니와 디자이너 알렉 이시고니스 경 이름이 들어가 있는 우표 디자인. 사진 = bfdc.co.uk

이처럼 다양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미니는 이야기들 쌓이고 쌓이면서 미니라는 브랜드의 알려 나갔고  자신의 가치를 높여 갔습니다. 차를 평가하는 것이 성능의 문제로만 이야기 될 것은 아니라는 걸 미니가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미니에 대한 이야기가 끝인가? 아닙니다. 미니는 존 쿠퍼와의 만남을 통해 좀 더 분명한 방향을 잡게 됩니다. 

 

4. 방향성

로버 미니 쿠퍼 S 웍스 . 사진 =favcars.com

많은 분들이 미니의 기본 차로 오해하고 있는 미니 쿠퍼는 사실 원래 미니에 성능을 올린 일종의 고성능 버젼 모델이에요. 이게 요즘은 쿠퍼S, 그리고 JCW까지 발전하게 되었죠. 현재도 유럽에선 100마력 미만의 미니 원(One)과 같은 기본형 모델이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존 쿠퍼라는 자동차 회사의 오너이자 엔지니어는 미니와의 협업을 통해 경주에 출전을 시킬 만한 모델을 만듭니다. 일종의 튜닝카죠. 처음엔 알렉 이시고니스 경은 반대를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회사는 이를 승인했고, 결국 존 쿠퍼의 손을 거친 미니 쿠퍼S는 몬테 카를로 랠리라는 아주 유서깊은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1964년, 1965년, 그리고 1967년 이렇게 세 차례 우승하게 됩니다.

 

몬테 카를로 랠리에 참가 중인 미니 쿠퍼S. 사진 = MINI

쿠퍼와의 고성능 작업은 이처럼 랠리를 통해 그 성능이 입증되면서 미니의 방향성을 초창기 경제적인 차량의 개념에서 드라이빙의 즐거움이 있는 차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BMW는 이를 펀카로 좀 더 대중적이게 다듬어 놓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 차는 안락한 공간의 개념을 갖고, 승차감이 좋은 차의 개념으로 나온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작지만 운전의 재미가 있는 컬쳐카가 현재 미니에 대한 성격 규정이 아닐까 해요. 모노코크 바디와 MM이론을 만든 설계와 디자인 등, 미니는 초창기부터 나름 혁신적인 시도를 했고 그것이 문화적인 영역으로, 그리고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주는 자동차로까지 발전되었습니다.

 

미니를 왜 사냐고요?

로버 미니 쿠퍼 파이널 에디션 2000년. 사진 = favcars.com

제가 사는 동네에 로버 시절의 미니를 몰고 다니는 젊은 독일 남자를 마트에서 가끔 봐요.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는 그 친구가 작은 미니에서 힘겹게 내리는 모습을 볼 때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면서 개성 있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기아차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그 남자는 굳이 비싸고 운전이 편하지도 않은 차를 왜 타는 걸까요? 답은 이미 제가 앞에 내용들을 통해 전해드렸다고 봅니다.

미니를 타는 이유는 그 브랜드를 얻고 싶어서 입니다. 또한 운전의 재미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미니가 쌓아온 역사, 그 역사 속에 쌓여진 많은 이야기들 속에 자신도 들어가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동화되고 싶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이가 되고 싶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운전의 재미도 쏠쏠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나오는 미니에 큰 매력을 못 느낍니다. 운전의 재미는 미니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차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오스틴 & 모리스 시절의 미니는 못 갖는다고 해도 로버 시절의 미니 정도는 저도 한 대 갖고 싶습니다. 클래식카에 대한 로망이기도 하겠지만 앞서 말씀드린 미니가 쌓아간 그 스토리 속에 저도 합류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거죠. 당연히 폼도 잡고 싶은 마음 있습니다. 저 작은 차를 타는 게 폼을 잡는 일이라고 한다면 말이죠. 다만, 미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차를 선택했다가 너무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분들에게는 기아의 항변이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충분히 미니의 성격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겐 그런 얘기는 와닿지 않을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런 미니의 히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맨날 차의 사이즈가 어떻네, 승차감이 어떻네, 우리가 그래서 더 낫지 않느냐는 등의 이야기만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왜 이 차를 타는지 이해 못하겠다는 말 보다는 왜 이 차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기아도 역사를, 스토리를, 분명한 자기 방향성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이건 진심이에요. . .


이 글을 토대로 만들어 본 영상입니다. <미니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