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말 그대로 ‘억’ 소리나는 기사가 떴죠. 스웨덴 국적의 한 핀란드 사업가가 과속을 했다가 우리 돈으로 약 1억 37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됐습니다. 제한속도 50km/h 구간에서 77km/h로 달리다 교통경찰에게 걸린 것인데요. 시속 27km/h 과속했다고 1억 원이 넘는 액수를 벌금으로 물다뇨!
우리 같으면 “싼 것 좀 끊어주세요.” 라고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이 나라에선 일단 걸리면 자신의 월 소득을 먼저 말을 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핀란드는 운전자의 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내는 ‘차등 범칙금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죠. 제한속도에서 20km/h 이상 과속하면 2주치 급여를 벌금으로 납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업가의 벌금을 계산을 해보니까 과속 1km/h당 약 5백만 원의 벌금이 부과됐습니다. 연봉이 얼마이기에 이 정도를 냈는지 상상이 잘 안 가죠? 당사자인 사업가 안데르스 위클뢰프(67) 씨는 자선사업도 많이 하는데 이런 식으로 무리한 벌금을 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억울함을 호소한 모양입니다.
종종 핀란드의 이런 고액의 과속범칙금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02년 노키아가 핸드폰 시장을 한창 지배하고 있던 시절 부회장이던 안시 반 요키는 수도 헬싱키에서 50km/h 제한 속도 구간에서 75km/h로 달리다 과속범칙금을 받게 되었는데 금액이 자그마치 1억 6700만 원이었습니다.
2004년에는 소시지 만드는 회사 대표 아들이 시속 25km/h 제한속도 구간에서 과속을 했다가 약 2억 5천만 원 가까운 돈을 벌금으로 내야 했죠. 더 유명한 사람도 등장합니다. F1 좋아하는 분들은 잘 알고 있을 핀란드 출신의 레이서 키미 라이코넨인데요. 역시 2004년인가 스노우 보드 석 대를 싣고 달리다 불법 적재로 걸려 약 4천 350만 원의 벌금을 물었습니다. 그의 당시 수입은 월 2억 2천만 원이었다는군요.
키미 라이코넨, 사진 =위키피디아
이쯤 되면 핀란드에선 정말 교통 표지판 똑똑히 보고 운전해야 할 거 같은데요. 이 뉴스를 접한 독일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관련 기사에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요.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독일인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요?
Wazz up : 많이 벌면 많이 내는 게 맞지. 1년에 수십 억을 버는 사람들에겐 우리의 (독일) 벌금이 충분하지 않다고.
Toby1389 : 95,000유로의 벌금을 낼 수 있다는 건 그 만큼의 수입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독일도 그래야 할 거 같은데? 내가 만약 한 달에 50,000유로(7천 250만 원)를 번다면 680유로 (98만 원, 독일 과속범칙금 최대치)는 전혀 부담이 안 될 거야.
Jared : 난 반반이야. 부자가 벌금을 40유로밖에 안 낸다는 건 사실 의미 없는 거잖아. 그러니 교통을 제대로 지키겠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시속 27km/h 과속 때문에 95,000유로 벌금을 낸다는 것 또한 과한 거라고 봐.
Drahkke : 독일엔 이런 벌금 제도가 안 맞아. 예전부터 핀란드에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건 다 알려져 있잖아. 그걸 하기 위해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는 거지. 독일에서 가능할까?
Swallow : 이건 완전 오버네.
Rpalmer : 95,000유로를 내든 125유로를 내든 내 생각엔 계몽 효과는 0%일 거 같은데?
Dr. Mabussen : 벌금 보다는 면허 정지가 훨씬 효과적일 거야. 4주 동안 차 없이 살아 보라고 해. 돈을 얼마나 벌든 말든 그건 고통스러운 일일 거야.
Krebsandi : 오버 오버 오버. 만약 제한속도 50km/h의 구간에서 시속 200km/h 정도로 달렸다면 이해가 가. 이건 좀 그렇다.
Kblaubeer : 독일에서도 벌금을 하루 단위로 계산을 해. 당신들이 몰라서 그렇지 이미 법에 정해져 있어. 형법 제 40조에 보면 타게스삿츠(Tagessatz, 일수벌금제)라고 해서 소득에 따른 벌금을 내게 되어 있는데 과속 운전자의 경우도 적용되지. 많이들 모르고 있군. (이 사람이 얘기한 일수벌금제는 잠시 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Jebo76 : 벌금 그 거 소용없다. 면허정지나 사회봉사 명령 같은 것들이 더 나은 방법이 될 수 있어.
Cng-lpg : 수입이 많으면 그 만큼 벌금도 많이 내는 게 맞다고 난 생각해. 다만 문제인 건 유럽 전체에 이를 동일하게 적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지.
Ronny12619 : 난 이런 상상도 해보게 되네. 예를 들어 차량에 브레이크 제동력을 계산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거야. 아우디 R8 같은 차에 세라믹 브레이크 달려 있잖아? 이 차가 제동하는 것과 15년 된 아시아 차가 제동을 하는 것은 분명 다를 거야. 이런 차들의 제동력, 제동 거리를 통해 거기에 맞는 범칙금을 물리는 거지. (뭔 소린지 원…)
Hartgummi : 수입에 따른 범칙금 제도가 없는 게 난 아쉬워. 위급들은 현재 유지되고 있는 벌금 테이블을 보면 웃고들 있을 테고, 보통 서민들은 이를 갈 테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그 돈을 어떻게 내야 할지 막막해 눈물을 흘릴 거야.
Fedeggs : 기본적으로 공평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독일처럼 시간당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에서는 수입에 따른 차등 범칙금 제도를 실행하면 오히려 평균 범칙금 액수가 내려갈 수도 있다고 봐. 그럼 세수에 부담이 될 걸? (이 사람은 독일 인건비가 싸다고 하네요. 독일은 인건비가 비싼 나라 중 하나죠. )
Hornman : 맞다. 잘못을 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 40유로 벌금은 부자들에게 의미 없어. 하지만 같은 40유로라도 가난한 이에겐 아픔이 되지. 벌금은 누구에게나 아픔이 되어야 한다. 그게 공평한 세상인 게야.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죠? 차등 적용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을 하는 의견들이 전체적으로 많이 보였고요. 반대로 말도 안된다는 의견도 꽤 있었습니다. 취지엔 찬성을 하지만 액수가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저의 생각도 이 범주 안에 있는데요.
소득에 따라 범칙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찬성을 합니다. 다만 좀 더 속도를 세분화 해서 적용을 하는 게 어떨까 싶은 것이, 20km/h 과속했다고 1억의 범칙금을 내는 건 오히려 역 차별의 논란도 나올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리고 단속 카메라의 오차율이 10% 이상인 경우들이 많다는데, 이를 최소화 시키는 기술적 보완도 이뤄져야 하지 않겠나 싶네요.
아까 어떤 독일 네티즌이 일수벌금제 이야기를 해서 그 걸 좀 설명을 드릴게요. 독일이나 스위스,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등등,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는 벌금형의 기준을 소득으로 따집니다. 월 아니면 연 수입을 일단 먼저 계산합니다. 그리고 꼭 지출이 되는 비용들, 그러니까 집세나 세금 등을 제외시키죠.
그렇게 해서 평균 일일 수입을 설정합니다. 그런 다음 독일 같은 경우는 최소 5일, 최대 360일까지, 최소 1유로에서 최대 30,000유로까지 계산을 해서 벌금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10일 벌금형에 처하는데 수입에 따라 금액을 일일 100만 원으로 계산했다면, 10일 x 100만 원 = 총 벌금 1,000만 원이 됩니다.
다만 이건 재판에서 벌금형에 처해지는 사람들에 한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 과속 운전자들에게 적용되는 최소 10유로에서 최대 680유로의 일반적인 과속 범칙금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부 한국 언론들도 이 차이를 몰라서 일수벌금제와 핀란드 식 차등 범칙금제를 혼돈하기도 하더군요.
뭐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았는데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차등 범칙금제가 과연 적용이 될 수 있을까요? 또 있다면 어떤 형태가 되는 게 바람직할까요? 한번쯤은 이런 얘기가 공론화 되어 의견을 모아 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은 것은 지키라는 속도에 맞춰 운전을 하는 것일 아닐까 합니다. 늘 안전운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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