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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 자동차 문화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



독일에서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와 독일의 교통시스템이나 운전 문화에 대해 비교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운전을 했고, 독일에서도 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부터 듣고 보고 하는 간접 체험까지 더해 지금껏 많은 이야기를 해오고 있는데요.

 

그런데 가끔 이런 얘기들을 듣게 됩니다. " 직접 독일에서 운전을 해보니까 듣던 거와는 다르던데요?" 혹은, "독일 사람들은 다 FM 운전하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닙디다." 등의 의견들이죠. 이런 말씀들 들을 때마다 '내가 혹시 환상을 심어주거나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너무나 우리나라와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부분들도 있고, 어떤 면에선 "우리나 니네나!" 하는 식의 별반 다를 게 없는 익숙한 경험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독일 자동차 문화에 대해 오해할 만한 것들 몇 가지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일단 제가 알고 있고 경험한 것들 위주로 말씀을 드려볼게요.

 

 

1. 독일 운전자들은 모두 규칙을 잘 지킨다?

 

사진= de.academic.ru

베를린 중심가 모습입니다. 정지선에 깔끔하게 잘 정차돼 있죠? 얼마 전 관련 포스팅에서 독일 신호등은 횡단보도 앞이나 중간 정도에 세워져 있어 차들이 정지선을 어기기 힘들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정지선뿐 아니라 아우토반에서 좌측 차선으로 추월하는 것 역시 매우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죠. 또 안전벨트 착용 (뒷좌석 착용 포함), 어린이 카시트 장착률 등은 세계 톱 수준입니다.

 

 독일인 하면 법과 제도를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그런지 우리나라엔 모범적인 사례를 들 때 독일이 많이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에요. 실수도 있고, 범법도 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직진 차로에 차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우회전 차선으로 들어가 우회전을 받자마자 거기서 불법 유턴을 해서 원래 가려던 직진 길로 가는 운전자들 제법 있어요. 처음엔 헐~ 했는데 이젠 그러려니 하고 말게 되네요.

 

독일 운전자들 클락션 거의 안 울리는 편이지만 앞차가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주행을 안 하면 여지없이 경적음 소리 나옵니다. 특히 독일에 와서 처음 운전할 때 가장 당황하는 부분이, 왜 이렇게 바짝 붙어 운전하냐는 겁니다. 아우토반이나 시내 주행에서 가끔 보면 차간 거리 유지하지 않고 엉덩이에 붙어 달리는 차들을 볼 수 있죠. 물론 추월 차선일 경우, 혹은 우측 차선이 비어 있는데 내가 계속 고속 차선을 물고 달릴 땐 비켜주는 게 상식이죠. 이건 독일이 최고일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거칠게 따라붙는 차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맙니다.

 

끼어들기도 깜빡이 안 켜고 들어오는 경우 많습니다. 특히 포르쉐 같은 스포츠카 까불면서 운전하는 젊은 애들 제법 되죠. 이럴 때 게르만들은 이민자들이 운전을 주로 그렇게 한다고 불만을 표시하는데요. 시내 로터리나 고속도로 입출구에서 코너링할 때 보면 브레이도 안 밟고 달리는 노란머리 독일사람들 태반입니다. 저러다 차선 이탈하겠다 싶을 정도로 거칠죠. 그래도 다행인 건 지킬 땐 지킨다는 건데 과속, 스피드에 대한 욕구를 아무래도 이 사람들 잘 참지를 못하는 거 같습니다.

 

 

2. 독일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안한다?

 

일단 틀린 얘깁니다. 무단횡단 밥먹듯이 해요. 그 이유는 도로의 폭이 좁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편도 2차선이상의 도로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이런 곳은 그냥 뛰어 건너 다니죠. 다만 도로가 넓은 곳에선 무단횡단 하지 않습니다. 잘못해서 차에 치이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자동차 운전자에게 묻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무리 독일이 자동차의 나라라고 해도 사람이 늘 우선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과속 단속의 날' 행사 같은 건 있어도 '무단횡단 단속기간' 같은 건 없더군요.

 

 

3. 독일 중고차 시장은 양심적이다?

 

사진 = atcberlin.de

독일도 중고차 매매량이 신차 구매보다 많습니다. 그 비싼 독일산 메이커의 자동차를 독일 자국민들도 비싸서 새 차로 사는 게 부담이 많이 되죠.

 

또 중고차 거래가 활성화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주변국들에서 차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구동구권 쪽에서 많이들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낙에 시간관념 정확하고 (시간 제대로 안 지켜 사업에 불이익 당하는 사람들 많아요. 특히 한국분들!) 비교적 솔직한 거래를 하는 편이기 때문에 중고차 살 때도 이런 점이 잘 반영이 된다고 생각들을 하죠. 실제로도 그렇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작심하고 사기치려는 사람들한텐 못 당하는 모양이에요.

 

얼마 전에 독일운전자 클럽 아데아체(ADAC)에서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독일 내에서 거래되는 중고차의 30%가량이 주행거리가 조작된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독일자동차공업협회 등에서는 부풀려진 숫자다. 10%도 많다. 라고 하면서 반론을 펴기도 했습니다만, 독일 사람들 이 발표에 깜짝들 놀랐습니다. 일부 독일인들은 여지없이 특정 국가 출신의 딜러들이나 동구권쪽 차량의 개인 거래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들 하는데, 독일인 딜러들이라고 왜 혐의가 없겠나 싶습니다.

 

이렇게 조작이 많이진 이유는 3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면 3초 만에 조작이 가능한 기계를 누구나 구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자동차협회에서는 현재 메이커들이 조작이 불가능한 칩을 개발 중이라고 하면서 두 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하나는 정부가 조작 관련한 법을 강하게 해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데아체가 자체적으로 회원들 차량의 주행거리를 기록해서 데이타베이스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데아체 회원수가 1800만 명이니까 여기서 시스템을 갖춰 이를 정확하게 관리해줘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죠.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자비를 들여 차량 정기점검을 받는데요. 이 때 이 인스펙션 기록노트가 있습니다. 여기에 년도별로 기록된 주행기록만 잘 확인해도 독일의 경우는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사기를 치려면 방법은 다 있기 마련이죠. 제조사들이 빨리 자발적으로 조작방지 칩을 달아주길 바랍니다. 이거 어디 중고차 겁나서 사겠어요?

 

참고로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들이 있을 텐데요. 정비 이력을 체크하고,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차량 이력 정보(ecar.go.kr) 시스템의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주행거리에 비해 차량 시트가 너무 닳았다거나 계기판이 뜯겨진 흔적이 보이는 경우, 또  타이어 마모 상태와 주행 거리의 비교도 체크해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4. 독일 자동차 회사 CEO는 모두 전문 경영인 출신?

 

디터 체체 다임러 회장, 사진 = 위키피디아

독일 자동차 회사의 경영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불경기 속에서도 프리미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여전히 회사의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경영의 귀재들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미국 MBA 출신이거나 미국이나 영국의 명문 경영이나 경제학과 출신들이 아닐까 생각들을 하실 겁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모두 다라고 말씀은 못 드리지만 거의 대부분은 이공계 출신의, 하부조직에서부터 이력을 쌓아온 인물들이 회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옆에 사진에 나와 있는 콧수염 아저씨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회사인 다임러 CEO 디터 체체 박사입니다. 이 사람은 칼스루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죠. 연구원 출신입니다. 참고로 디체 체체 회장 학교 때 제출한 논문 중에 하나가 서스펜션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이 정도면 기술자라고 할 수 있겠죠? 

 

BMW 현 회장인 노베르트 라이트호퍼 씨 역시 공대 출신인데요. 이 양반은 나름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처음엔 독일 남부 뮌헨 공대를 다녔습니다. 이 학교는 우리나라로 치면 2년제 대학이에요. 기술전문대죠. 거기서 다시 뮌헨 기술대학교로 편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BMW에 입사를 해 현재 회장의 자리에까지 올랐죠.

 

또 폴크스바겐 그룹을 책임지고 있는 마틴 빈터콘 회장 역시 공대를 나왔습니다. 슈투트가르트 대학에서 금속 물리학을 전공했고, 이 후 폴크스바겐에서는 품질관리 전문자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아우디에서 성장을 했다가 페르디난트 피에히 현 감사회 의장 (이 양반 역시 스위스 취리히 공과 대학 출신으로, 최고 엔지니어로 평가받고 있음)의 총애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생긴 건 투박해 보여도 한 카리스마합니다.

 

 

5. 아우토반은 히틀러가 만들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삽을 들고 삽질을 하고 있는 히틀러의 모습, 사진 = 위키피디아

아우토반은 히틀러가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33년 9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첫 삽을 들었고, 그것이 '제3제국아우토반'의 시작이죠.

 

사실 이 내용만 보면 히틀러가 만든 게 맞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에 의해 아우토반이 계획된 것은 아닌데요. 이미 1920년대 신호등과 교차로가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에 대한  준비가 있었습니다. 그걸 히틀러가 마치 자신의 업적인 냥 낼름 한 것입니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독일 국민차 프로젝트가 있죠. 비틀하면 히틀러가 포르쉐 박사에게 의뢰해 만들었다고 알려졌죠. 사실 이 내용만 놓고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차 프로젝트는 이미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훠~~얼씬 전부터 독일 내에서 얘기가 되어 왔던 내용이에요. 하지만 대량 생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민간 주도로 이야기 되었기 때문에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죠. 이걸 국가프로젝트로 강제화한 것이 히틀러입니다. 물론 전쟁으로 말미암아 비틀은 출시되지 못했고, 히틀러 사후에 전승국의 승인 아래 결국은 차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6. 최초의 렌터카 회사, 독일 아니었어요?

 

어떤 분이 Hertz라는 렌터카 업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게 독일에서 출발한 회사가 아니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마도 Hertz라는 이름이 독일식이라 그런 질문을 하셨던 거 같은데요. 정확히는 렌터카 사업이 시작된 것은 미국에서였습니다. 1923년에 공식적으로 시작이 되었는데요. 원래 다른 사람이 시작했던 사업을 존 헤르츠라는 사람이 인수해 지금에 이르렀죠. 존 헤르츠가 독일계 미국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초의 렌터카 사업, 렌터카 업체는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7. 독일의 자전거 도로는 특별하다?

 

사진 = abendzeitung-muenchen.de

네덜란드나 독일은 자전거의 나라로 유명하죠. 그래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발달돼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독일에 와서 이 전용도로를 보면 "에게~!" 라는 허탈한 탄식이 나오게 될 겁니다.

옆에 사진에선 노란색으로 그래도 구별되게 그어져 있지만 제가 사는 곳 등은 그냥 흰색 선 쭈욱 그어진 게 답니다. 어떤 곳은 점선으로 그어져 있어서 더 잘 안 보이죠.

 

독일의 자전거 전용도로는 시스템 보다는 자전거 이용자와 차량 운전자들 사이의 상호간에 조심운전을 통해 사고를 최소화하고 있는 편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초등학교 4학년 때 전부 의무교육으로 자전거 교육을 학교에서 받고, 경찰 입회 하에 면허증 시험을 치릅니다.

 

물론 면허증이 없다고 해서 자전거를 못 타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경우 부모와 동반해서 자전거를 이용해야 하는 게 기본 룰입니다. 또 사진에 보이는 어른들은 헬멧을 안 썼는데,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를 착용하고 헬멧을 쓰게 하죠. 가족 단위로 자전거를 탈 경우엔 부모들도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 안전장비를 비교적 잘 갖추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그저 쭉 그어놓은 빈약해 보이는 자전거 전용도로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거, 그건 우리가 좀 참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가지 떠오르는 대로 독일 자동차 문화에 대해 오해할 만한 것들 몇 가지를 알아 봤습니다. 사실 여기 언급 된 거 외에도 더 말씀 드릴 수 있어요. 노인 운전자들 문제랄지, 고속도로 역주행 차량들 문제 등. 이런 경우는 제도와 운전자 의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주로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무조건 운전자들의 양식만 믿고 맡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시스템을 통해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라는 거죠. 이건 지난 번 정지선 관련한 글을 통해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독일도 여전히 자동차와 관련한 제도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또 언론도 이런 점을 공론화 하죠. 예를 들어 아우토반 전체 구간에 제한속도를 둬야 하는가, 전기차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자동차 업체들 위주가 아닌가, 친환경적인 정책들과 산업으로서의 자동차 정책을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등의 것들입니다. 여기엔 시민단체나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 외에도 정치인들이 주도해서 문제를 풀어가기도 합니다. 독일이 잘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생각만큼 이 나라가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의 운전문화와 정책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자동차 중심의 다양한 시스템 개발과 자연스러운 국민적 관심은 확실히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또 지켜야 할 것을 정확히 지키려는 사회적 약속과 국가의 지원 등은 자동차의 나라답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렇다고 환상을 갖지는 마십시오. 배울 건 배워야겠지만 여기도 모자라고 모순된 정책과 문화는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의 현실을 너무 자책하고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린 안돼!" 라는 패배의식이 우리 스스로를 더 위축되게만 할 뿐입니다. 독일의 좋은 시스템과 의식은 배우되, 그렇지 못한 점들은 흘려 보내면 그만이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간 우리가 더 합리적인 도로 환경이 구축되어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한 명이 책임 있는 운전자가 되어 주신다면 분명 독일을 넘어선, 멋지고 안전한 대한민국 도로 풍경이 그려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