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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BMW 따라가려다 실패한 재규어 "죽음의 입맞춤 하지 않겠다"

영국의 100년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 한때 그들은 레이싱 역사의 중심에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고급 브랜드는 수익을 내는 데 있어서는 차의 성능만큼 탁월하진 못했죠. 60년대 후반부터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합병이 되기도 하고, 또 포드와 타타 등에 인수되는 등, 독자 생존의 길을 가지 못한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의 타타자동차 그룹 안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요. 그 출발점은 바로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사진=재규어

 

영국 브랜드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른 프랑스인

코로나19로 전 세계를 정신 없던 2020 9, 재규어랜드로버 그룹은 자신들의 최고경영자로 티에리 볼로레 전 르노그룹 회장을 선택합니다. 르노 그룹이 카를로스 곤의 오른팔로 불린 볼로레 회장을 10개월 만에 경질하자 1년 만에 재규어랜드로버는 그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프랑스인은 '리이메진'이라는 브랜드의 새로운 전략을 공개했습니다. '다시 상상하다, 그리다'라는 의미를 가진 이 전략은 쉽게 말해 고급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통해 높은 마진을 보겠다는 것이었는데요. 이를 위해 완전한 브랜드의 전기차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티에리 볼로레 전 CEO / 사진=재규어랜드로버

 

심지어 그는 재규어 플래그십 세단 XJ를 전기차로 활용하지 않고 단종한다는 과감한 결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가 영국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간 재규어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그중에서도 BMW를 가장 큰 경쟁 상대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요.

 

이어진 발언을 보면 BMW는 재규어의 경쟁상대 이전에 일종의 롤모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티에리 볼로레는 우리가 BMW처럼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길을 가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고, 경쟁이나 '모방'이 아닌, 재규어만의 고유 모델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가는 게 맞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모방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재규어는 영국의 BMW가 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재무 전문가 신임 회장의 '죽음의 입맞춤' 발언

 

그런데 과감한 변화를 선언한 이 티에리 볼로레 회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스스로 사표를 던진 것인데요. 사임 이유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급하게 그룹 재무를 담당하던 아드리안 마델이 임시 CEO가 되었고, 1년 만인 최근, 3년 임기의 재규어랜드로버 그룹 정식 CEO가 되었습니다.

 

이 아드리안 마델이 투자자들과의 회의 자리에서 한 얘기 일부가 언론에 공개됐습니다. 모터1 프랑스판에 따르면 아드리안 마델은 "우리는 많은 이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대중에게 어필하려는 것은 일종의 죽음의 입맞춤이고, 그것이 브랜드에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드리안 마델 신임 CEO / 사진=재규어랜드로버

 

그러면서 그는 미국 시장에서 보다 많이 판매하려고 타협을 한 것이 재규어가 과거 북미 지역에서 거둔 큰 성공을 사라지게 한 것이라는 말도 이어서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BMW처럼 프리미엄 브랜드이면서 판매량도 많은, 그런 길을 가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 방향성이 지금의 어려움을 만든 것이라고 그 역시 본 것입니다.

 

전임 회장 티에리 볼로레가 한 이야기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미 그룹 내에서는 지금까지의 전략이 완전시 실패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의 입맞춤이라는 표현까지 나오는 등,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연이어 두 명의 CEO가 밝힌 것을 보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대중에게 관심받기보다는 럭셔리 차에 지갑을 여는 소수 부자들에 집중하겠다는 이 노골적 전략이 먹히기 위해선 디자인과 성능 등, 지금 재규어가 내놓는 모델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파격적인 그런 전기차가 되어야 하는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기대 반 우려 반

사진=재규어

 

3대 정도의 신형 전기차가 우선 개발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한번 충전으로 최대 700km까지 달릴 수 있는 억대의 GT 모델도 포함된 것으로 보입니다. 신형 전기차는 올해 후반에 공개될 예정이고 2024년부터 본격 생산해 고객에게 인도되는 시기는 2025년이라고 언론은 예상했습니다.

 

유럽에서조차 BMW나 아우디, 벤츠, 볼보 등에 크게 밀리며 자존심을 구긴 재규어가 과연 고마진의 럭셔리 전기차를 통해 이익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을지, 조금은 기대되고 약간은 염려됩니다. I-페이스와 같은 괜찮은 전기차를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성능과 디자인에서 파격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 이상의 것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행보로 봤을 때 조금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든 재규어는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밝힌 것처럼 다수의 고객이 아닌, 소수의 지갑을 노릴 것입니다. 이 새로운 전략을 위해 5년간 25조나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과연 부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키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독일 브랜드를 좇는 자존심 상하는 여정을 끝내고 화려하게 도약할 수 있을지, 이들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