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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골프에서 R8까지' 모두 되살린다

먼저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만약 아주 애정을 가지고, 혹은 어떤 이유에서든 오랫동안 정을 붙여 타던 자동차가 단종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사람마다 반응은 다르겠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그 단종된다는 자동차가 배터리 전기차나 수소전기차로 다시 만들어진다면 그건 내가 타던 차와 같은 차일까요 아닐까요? 이 또한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답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독일에서는 이런 질문에 어울리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초쯤입니다. 폴크스바겐의 대표 모델, 독일의 국민차 골프가 8세대를 끝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페이스리프트 한 번 진행한 후에 후속 모델, 그러니까 신형 골프를 내놓지 않기로 했다는 건데요.

골프 / 사진=VW

 

요즘 골프 체면이 말이 아니긴 합니다. 판매량이 계속 줄고 있고, 국민차라는 타이틀을  SUV 모델 티록에 내줄 직전에 와있습니다. ‘ID.’라는 전기차 전용 브랜드가 있고, 여기에 이미 ID.3와 같은 골프 대체 모델이 나와 판매 중이기 때문에 골프 전기 모델을 내놓는 것도 중복의 느낌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여러 이유가 단종설이 나오는 배경으로 분석됐습니다.

 

하지만 골프라는 이름을 없애지 않겠다는 얘기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습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 한 시대를 풍미한 해치백의 교과서 골프를 이대로 포기하는 것도 사실 쉽게 이해가 안 되는 일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ID.골프라는 이름으로 골프가 계속 그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얘기도 강하게 돌아다녔습니다. 이게 진짜 골프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겠죠.

 

어쨌든 골프 단종설과 골프 연명설(?)은 계속 뒤섞여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9월 말, 폴크스바겐 감독위원회에서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에서 새로운 골프를 전기차 플랫폼을 통해 내놓고 싶어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신형 플랫폼을 통해 나올 수 있다는 건데 여기서 말하는 플랫폼은 SSP(Scalable Systems Platform)입니다. 다양한 그룹 전기차가 이 플랫폼을 통해 쏟아지게 되는데요.

 

2026년부터 SSP를 통해 나올 전기차들 중에 골프도 포함이 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거의 오피셜급 발표인지라 골프 단종설은 이로써 사라지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그러면서 함께 나온 얘기가 SUV 티구안급의 전기차도 이 플랫폼을 통해 나올 것이란 것이었습니다. 티구안 전기차 버전인지 아니면 티구안과는 또 다른 모델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뭐가 됐든 중요한 건 골프나 티구안 등이 계속 시장에서 굴러다닐 것이란 사실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동차 문화가 전기차 시대로 인해 급격하게 재편되면서 많은 익숙한 것과의 단절을 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그나마 이렇게 내연기관 모델이 전기차 시대로 이어진다는 소식은 저 같은 아날로그적 마인드의 자동차 팬에겐 다행스럽게 들립니다.

ID.GTI 콘셉트 / 사진=VW
사진=VW

 

그런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영국 오토카에서 관련한 소식 하나가 더 전해졌습니다. 아우디가 단종하기로 한 스포츠카 R8을 전기차로 계속 만들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현재 소량 생산되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스포츠카와 수퍼카 등을 위한 전기차 아키텍처를 개발하고 있다는 건데요. ‘툴킷이라는 불리는 융합 전기차 플랫폼이 그 주인공입니다.

R8 / 사진=아우디

 

오토카에서는 아우디 관계자와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R8이 단종되지 않고 전기 스포츠카로 나올 수 있음만 이야기했는데 독일 언론은 TT 역시 단종이 아닌 전기차로 돌아올 수 있다고 추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TT까지? 싶기는 한데 만약 보도한 내용대로 된다면 단종 얘기가 나온 폴크스바겐과 아우디의 주요 모델들이 사라지지 않고 전기차로 계속 우리와 함께하게 됩니다.

TT / 사진=아우디

 

과거 유명했던 클래식 자동차를 전기차 시대엔 되살리기가 참 좋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신차 개발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도로에서 보고 싶어 하던 멋진 올드타이머들을 다시 전기차로 타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기차에 대한 관심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우리가 타고 있는 엔진 자동차들 중 많은 모델이 전기차 시대에 맞게 다듬어지고 이어지는 것은 경제적, 문화적 이유에서 볼 때 나쁘지 않은 선택이 아닌가 합니다.

ID.GTI 콘셉트 실내 / 사진=VW

 

그렇기 때문에 제조사들도 이젠 함부로 단종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차가 어떻게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역할을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수명이 다한 듯해도 전기차 시대엔 그에 맞게 새로운 역할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익숙한 것을 유지하는 것에서 얻게 되는 이익과 새로운 것을 원하는 시대적 소비 욕구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시장에서 활약할지는 제조사들이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아우디

 

완전히 새로운 전기차를 바라는 고객도 있고, 또 익숙한 모델을 전기차로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고객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다양한 요구를 잘 이해하고 이에 맞게 대응할 줄 아는 제조사가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승자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어쨌든 땅땅땅! 단종 판정 받은 모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반갑습니다. 부디 잘 준비해서 실망보단 기대에 부응하는 그런 전기차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