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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현대자동차가 유럽에서 전기차를 밀어붙이는 이유

요즘 유럽, 좀 더 구체적으로는 독일을 중심으로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시장 공략에 공을 바짝 들이고 있습니다. 한국이 아닌 해외공장으로는 처음으로 현대차 체코 공장에서 배터리 전기차가 생산돼 고객에게 인도됐으며, 독일에서는 7월부터 월 99유로부터 시작되는 전기차 리스 사업이 시동을 걸었습니다.

또한 독일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늘리기로 결정한 것에 따라 코나 EV의 경우 최대 11,000유로(정부 6천 유로, 현대차 5천 유로 부담)의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한화로 약 1,500만 원이 되겠네요. 그리고 이미 코나와 니로 전기차의 경우 무상 보증 기간도 내연기관 모델보다 좋은(5년 주행거리 무제한) 조건 (8년 주행거리 무제한)으로 해놓았습니다. (참고로 한국은 배터리와 전기 관련 부품에 한해 10 20km)

7월부터 독일에선 현대 전기차를 저렴하게 빌려탈 수 있게 됐다 / 사진=현대자동차

그리고 최근엔 세계 최초로 개발된 수소전기 트럭 엑시언트 10대가 현대자동차그룹과 스위스 수소 기업이 함께 만든 합작 법인으로 수출되기도 했는데요. 수소전기차에 호의적인 독일에서 현대 수소전기 SUV 넥쏘에 대한 언론 평가도 나쁘지 않습니다. 실제로 소량이지만 독일 경찰차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배터리전기차와 수소전기차 가릴 것 없이 현대자동차가 유럽에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빠르게 성장 중인 유럽 전기차 시장

경쟁 브랜드 대비 시장 선점한 효과 이어가야

전기차 시장을 주도했던 미국과 중국 등이 코로나바이러스 등의 영향으로 주춤하는 동안 유럽은 2020년 시작과 함께 전기차 시장에서 앞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현대와 기아는 이런 유럽에서 몇 년 전부터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중입니다. 카세일즈베이스닷컴이 밝힌 2020 1분기 유럽 전기차 판매량 순위를 보면 현대의 코나EV와 기아 니로EV 그리고 현대 아이오닉 전기차 등이 각각 6,077, 4,366, 2,662대를 팔아 7, 8, 1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소전기차 넥쏘도 같은 기간 107대를 팔았죠.

코나 EV / 사진=현대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강력한 규제로 유럽에서 장사하는 완성차 업체들은 친환경 자동차 판매를 무조건 늘려야 합니다. 다양한 전기차가 최근 빠르게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침 전기차 관련 인프라 구축도 빠르게 진행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높은 유럽에서 전기차는 이제 가장 핫한 자동차가 되었습니다.

이런 유럽에 현대와 기아는 비교적 경쟁력 있는 배터리 전기차들을 내놓았습니다. 2016년부터 아이오닉 3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을 통해 유럽 전기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고, 2018년 최초의 소형 SUV 전기차 코나 EV와 니로 EV를 내놓으며 좋은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여기에 2013년 세계 최초 양산형 iX 35 수소전기차를 유럽에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넥쏘와 역시 세계 최초인 수소전기 트럭 엑시언트까지 소개하며 짧은 기간 배터리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모두를 양산 판매하는 자동차 회사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경쟁자들이 빠르게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초 수소전기 트럭 엑시언트 / 사진=현대자동차

푸조가 만든 소형 전기 해치백 e-208만 해도 등장과 함께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1분기 판매량에서 이미 현대 코나 EV를 따돌렸죠. 거기에 코나와 니로 전기차의 직접 경쟁 상대인 e-2008이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판매량 기준으로 유럽에서 넘사벽 수준인 테슬라 모델 3와 르노 Zoe가 버티고 있으며, 테슬라는 모델 Y를 통해 다시 한번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폭스바겐 전기차 ID.3도 본격 판매 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풍부한 기본 사양에 따른 가격 경쟁력, 또 우수한 1회 충전 후 주행 거리 등의 경쟁력만으로는 커지는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의 경쟁을 감당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따라서 여러 이벤트와 혜택을 통해 소비자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렇게 전기차 시장에서 얻은 성과를 이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또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통해 나올 새로운 전기차가 유럽에 도착하기 전까지 쌓아 놓은 좋은 전기차 이미지를 어떻게든 유지해야 합니다.


전기차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 개선

위에좋은 전기차 이미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현재 현대나 기아 등,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유럽 현지 시선은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 경쟁력은 다양한 매체 비교 실험을 통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게 증명되었고, 최근에는 독일 전문 매체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가 실시한 테스트에서 수소전기차 넥쏘가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특히 유럽 언론의 수소전기차 관심은 iX 35 등장 때부터 높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토요타가 내놓은 수소전기차 미라이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말았죠. 토요타가 미라이 마케팅에 많은 힘을 썼던 까닭입니다. 세계 최초 양산형 수소전기차를 시장에 내놓고도 현대차는 이슈를 유럽에서 토요타에 내줬고, 그 덕(?)에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와 수소전기차 등으로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를 더 강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느낌입니다. 제가 있는 독일만 해도 넥쏘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전반적으로 호의적입니다. 독일이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걸 고려해도 넥쏘에 대한 평가는 무척 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또한 회사 차원에서 수소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과거처럼 수동적인 대응이 아닌, 훨씬 적극적으로 수소전기차 홍보에 나서고 있다는 것도 유럽에서 넥쏘의 전망을 밝게 합니다. 

넥쏘 / 사진=현대자동차

이렇게 배터리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두 분야의 적극적 행보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은 유럽에서 과거 값싸고 고장 많은, 그렇고 그런 자동차를 팔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친환경 기술력을 가진 환경친화적 자동차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바꾸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한번 박힌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유럽에서 전기차는 현대차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됩니다.


내연기관 브랜드로서의 한계

제네시스 브랜드 성공 불확실성

끝으로 현대나 기아가 유럽에서 전기차에 더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산 자동차는 유럽 시장에서 작은 차, 가격 경쟁력이 좋고 보증 기간 긴 그런 경제성에 초점을 맞춰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수십 년 경쟁하며 점유율을 높여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엔진 자동차로는 이익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현대차가 야심 차게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있지 않냐고 묻는 분도 계실 겁니다. 보수적이며, 브랜드 전통을 중시하며, 그리고 기술혁신에 관심이 높은 유럽 시장에서 제네시스는 고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럽 진출 선언은 했으나 매우 조심스럽게 유럽 시장에 접근하려는 것도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죠. 많은 투자와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데, 과연 제네시스 브랜드로 그런 과정을 견디고 이겨내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니로 EV / 사진=기아

따라서 조금씩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고, 길게는 30년 정도 후에는 사라질 엔진 자동차에 무리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전기이동성을 대비한 투자와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은 누구보다 현대자동차 그들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이렇습니다. 현대와 기아가 요즘 유럽에서 전기차 홍보와 판매에 부쩍 힘을 쓰고 있습니다.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획득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 값싼 양산 브랜드라는 오래된 인식을 깨고 친환경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마지막으로 엔진 자동차 시장에서 겪는 성장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지금부터 대비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쨌든 배터리전기차와 수소전기차를 모두 손에 쥐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친환경 유럽 자동차 시장 도전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고 봐야 할 겁니다.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낼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