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관련한 TV 프로그램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뭐 대부분은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제작돼 수십 년째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는 탑기어를 떠올리셨을 겁니다.
자동차 좋아하는 분들에겐 두 말이 필요 없는 그런 자동차 관련 프로그램인데요.
자국 자동차 기업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며 외국으로 팔려 가 영국인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탑기어가 있어서 그나마 자존심이 유지됐다 할 정도로 현존하는 최고 방송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곳 독일은 어떨까요? 탑기어 같은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없지만 채널별로 굉장히 다양한 자동차 프로그램이
방송이 되고 있는데요. 레이싱 경기를 공영방송이나 대표적인 오락채널에서 중계를 해주기도 하고
튜닝이나 자동차에 대한 갖가지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여러 채널을 통해 시청자와 만나고 있습니다.
독일 제 1 공영방송 ARD 홈페이지에서 레이싱 대회 방영과 관련해 안내하고 있네요. 사진=ARD 홈페이지 캡쳐
아벤토이어 아우토 (자동차 탐험)라는 TV 방송을 안내하고 있는 홈페이지 모습.
자동차 문화를 주도한 미국이야 말 할 것도 없죠. 각양각색의 자동차 관련한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린 어떤가요? 종편과 케이블 채널 일부가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방송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공중파(KBS,MBC,SBS)에서는 자동차 전문 프로그램을
볼 수가 없습니다.기억을 더듬어 봐도 제대로 된 전문 프로그램이 있었는지 떠오르는 거 하나 없을 정도인데요.
왜 공중파는 이처럼 자동차라는 소재를 왜면하는 걸까요?
방송 환경과 시청률
요즘 우리나라 방송법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현재 TV에서는
쇼핑채널이 아닌 이상 특정 제품을 직접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 관련한 프로그램이 현실적으로 나오기 쉽지 않겠죠. 지금 방송되고 있는 자동차 프로들에서도
A사니 H사, B사, 이런 식으로 로고를 가리고 이니셜로 처리를 하고 있는데요. 이게 참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어색한 이유 외에 생각해 볼 만한 것은 역시 시청률이 담보되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분석을 방송국에서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광고를 붙여야 하는데, 과연 어떤 포멧으로 어떻게 해야
만족할 만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답을 못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자동차는 많지만 그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직도
대중적이지 못한 '일부 마니아층만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을 수 있다는 건데요.
예전 방송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 나왔던 이야기로, 한마디로 폭넓은 시장성이
없다는 겁니다.
양심냉장고에 대한 기억
여기서 잠시 옛날 프로그램 이야기 하나 해보죠.
1990년대 후반기였나요? MBC 일요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 한 꼭지로
개그맨 이경규 씨와 김영희 PD가 만든 준공익적인 프로그램 '이경규가 간다-양심냉장고' 편이 방송됐었습니다.
운전자들이 신호를 얼마나 제대로 지키는지 몰래 관찰해 제대로 법을 지킨 운전자에게
냉장고를 선물했던 방송이었는데요. 아직도 기억하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그 당시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만약 이런 프로그램이 지금 방송됐더라면 그 충격파는 더 넓고 크게 이슈가 돼 퍼져나갔을 겁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소소한 부작용들이 나타났고,
결국 해당 꼭지는 없어지고 말았지만 도로 풍경을 바꿔 놓을 정도로 영향력 하나만큼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폐지됐지만 소방관들의 일상을 담은 심장이 뛴다라는
SBS의 프로그램도 있었죠. 특히 응급차량 길 터주기와 관련해서는 큰 화제가 됐는데요.
이렇듯 이슈화에 성공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낮은 시청률로 인해 폐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화제, 이슈화라는 것 또한 자동차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도로 교통, 운전 문화 등에 대한
내용들이 주로 만들어내는 것들이었죠.
정보와 공익성 잘 섞으면 충분히 가능
이렇듯 자동차와 관련한, 혹은 도로 교통과 관련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 현재 공중파엔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죠.
독일 고급 메이커의 최고급 세단들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많이 팔려나가는 그런 나라입니다.
미국이나 EU, 호주 등과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내세우는 산업이 자동차일 정도로
경제적으로 자동차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교통사고와 관련해서도 결코 소홀할 수 없는
그런 환경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세계 10대 사망 원인 중 유일하게 질병이 원인이 아닌 것이 바로 교통사고죠.
또 우리나라에서 매년 5천 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죽고 있습니다. 경찰, 보험회사 등의 자료를 종합해 보면
1년에 110만 건이 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나라이기도 하죠. 부상자만 작년 한 해 33만명 가까이 됐을 정도니까
자동차는 매우 커다란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이기도 한 셈입니다. 이걸 지상파가 외면해야 되겠습니까?
특히 2000만대의 자동차가 굴러다닐 정도로 자동차가 일상화 되었음에도 문화적인 관점에서
자동차를 바라보려는 분위기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자동차를 이야기하고
챙겨주는, 아버지가 그랬듯 우리의 아이들도 자동차를 통해 꿈을 키울 수 있는,
정말 자동차는 그 자체로 경제성과 사회적 문제, 거기에 문화와 기술이라는 다양한 영역과 가능성이
뒤섞여 있는 놀라운 소재인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자동차이기에,
BBC 탑기어가 보여주는 개성과 기상천외한 이벤트에 우리의 교통문화의 문제점을 짚어가는
양심냉장고 스타일의 공익성을 잘 믹스한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프로그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획력과 충분한 인프라가 갖춰진 공중파에서 하려고만 한다면,
충분히 자동차를 가지고 재미와 계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여기에 더해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위해 시즌제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 원한다면 제가 생각하고 있는 구체적 아이템들을 제공해 드릴 의사도 있습니다.
국가의 교통 시스템 마련이 미흡하다면, 운전과 안전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
방송이라도 나서서 이야기해줍시다. 그것도 재밌게 말이죠.
무관심과 덕후스러움, 그 사이
저는 자동차가 일부 매니아들만의 관심품목으로만 남는 것도 싫고, 사회에 끼치는 파장에 비해 소홀하게
다뤄지는 상황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무관심, 혹은 덕후스러움(마니아적)이라는 극단성이
좋은 자동차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적인 것으로 커져 나가길 바랍니다.
멋진 자동차 버라이어티 쇼 하나가 잘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빨리 들을 수 있었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의 자동차, 아니 우리의 자동차는 정말 할 얘기 많고 이야기 '꺼리'가 차고 넘치는
녀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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