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질문 들어갑니다. 우리나라 경차 중 4인승 모델은 있다, 없다? 네, 없습니다. 모두 5인승이죠. 대한민국 최초 경차인 티코 때부터 이미 5인승이었으니까요. 당시 티코의 전장, 그러니까 차의 길이는 3,340mm, 차의 너비를 나타내는 전폭은 1,400mm, 전고는 1,395mm였습니다. 배기량은 800cc로, 현재 우리나라의 경차의 기준인 배기량 1,000cc이하, 길이 3.6m이하, 너비 1.6m이하, 높이 2.0m이하 보다도 훨씬 작고, 차체의 크기만으로만 봐도 현재 일본의 경차 수준에 맞는 정도로 아주아주아주아주 작은 차였습니다. 그런데 5인승이었어요!! (걸리버 여행기도 아니고)
이 작은 차에 5명을 태울 수 있도록 법으로 허용을 했다는 사실은 사실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국민차 보급과 경제 활성화라는 구호 아래에 조용히 묻히고 말았습니다. 2008년 정부는 기아가 내놓는 모닝을 위해 경차의 기준 중 배기량과 너비의 기준을 기존 보다 완화시켜주는데요. 800cc는 1,000cc이하로, 너비 1.5이하는 너비 1.6m이하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대우 티코, 그리고 후속 모델 마티즈,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마티즈에서 다시 쉐보레 스파크로 바뀌는 역사를 이어왔고, 기아 모닝과 함께 우리나라 경차 시장을 양분했습니다. 여기에 기아가 다시 박스카 레이를 내놓으며 총 3가지 모델이 경차 시장을 분할하게 되었는데요. 물론 레이 또한 5인승입니다.
그렇다면 유럽에서는 어떨까요? 소형차들의 천국이라는 유럽에서도 모닝과 스파크랑 경쟁하는 차들은 모두 5인승일까요? 일본 내에서만 소비되는 일본형 경차를 제외한 A세그먼트의 차량들 모두를 점검해봤더니, 한국산 모델들 외에는 어떤 차도 5인승은 없었습니다. 간단하게 몇 가지 짚어보며 확인해보도록 하죠.
푸조 108. 사진=netcarshow.com
푸조 108 뒷좌석. 사진=netcarshow.com
푸조의 경차 108과 뒷좌석 사진인데요. 2열 좌석수가 2개인 거 보이시죠?
폴크스바겐 업. 사진=netcarshow.com
업 뒷좌석=사진=netcarshow.com
아우토빌트 기본 제원표 캡쳐
폴크스바겐의 UP의 뒷좌석 사진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군요. 자동차 잡지에서 제공하는 자료에도 분명 4명이 탄다고 되어 있습니다.
스즈키 알토. 사진=netcarshow.com
아우토빌트 기본 제원표 캡쳐
우리나라 경차의 시작 티코의 바탕이 되어준 모델인데 이 녀석도 4인승으로 되어 있네요. 눈씻고 찾아 봐도 한국 경차 제외하면 5인승은 없습니다. 심지어 상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오펠 아담과 미니도 4인승으로 되어 있습니다. (5도어는 5인승)
미니 사진=netcarshow.com
2도어 미니의 경우 4인승. 4도어 미니의 경우 5인승. 사진=netcarshow.com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차들은 내수, 수출용 할 것 없이 다 5인승인가? 네 수출용도 5인승입니다.
쉐보레 스파크. 사진=netcarshow.com
스파크 수출용 실내.사진=netcarshow.com
아우토빌트 기본 제원표 캡쳐
쉐보레 스파크도 5인승이고요...
기아 모닝 (수출명 피칸토) 사진=netcarshow.com
수출형 기아 모닝 뒷좌석. 사진=netcarshow.com
아우토빌트 기본 제원표 캡쳐
기아 모닝도 5인승으로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현대 i10. 사진=netcarshow.com
현대 i10 뒷좌석 모습. 사진=netcarshow.com
아우토빌트 기본 제원표 캡쳐
유럽 전용 모델인 현대의 경차 i10 조차 5인승으로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5인승일까요?
왜 5인승인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저는 갖고 있지 못합니다. 기아 관계자나 쉐보레 관계자가 답을 해주기까지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인데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줄 수 관계자가 있을지부터가 저는 의문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건 역시, 자동차는 4명이 아닌 5명이 타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 같은 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로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경차가 등장했을 때 4명이 타는 차라고 하는 것보다는 5명이 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무래도 판매에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지금 경차 기준에 봐도 턱없이 짧고 좁은 티코에 5명의 성인이 탄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죠. 그럼에도 5인승이라고 했던 것은 경차가 활성화 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을 한 것이 아니었나 싶은 거죠. 좋게 보면 실용성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리수였다고나 할까요? 그렇다면 5인승 경차는 뭐가 좋고 어떤 면이 단점이 될수 있을까요?
5인승 경차의 장점
장점이라고 한다면 딱 하납니다. 그냥 한 명 더 태울 수 있다는 것! 법적으로 5명이 타도 괜찮다는 건데, 과연 이것이 장점인지는 단점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될 겁니다.
5인승 경차의 단점
작은 배기량의 엔진 (60~90마력 이하)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5명을 태우고 달리기엔 힘 부족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언덕 같은 곳을 올라간다고 생각해보시죠. 당연히 공간은 비좁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울 때는 그래도 덜하겠지만 성인 3명이 경차에 탄다? 거기다 이랬을 경우 안전성에도 4인승 보다 상대적으로 위험하게 될 뿐이죠. 특히나 유럽이나 일본의 A세그먼트 경쟁자들 보다 차폭이 더 좁은 우리나라 경차들을 생각하면 과연 이게 맞는 구성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죠.
5인승이 위험한 이유
수출용에 있고 내수용엔 없는 것
제가 5인승이 상대적으로 더 위험하다고 위에 언급을 했는데요. 5명 가득 탔다고 가정했을 때 커브길 주행의 안정감이 떨어지는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충돌이나 추돌 시 뒷열 중앙석의 보호 장치가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그렇지 못한 경차가 있다는 거죠.
기아 레이 카탈로그 캡쳐
위에 이미지는 레이 카탈로그에 나와 있는 건데요. 붉은색 원으로 표시된 것이 뒷열 가운데 좌석의 머리보호대(헤드레스트)입니다. 레이의 경우 머리보호대와 3점식 안전벨트로 구성돼 있죠. 먼저 보여드린 수출용 스파크, 모닝, 그리고 현지 모델인 현대 i10 모두 머리보호대와 3점식 안전벨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쉐보레 스파크의 경우 내수용에는 3점식 안전벨트이지만 가운데 좌석에 머리 보호대가 없습니다. 공식 카탈로그 다운받아 봐도 스파크 내수용 이미지에 뒷좌석 모습은 안 나타나 있죠. 스파크 타고 계신 분들에게 뒷중앙좌석 머리 보호대 있냐고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오너들 중에도 이 부분을 간과하고 계신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네요. 왜 안전을 그토록 강조하는 쉐보레가 수출용엔 넣어 준 머리 보호대를 내수용에선 뺐는지 알 수가 없군요.
반대로 기아 모닝의 경우는 내수용도 3점식 안전벨트에 헤드레스트가 장착돼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것도 최근에 일이에요. 아마도 2012년 레이 나오면서 적용된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만, 기아 올 뉴 모닝 초기 모델들 보면 역시 머리 보호대가 없습니다. 심지어 안전벨트도 2점식었을 거예요. 올 뉴 모닝 이전 모델은 당연히(?) 머리 보호대 없고 2점식 안전벨트였습니다.
어쨌든 기아는 비록 최근이긴 하지만 머리 보호대와 3점식 안전벨트를 갖췄으니 다행이긴 한데요. 지난번 스타렉스와 같은 승합차 포스팅 때도 이야기를 했었지만, 차의 구조에 비해 사람을 많이 태우는, 한국에만 있는 그런 이상한 차량들에게서 공통되게 나타느는 문제가 바로 이런 안전 미흡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또 충돌시 경차 뒷중앙석은 1열 쪽으로 투이겨 나갈 위험까지 갖고 있어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포드 Ka 뒷좌석 모습. 사진=netcarshow.com
토요타 경차 아이고 뒷좌석. 사진=netcarshow.com
포드 경차 Ka와 토요타 경차 아이고의 뒷좌석 모습입니다. 이처럼 2인승으로 해서 안전성과 쾌적함을 모두 보장해주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억지로 3명을 태우는 것 보다 낫다고 보여지네요. 더더군다나 안전장치도 다 보완이 안된 상태라면 말이죠.
경차 논란, 그 차폭이 뭐라고
정부와 수입사 모두 계산 중?
"난 그래도 없는 것보다 한 좌석이라도 있는 게 나아요!" 라고 박박 우기실 분이 계시다면, 네 하는 수 없죠. 그렇다면 5명을 태울 수도 있고 (저는 무조건 반대 입장입니다만), 지금 보다 더 안전하고 편안한 경차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것. 찾아 보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경차 폭 기준을 넓혀주세요~"
현재 우리나라의 경차 너비는 1.6미터 이하로 되어 있죠. 그런데 일본 차나 유럽 차는 최소 1센티미터에서 7센티미터까지 이 기준을 초과합니다. 2~4센티미터 초과가 보통이랄 수 있는데 이 기준으로 인해 경차가 되지 못하고, 경차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녀석들이 꽤 많다는 거죠. 심지어 위에 보여드린 현대의 신형 i10은 전폭이 1660mm로, 6센티미터나 우리 기준 보다 더 넓습니다. 한국 브랜드인데 유럽에서만 팔기 때문에 차폭의 부담을 떨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한 모델, 스즈키 알토만이 우리나라 경차 규격을 충족시킬 뿐인데요.
바로 이 경차 폭의 기준을 완화함으로써 주행 안전성과 탑승자 안정성 모두를 더 확보할 수 있고 당연히 안락함도 지금보다 더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소비자들에겐 다양한 경차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되게 되며, (폭만 해결되면 나머지 배기량이나 전장은 이미 모두 규정을 만족시키는 상태) 또 큰 차를 사려던 소비자가 경차를 선택하게 됨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도 줄어들 수 있으니 환경적인 면에서도 더 좋겠죠. 이미 2008년에도 기아 모닝을 위해 차폭을 넓혀준 선례도 있기 때문에 못 할 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저하는 걸까요?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겠죠. 하나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경차 시장에서 누리는 지위가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 산업이 우리나라 경제의 하나의 커다란 바로미터고 주춧돌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상황에서, 쉽사리 빗장을 풀어주기는 쉽지 않은 것이죠. 또 하나는 세수 문제 등인데요. 경차는 취득세 등록세가 면제되게 되죠. 다른 차 대신 경차 선택이 늘어나면 세금 줄어들게 됩니다. 고속도로 통행료 등도 할인되고 주차장 이용 요금도 할인해줘야 합니다. 이래저래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안 그래도 세금 어떻게 해서든 짜내 듯 더 거둬가는 상황에서 과연 정부가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경차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외국 메이커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합니다~"라고 환한 미소와 함께 선언을 하겠냐는 겁니다. 하지만 FTA로 인해서 수입차 회사들이 만약 이 부분을 따지고 들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역 분쟁이 되는 거겠죠. 그런데 아직 그런 분위기가 드러나지 않는 걸 보면, 경차 자체가 큰 수익도 안 나고 또 A/S 등도 골치가 아플 테니 그들 또한 소극적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차를 만들고, 구입하고, 규제하는
페러다임이 이젠 바뀌어야 한다
시트로엥 경차 C1.사진=netcarshow.com
잘 생각해보세요. 일본 메이커나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바보라서 경차를 4인승으로 했을까요? 그게 합리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저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우리의 패러다임이 이젠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잘못된 경제 논리에만 묶여 있는 시대에서 이제 벗어나 보다 안전하고 즐거운 운전이 가능한 그런 자동차를 선택하는, 안전의 시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저는 5인승 경차가 아닌 4인승 경차가 되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5인승을 유지해야만 한다면, 차 폭을 넓혀 안전성을 확보하고, 건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입 경차 시장의 문을 이제는 열어주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많이 태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제는 얼마나 안전하고 쾌적한 자동차가 될 것인지를 제조사가 고민을 했으면 싶습니다.
소비자들도 이런 관점을 차량 선택의 기준에 두고 차를 소비하면 좋겠고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보기 사납게 떠밀리듯 하지 말고, 빨리 경차의 차폭 기준을 넓히고 안전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결론내려주길 바랍니다. 안전한 세상은 이런 것을 하나 하나를 바꿔가려는 의지를 통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너무 당연한 얘기가 왜 새롭게 들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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