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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한국판 아우토슈타트, 20조짜리 짝퉁 안되려면


삼성동 한전부지 쟁탈전에서 현대차가 삼성을 제치고 주인이 되었습니다. 자그마치 10조 5천 5백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내고 땅의 주인이 된 것인데요. 서울시에 추가로 내야할 금액, 세금, 거기다 부지 매입비 외 본격적인 개발비용까지 계산하면 총 20조의 금액이 소요가 될 것이라는 언론의 전망도 있었습니다.


말도 안되게 비싼 금액이라며, 현대가 삼성의 플레이에 당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실제로 매입 결정 후 현대차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재무 구조에 대한 염려가 있었지만 현대차는 그 정도 비용은 감당할 수준이 된다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30개 그룹 계열사를 모두 이 곳에 모아 글로벌 기지로 삼겠다는 것이 현대차의 목표인데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저 많은 금액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기 위해 결국 차 가격 인상이 뻔한 것 아니겠냐는 불만섞인 목소리가 쏟아지기도 했던 하루였습니다.


현대차는 이 곳에 본사와 계열사 20,000여 명의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건물을 짓고, 또 고급 호텔과 백화점, 그리고 한국판 아우토슈타트 같은 자동차 테마파크도 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언론들이 일제히 제목으로 뽑아 든 단어가 바로 '한국판 아우토슈타트'였는데요. 그 바람에 아우토슈타트가 뜬금없이 양대 포털에서 검색어 순위에 올랐었고, 아우토슈타트가 어떤 곳인지를 소개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저도 지난 연말께 포스팅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검색을 통한 블로그로의 유입자들도 꽤 많았었는데요. 



저는 현대차의 이번 선택에 대해 전반적인 의견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라는 것이 과연 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그런 자동차 테마파크가 되기 위해 어떤 부분을 고민해야 할지 등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현대가 계획하는 아우토슈타트가 독일처럼 되기 어려운 이유부터 이야기해보죠. 




독일식 아우토슈타트가 되기 어려운 이유


아우토슈타트 야경. 사진=autostadt-messenundpraesentationen.de



1. 목적이 다르다

아우토슈타트(Autostadt)는 지금 폴크스바겐 그룹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페르디난트 피에히에 의해 2000년 완공이 된 자동차 테마파크인데요. 볼프스부르크는 폴크스바겐 본사와 공장이 있는 작은 공업도시였습니다. 이 곳으로 출고된 자신의 차를 받으로 오는 고객들에게 뭔가 새로운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피에히 당시 회장은 테마파크 조성이라는 아이디어를 꺼내들었습니다. 


차를 받으러 오는 고객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했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애착을 갖게끔 하고 싶어 했죠. 그는 자서전에서  자기 차를 받으러 오는 고객들의 마음을 갓 태어난 아이를 첫 대면하는 부모의 심정처럼 묘사했습니다. 최고 경영자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이사회를 설득해 수천억 원을 이 곳에 투자할 수 있었죠.


지금은 폴크스바겐 고객 보다 다른 차를 타는 고객들의 방문이 훨씬 많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공원 내 있는 리츠 칼튼 호텔을 신차 인도받으러 온 고객들에겐 할인을 해주고, 공장 견학도 그들에게만 허락을 하는 등, 자신들의 브랜드를 선택한 고객에 대한 우선 정책은 여전히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삼성동에 짓겠다는 테마파크는 어떤가요? 일단 울산이나 아산 등, 현대차 공장이 있는 곳과는  무관한 공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신차를 이 곳까지 가져와 고객들에게 건넬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현실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결국은 원래 독일 아우토슈타트가 목적으로 한 출고차 인수에 대한 특별한 체험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아우토슈타트와 같을 순 없다는 전체가 깔린 채 출발하게 됩니다.



2. 규모가 다르다


자동차 박물관이 보이는 아우토슈타트 모습. 사진=스케치북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아우토슈타트와 현대차가 계획하는 한국판 아우토슈타트의 또 다른 큰 차이는 그 규모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현대차가 매입에 성공한 한전 부지는 8만㎡가 조금 안되는 규모라고 하는데요. 여기에 현대 기아와 그 계열사 임직원들이 사용할 본사 건물이 들어서고, 백화점이 들어서고, 호텔이 들어서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독일 아우토슈타트는 테마파크 그 자체 규모만 28만㎡ 수준입니다. 


3배 반 정도가 더 크죠. 물론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다고 해서 테마파크가 안 될 이유는 없습니다. 건물을 높이 올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지면이 아닌 건물의 여러 층을 사용하게 될 경우, 여유 있게 박물관과 브랜드관, 또 오프로드나 안전운전 체험장, 어린이 안전교육장 등의 야외 체험이 불가능합니다. 자연과 함께 안락하게 꾸며진 공간을 거니는 여유도 찾기 어려울 테고, 자칫 쇼룸에 머물거나 제한된 공간에서 답답하게 많은 사람들 사이를 이동해야 하는 그런 백화점식 공간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3.지역 발전과 무관하다 

볼프스부르크라는 도시는 폴크스바겐 공장이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기다 아우토슈타트를 찾는 관람객들이 이 곳에서 쓰는 비용 등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요. 저부터만 하더라도 지역 호텔에서 숙박하고, 시내 피자집에서 저녁을 먹고, 테마파크 맞은편 아울렛에서 물건을 샀습니다. 하지만 삼성동이란 곳이 어떤 데인가요? 서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강남의 상징적인 동네죠. 주변엔 대형 호텔들과 코엑스와 백화점, 거기다 엄청난 유동인구들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기름진 땅에 더 좋은 퇴비를 뿌리는 꼴이 되는 건 아닐까요?


사실 공장과 본사가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우리나라만의 생활 문화가 만든 결과물인데요.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돼 있고 서울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증 같은 게 기업들 머리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아우토슈타트처럼 만들려고 했다면 울산이나 아산 등지에 들어섰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겠냐는 것이죠. 한마디로 재벌식 공간이 서울 강남에 또 하나 들어서는 것이고, 그 곳을 빛내기(?) 위해 부가적으로 테마파크라는 이미지를 거느리려고 한 건 아닌가 묻게 됩니다.



4. 채울 수 있는 콘텐츠는 과연?


아우디의 역사와 부가티의 현재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그림만으로도 방문하고픈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사진=스케치북


아우토슈타트는 폴크스바겐 그룹 안에 있는 브랜드들이 모두 전시관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람보르기니, 아우디, 세아트 등 다 있어요. 차이트하우스라고 해서 수십 개 브랜드 수백여 종의 역사적 자동차들이 순환 전시돼 있는 박물관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치 차량의 절반 가까이는 자기네 브랜드로만 채우고 있습니다. 


또 야외 체험관 등에서는 SUV나 세단으로 오프로드 체험과 안전운전을 교육하고 있고 전기차를 시승할 수 있게끔 해놓았습니다. 아예 VW 차량의 각 종 기능을 현장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바로 익히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죠. 한전 부지는 그런 야외 활동을 하기엔 공간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테마공원으로서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박물관을 채울 만한 그들의 자산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 하는 점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한국 대표 자동차 테마파크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이유만 살펴 봐도 독일의 아우토슈타트를 완전히 가져오는 식의 테마파크 구성은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현대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자동차를 통한 의미 있는 소통의 창구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왕 만드는 거 부디 잘 돼 부끄럽지 않은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었음 싶은데요. 


사실 이런 계획은 몇 년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현대차가 뚝섬에 초고층 건물을 올리면서 그 곳에 박물관을 지으려고 했었던 거죠. 그런데 그게 여러가지 이유로 무산되고 이번에 삼성동 현대차 그룹 본사터에 박물관 이상의 공간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테마파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1 전통을 재밌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현대차의 연혁이 짧다고 해도 수십 년입니다. 물론 다양성이나 그간 나온 자동차의 양적 측면에서는 아우토슈타트를 꾸민 폴크스바겐 만큼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전통을 이야기할 수준은 된다고 봅니다. 솔직히 그 동안 현대차가 얼마나 앞만 보고 달려 왔습니까? 


자신들이 어떻게 성장되어 왔는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되물었던 적이 있던가요? 그리고 브랜드의 역사를 고객들과 제대로 소통해 왔었던가요? 역사를 알고 전통을 세우는 일에 소홀하지 않아야 좋은 자동차 브랜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걸 독일 아우토슈타트는 나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꾸밀 수 있는 콘텐츠의 다양성은 부족하더라도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현대차의 테마파크가 아우토슈타트 보다 더 재밌는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를 생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쏘나타가 출시되었을 때 쏘나타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설명했던 방식도 좋고, 버츄얼 방식 등, 첨단을 이용해서 역사를 되세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역사를 관람객들에게 멋지게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테마파크는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2. 모든 것을 자동차와 연결지어 생각해야

현재 양재동에 있는 현대 기아차 쌍둥이 사옥을 보세요. 정말 개성없습니다. 건물이 그 기업의 색깔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사옥 및 테마파크는 자동차를 떠올릴 수 있고, 현대 기아차 그룹임을 알 수 있는 이미지와 상징물 등이 부여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가 봐도 이 곳이 대한민국 자동차의 본거지구나 할 정도의 일관되고 개성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야 한다는 것이죠. 


백화점도 마찬가지고 호텔도 그렇게 되었으면 어떨까 합니다. 자동차를 테마로 꾸민 특급호텔, 괜찮지 않나요? 휴지통 하나부터 직원들의 유니폼과 화장실까지도 자동차를 떠올릴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자동차만을 떠올리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진정한 테마파크로서의 역할이 가능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온전히 자동차와 관련한 이미지를 부여한다면 아우토슈타트 보다 더 밀도 높은 임팩트를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3. 미래관부터 튜닝관까지


한 건물 안에 레스토랑, 어린이 운전실내 교육장, 놀이터, 미래관, 자동차에 대한 기술 체험관 등이 어우러져 있다. 사진=스케치북


아우토슈타트에 갔을 때 한 가지 아쉽게 생각했던 것이, 자신들의 레이스 역사를 보여주거나 튜닝과 관련된 공간 등이 별도로 없다는 점이었는데요. 이런 부분을 잘 생각하고 현대의 테마파크는 옅기는 하지만 레이스의 역사나 튜닝관 등을 만들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면 어떨까 싶네요. WRC 독일 레이스의 우승 등은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또 자동차가 제작되는 과정을 미니어처로 보여준다거나, 유명한 레이서나 디자이너 등과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획도 있었음 하는 바람입니다. 


거기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미래의 고객인 아이들이 즐겁게 노닐 수 있는 그런 가족들을 위한 공간,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야 합니다. 아이들이 테마파크에서 얻은 경험은 평생 이어지겠죠. 결국 브랜드에 대한 친밀도 혹은 충성도를 높여줄 것입니다.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지도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자동차를 친근하게 여길 수 있도록 몸이 반응하는 그런 공간으로 꾸며지길 바랍니다.




▶서둘지 말고 창조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주길


개인적으로는 현대차가 그냥 자신들만의 자동차 테마파크를 만들 예정이라고 해도 될 걸 괜히 아우토슈타트라는 이름을 꺼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현대차가 꾸밀 테마파크는 아우토슈타트와 계속해서 비교될 수밖에 없게 될 테니까요. 물론 더 잘만들면 해결될 문제겠지만 만약 뻔~한 수준의 테마파크가 되어버린다면, 두고두고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는 놀림감이 될 겁니다.


그만큼 책임감과 열정, 그리고 창조적인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정말 제대로 만들어줬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찾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브랜드를 자랑스러워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어야 하고, 고객들과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소통하는 곳이라는 점도 느껴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녹아 들어가지 않으면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는 한낱 생생내기용 공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20조짜리 거대 왕국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걱정되는 부분도 있고, 비판하고픈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을 한다고 하니 부디 제대로 된 길을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우선 그 마음만 전합니다. 그리고 현대차가 잘 했다고 평가받는 일은 테마파크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를 통해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