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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어느 88만원 세대가 자동차 블로거에게 보낸 글


지난 주말, 어느 20대 네티즌이 보내온 글 하나가 내내 제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준비했던 포스팅을 잠시 미룬 채, 오늘 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됐네요. 우선 어떤 내용이었는지 소개하도록 할 텐데 문장은 제가 읽기 편하시라 좀 정리를 해봤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흔히 얘기하는 88만원 세대입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좋은 대학도 아니고 학과도 인기 있는 그런 곳도 아닌지라 취업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백수라는 말이 듣기 싫어 틈내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냥 용돈벌이 정도 수준이구요. 구인난 있다는 중소기업문도 열심히 두드리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자동차를 워낙 좋아해서 여러 블로그에서 자동차 관련 소식을 접하는 편인데, 이 곳도 작년부터 관심을 갖고 보고 있습니다. 뭐 한가하게 이런 곳이나 기웃거린다 뭐라고 하진 말아주세요. ^^;; 

 사실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부가티 사진 보고 우와~거리고, BMW M5 같은 거 타는 상상도 하면서 마력이 어떻네 토크가 어떻네 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전문가소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솔직히 멋진 신차 소식에도, 고성능 모델들이 눈앞을 지나가도 더 이상 환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현실은 취직을, 이왕이면 정규직으로 취직해(안되면 비정규직도 상관없습니다.) 단돈 얼마라도 내 손으로 벌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래도 차는 좋아하는지라 이곳저곳 자동차 블로그를 가끔씩 들어가 보는데 요즘은 조금씩 이질감이 느껴지더군요. 제 신세가 그래서 그렇겠지만, '왜 자동차블로거들은 모두 화려하고 좋은 차 얘기만 하기 바쁠까? ' '아무리 비머가 어쩌네, 아우디가 어쩌네 해도 결국 나하고는 무관한 얘기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점점 소외감도 생기게 됐습니다. 누가 이번에 무슨 차로 바꿨다거나, 역시 좋은 차는 다르다는 그런 댓글들 보고 있으면 점점 위축되는 거 있죠? 저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세상 얘기 같아서 은근히 화딱지도 나고 그럽니다. 그래도 이 곳은 뭐랄까요? 주인장님이 나이가 있으셔서(?) 그런지 좀 다른 얘기들도 폭넓게 해주시는 편이지만 역시 독일에 사는 분이라 독일차 중심으로 얘기할 땐, '아 ...너무 먼 얘기네..' 이러고선 그냥 조용히 블로그를 나오곤 합니다.

솔직히 신차 소개하고 시승기 올리고, 문제점은 없는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하는 게 자동차블로그의 일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저같이 없는 사람들도 친구집처럼 편하게 다니는 그런 자동차블로그도 있었으면 합니다. 가끔 희망도 얻고 위로도 받고 뭐 그런 거요. 물론 저 같은 사람들이 많지도 않죠. 그런 사람들 위한다고 했다간 우울한 블로그로 별로 유명세도 못 탈 겁니다. ^^;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좋은 정보 주시는 분한테 괜한 소리 한 거 같아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해해주실 거 같아 이렇게 글을 남기니 너무 미워하진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


생각해 보면 저 분의 얘기가 틀린 말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BMW, 아우디, 벤츠, VW, 포르쉐 이런 차들과 관련한 얘기로 이 공간을 꾸미고는 있지만 사실 우리의 현실에선 여전히 이런 차들은 비싸고 화려하며, 서민들의 입장에선 부담스런 것들입니다. 비정규직이 수백만에 달하고, 가계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오르는 전셋값에 전전긍긍하는 많은 이들에겐 어쩌면 그림의 떡일 수 있는 것이죠. 

자동차를 문화적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싶네 떠들면서도 정작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과 서민들의 척박한 삶을 보듬거나 함께 힘내자는 응원의 글을 쓰지 않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비판받을 수 있다 전 생각합니다. "자동차블로그가 자동차 얘기에 충실하면 되는 겁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이죠. 괜히 오지랖 넓은 사람처럼 이도저도 아닌 블로거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모든 자동차블로그가 다 그렇게 자동차 얘기만 할  필요는 없다 생각됩니다. 제게 글을 보내주신 88만원 세대를 위한, 또는 비정규직을 위한, 또는 현실은 비록 고단해도 언젠간 멋진 차를 타고 달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많은 이웃들을 위해 가끔, 아주 가끔씩은 오지랖 넓게 이 소리 저 소리 나눌 수 있는 그런 자동차 블로그도 괜찮지 않겠어요? 멋진 잡지처럼 화려하게 꾸미고도 싶고, 발빠른 정보력으로 많은 자동차팬들의 목마름을 해갈시키고도 싶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의 다양성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도 물론 싶습니다. 하지만,

단 돈 만원에도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걸 하는 자동차블로거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그런 관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놓고 고민하겠습니다. 자동차블로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외감 느끼지 않고 편안히 많은 분들이 드나들 수 있는 블로그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말이죠. 한 20대 젊은이의 솔직하고 절절한 글을 읽고서 저는 놓치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중입니다. 이 곳을 찾는 여러분들도 함께 고민해주시고, 또 이처럼 힘들어하는 청춘들을 위해, 혹은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친구와 이웃을 위해 함께 화이팅 외쳐주십시오.

월요일, 편하게 글을 읽고 싶어 들어오셨던 분들껜 너무 무거운 얘기를 드린 거 같아 죄송할 뿐입니다. 그래도 제게 글을 주신 20대 중후반의 청춘께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드리며 끝맺겠습니다. 

" 힘들어도 희망만은 잃지 맙시다. 설령 큰 위로가 못 되어도 너무 탓하지 말아 주시고, 어금니 꾸욱 깨물고 찬란한 미래를 위해 오늘도 함께 열심히 달려갑시다. 당신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젊음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