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전쯤이 되는군요. 한미 FTA 재협상으로 몇 가지 변화가 있었죠. 그 중에서 굉장히 크게 다뤄졌던 내용 중 하나가 자동차 관세철폐에 따른 재협상 결과가 우리 쪽에 안 좋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론들은 걱정어린 기사를 집중적으로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업계 관계자들은 그닥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죠. 실제 저 역시 내용을 들여다 보고는 " 자동차는 별 문제 없습니다. 그 보다는 다른 부분들이 걱정이네요." 라는 취지로 포스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작년 12월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결국은 국회에서 기습적으로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최루가스까지 등장하는 등 필사적이었지만 다수여당에 의해 법적인 인정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언론들이 내놓는 기사들을 보니 장밋빛 전망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기사는 미국산 체리와 삼겹살을 싸게 먹고, 미국 미니시리즈를 동시에 한국에서도 즐길 수 있을 것이란 얘기를 했더군요. 기사 보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런 언론들이 밝힌 긍정적인 측면 중에는 섬유와 IT, 그리고 자동차가 가장 큰 혜택을 얻을 것이란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동차 부품업체들 역시 이익을 얻을 것이라 얘기되었는데요. 저는 이런 전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과연 한미FTA를 통해 자동차메이커(현대차그룹)가 얼마나 큰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정말 국가경제 혹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그런 긍정적인 측면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역이 우리나라 GDP의 90%를 차지하는 나라 입장에서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경제동맹을 맺었다는 점에서 한미FTA 체결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이 안보에까지 긍정적으로 작용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죠. 더 크게 보면 미국과의 교역 확대를 통해 우리나라의 경제시스템이 선진화 되고 국가의 거시적 경쟁력이 확보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언론에서조차 자랑하는 제조업과 IT를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분야들은 결국 그만큼 미국과의 자유로운 경쟁에서 이득을 얻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문제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제약 부분이죠. 싼 복제약을 그동안 써왔다면 이제부터는 특허권을 갖고 있는 미국제약 업체들의 비싼 약들을 쓰거나 아주 비싸진 복제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의료 민영화도 빨라질 듯 보여 양질의 의료혜택은 돈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연금보험, 우체국업무, 철도나 공항의 민영화, 미국교육시장의 침투, 거기에 농수산물 시장의 융단폭격 등. 또 생각만 해도 오싹한 수도,전기에 외국자본이 뱀처럼 밀려들어온다면...혹자는 저렴하게 미국산 물건들이 들어와 그것이 물가안정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하지만 글쎄요. 유통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위에 언급한 내용들이 실제로 발생해 민간 자본으로 넘어가게 되거나 미국에 의해 주도될 때 발생하게 될 엄청난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감당해야 합니다. 십자가 형벌을 받은 자들의 고통이 이런 것일까요?
이번 FTA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긍정적인 것이 될 수도, 또는 부정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해보셨나요? 만약 프로야구 선수와 중학교 야구선수에게 방망이를 주고 같은 경기장에서 프리배팅 시합을 시킵니다. 어떤 룰도 제약도 없이 홈런 많이 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할 때, 과연 이게 제대로된, 정당한 게임이 될 수 있을까요? 너무 극단적 예라고 뭐라 할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결국 이번 한미FTA 비준안의 국회 통과는 '힘의 비균형적인 게임'을 약자 쪽에서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 아픕니다.
자 이제 자동차 얘기로 넘어와보죠.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 한미FTA의 최대 수혜주 중 하나는 자동차입니다. 부품산업까지 확대해서 보면 그 벌어들일 액수는 훨씬 커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동차 업체의 이익이 정말 거대한 것이며, 그것이 국가나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일까요?
현대차그룹은 이미 유럽과 중국은 물론 남미와 인도 등 다양한 곳에 제조공장을 짓고 현지화 생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 역시 마찬가지죠. 현대 기아가 공장을 갖고 있으며, 국내의 커다란 부품업체들 역시 이런 메이커들과 함께 현지에 법인을 설립하는 등 많이 진출하고 있죠. 이미 FTA의 효과는 자동차 메이커 입장에서 보면 많이 희석된 것입니다. 사실 미국이 한국차에 메기는 관세율은 2.5%로 그리 높지가 않습니다. 부품 역시 최대 4%이기 때문에 자동차에 비해서는 조금 더 나을 뿐입니다. 철강, 조선, 반도체는 아예 무관세 품목들이기에 이번 FTA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도대체 제조업 전반에 걸쳐 얼마나 우리가 수익을 낸다는 것일까요?
관세의 혜택 폭이 자동차산업이 의외로 적다는 점 외에도 또 눈여겨 볼 부분은 자동차를 통해 얻어낸 이익이 어떻게 우리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겠느냐는 점입니다. 사실 현대차가 이번 FTA를 통해 대대적으로 고용을 늘릴까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법원의 명령도 듣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현실에서 신규고용을 대대적으로 늘린다는 건 지금까지 보여준 자동차메이커의 습성상 어렵습니다. 이번 정권들어 재벌들 세금깎아 줬죠. 많이 벌어 많이 뿌리라는 의미였다는데 그랬습니까? 오히려 현금 보유만 늘리고 그 돈을 돌려 경제를 원활하게 하는 데 사용함엔 인색할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FTA를 통해 이익이 늘어났다고 자동차 가격을 낮춰 판매할까요? 현대차가 '제값받기 운동'을 해외시장에서 펼치겠다고 했죠? 그 얘기는 다시 말하면 자동차 가격을 올리면 올렸지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 됩니다. 더더군다나 80%의 독점적 내수시장에서 현대차가 이익을 자동차가격을 낮추는 것으로 연결지을까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주주들의 배당은 좋아지겠죠. 노조나 임직원들은 더 많은 보너스를 받게 될 것입니다. 버는 사람들만 벌고 못 버는 사람들은 어떤 혜택도 못 받고 부담만 지게 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핏빛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우리가 이런 비균형적인 무역협정 속에서 최대한 고통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지혜로와져야 합니다. 조금 돈 더 내고 한국농수산물 사먹고, 우리 제품 쓰고, 잘못된 민영화는 눈 부릅뜨고 막아내야 합니다. 기업들, 재벌들 번돈들 사회를 위해 쓰게끔 목소리를 높이고 의무를 다하라 국민의 이름으로 명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립시다. 그래서 결코 만만하게 먹히는 경제종속국이 되지 않도록 우리 정말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또한 FTA가 폐기될 수 있다면 (FTA조항에 포함된 내용) 그렇게 갈 수 있길 바랍니다. 끝으로 독일 언론에 소개된 이번 FTA 비준안 통과와 관련된 뉴스에 달린 댓글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디 벨트 온라인 판이 가장 빨리 국회 비준안 통과 관련 기사를 올린 듯 한데요. 이 기사를 댓글들 중, 추천이 제법 많았던 내용입니다.
Bin Dhumm : "미국은 끝이다.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나라가 된 거 같다. 한국도 이제는
다른 많은 나라들 처럼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고 말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
로 국민들이 천천히 현실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FTA?, 무슨 소용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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