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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어느 장례식장에 온 자동차 노조원들 이야기


오늘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친한 동생에게 들은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 것입니다. 상주로서 많은 문상객을 맞았던 그가 겪은 내용인데요. 다소 민감한 내용일 수도 있기 때문에 언급 대상이된 분들의 직장명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읽게 되실 내용은 한 자동차 메이커 생산직에 있는 분들에 대한 것이며, 들은 내용 그대로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전해준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고 이 곳에 공개하는 것인데,  겉으로는 애써 웃으며 들었지만 속으론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그래서 잠시동안  이걸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공개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는 판단에 따라 '전지적 화자' 형식을 빌어 적어볼까 합니다...

『참 많이 고마웠다.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와 위로하고 조의를 표해주셨다. 슬픈 일을 맞았을 때 이처럼 찾아와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느낀 며칠이었다. 사실 형제가 많은 집안이라 다양한 조문객들을 맞았다. 그 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다랄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 것은 자동차 생산직 직원들의 조문 풍경이었다.

흔히 노조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노조를 이끄는 간부들의 포스는 확실히 남달랐다. 유력 정치인들이 세를 과시하는 것 못지 않은 분위기를 그들은 느끼게 해줬다.  매우 정중했고, 격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주 잘 짜여진 틀에 맞춰 움직이듯 동선은 빈틈없었으며 정확했다. 권력집단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그렇게 긴장감 잔뜩 안겨준 노조간부들이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자 본격적으로  형과 함께 일하는 생산라인의 동료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이틀 꼬박 상가집을 지켜주었다.

이틀 꼬박 상가를 지킨, 그렇게 48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노름이었다. 상가에서 화투장 쥐고 있는 모습이야 새로울 것도 없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익숙함과는 정반대되는 낯설고 무서운 모습이었다. 처음엔 아주 작은 금액이 카드판에서 돌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동전은 지폐로 바뀌었고, 다시 지폐는 두툼한 덩어리로 커졌다. 
 
점점 판이 커지며 지갑이 비어가는 사람들이 하나 두울 생겨났다. 그렇게 돈을 잃은 사람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만 집에 가려나 보다 생각했지만 다시 어딘가를 다녀오더니 두툼한 지폐 뭉치를 내놓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병원에 있던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 액수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믿거나 말거나인 이야기지만, 그들이 뽑아낸 돈들 때문에 한동안 현금인출기 잔액이 부족했다...

그렇게 다시 몇 시간을 놀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조심스레 형을 불렀다. 뭔가 한참 얘기를 나누더니  형이 가족들에게 와 조의금 중 일부를 빌려줘야겠다는 말을 했다. "조의금을 빌려주자고?" 놀란 내게 형은 특별한 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며 곧 되돌려 받을 수 있으니 안심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빌려주는 돈은 다른 상가집 상황에 비하면 많은 돈이 아니라고 말을 했다. 처음엔 장난처럼 생각했지만 결국 우리는 그들의 포커놀이를 위해 조의금의 일부를 내주게 되었다, 그것도 큰 금액을...

나는 그 때부터 그 카드판을 주의깊게 살펴봤다. 출근도 하지 않고 카드만 쥐고 있는 그들에게 "이러고 있어도 괜찮은 것이냐?" 라고 물었더니 피식 웃으며 하루 이틀 출근 안한다고 짤리진 않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했다. 잔업수당 좀 못 받아 그게 아쉽지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나는 그게 정말 다 그런 일인 것인지 되묻고 싶어졌다.

사실 꽤나 큰 노름돈이 오가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차분해보이기까지 했다. 높은 연봉에, 아내 몰래 회사로부터 받아 꼬불쳐 놓은 주식들...잃은 돈 메꾸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는 이유들이었다. 그렇게 상가집에서 공공연하게 노름을 하던 생산라인 직원들은 이틀을 보내고서야 일터로 돌아갔다. 물론 빌려간 조의금 일부는 형이 말했던 것처럼 정확한 액수로 되돌아 왔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한동안 멍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혜택과 특권, 그리고 잘못된 조직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를 생각해봤다. 생산직이라고 해서 무시당하거나 하는 일은 적어도 자동차회사 노조원들에겐 없어 보였다. 물론 노조원들 모두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지위를 누리는 귀족노조임을 애써 부정하고 싶지도 않아졌다. 무능하고 이기적인 경영자와 타락한 노동자는 포지션만 다를 뿐 결국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생산라인을 담보로 또 내년엔 얼마나 많은 인센티브를 얻어낼까?  심퉁맞게 이런 생각이 들자, 저 쪽 구석에서 지쳐 쉬고 있는 있는 형의 어깨가 괜히 미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