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바퀴를 모두 구동할 수 있는 자동차를 우리는 흔히 오프로더, 또는 지프차라고 부릅니다. 지프는 소형급 4륜 자동차를 일컫는 일반명사이기도 하고 또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에 속해 있는 사륜구동 전문 브랜드의 고유명사이기도 한데요. 이 두 가지 의미가 자주 섞여 불리곤 하죠.
루비콘 /사진=지프
올해는 지프가 나온 지 75년이 되는 해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75년을 기념하는 카테고리를 별도로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정 자동차에 붙여진 이름이 자동차 회사명이 된 경우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프의 탄생 배경이 그리 평화롭지만은 않았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미국 국방성은 전장에서 기동력 있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전투용 경량 자동차의 필요성을 절감했는데 이유는 독일군이 이용하던 G-5 때문이었습니다.
G-5 / 사진=다임러
벤츠가 자랑스러워하는 G바겐의 조상 격인 G-5는 뛰어난 기동성으로 전쟁터에서 활약을 펼쳤고, 이에 자극받은 미 국방성은 G-5와 견줄 수 있는 전투용 자동차를 위해 1940년 공개 입찰을 하게 됩니다. 매우 까다로운 10가지 조건에 맞는 차를 두 달 안팎의 기간 안에 내놓아야 했기 때문에 100여 개가 넘는 제조사 중 참여 의사를 밝힌 건 윌리스 오버랜드와 아메리칸 밴텀, 그리고 포드 등 3개 회사뿐이었죠.
세 회사 모두 프로토타입 모델을 내놓으며 최종 입찰을 기다렸고, 고심 끝에 미 정부는 윌리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1941년 윌리스 MA가, 그리고 이를 변형한 윌리스 MB가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 윌리스 MB가 지프의 원조로 불리는 모델입니다. 당시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총 361,339대의 윌리스 MB가 만들어졌고, 생산 능력이 되는 포드도 GPW라는 이름으로 윌리스 MB를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총 277,896대를 위탁 조립하게 되죠.
윌리스 MA / 사진=지프
윌리스 MB / 사진=지프
전쟁이 끝난 후 윌리스는 군용을 개조해 만든 민간용 지프 CJ-2A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자동차 업계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후 몇 번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을 거쳐 현재 피아트크라이슬러 자동차 그룹 내 속해 있는데요. 그런데 이제는 회사 이름이 된 JEEP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누구도 정확히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윌리스 CJ-2A / 사진=지프
그래서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는데 그중 1930년대 인기 만화 '뽀빠이'에 등장하는 강아지 유진의 이름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만화 속 강아지가 내는 소리가 JEEP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실제로 유진의 풀 네임이 '유진 더 지프'이기도 하죠.
두 번째로 많이, 그리고 유력하게 이야기되는 것이 당시 윌리스와 납품 경쟁을 했던 포드가 내놓았던 GP라는 모델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너럴 퍼포스(General Purpose)의 약자로 1941년 4,456대가 만들어졌는데 GP의 발음이 지프와 비슷해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앞서 윌리스와 함께 포드가 만든 GPW라는 자동차가 있는데, 이 GPW를 빨리 발음할 때 나오는 소리에서 유래됐다는 얘기도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
포드가 입찰에 참여해 개발한 피그미. 이 차가 개조돼 GP가 된다 / 사진=위키피디아
세 번째는 당시 미군 내 문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군에 처음 입대한 신병이나 새로 지급된 차량을 JEEP라고 불렀는데 이 호칭이 그대로 고유명사화 됐다고 하는 설입니다. 이 역시 제법 알려진 내용인데요. 이에 비하면 네 번째는 설은 그다지 신빙성이 높지 않습니다. 윌리스 오버랜드사가 미 국방성의 입찰에 응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토타입 모델 쿼드가 만들어집니다. 1941년, 해당 모델을 상원 의원 제임스 메이드가 운전하게 되는데,
그 상원의원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윌리스 사의 테스트 드라이버 어빙 하우스만에게 이 차가 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하우스만은 "이건 지프라고 합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여기서 지프가 유래됐다는 주장인데 그리 많은 지지를 받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설은 독일과 관련 있는데요. 당시 윌리스 사에서 설계를 하던 한 직원의 성씨에서 유래됐다는 설입니다.
독일에는 16세기에 JEEP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지프 가문의 후손이 미국으로 건너와 이민자가 되었고, 그 성 씨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주장이죠. 이처럼 여러 가시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이 중 어떤 게 사실인지 현재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숨은 문서라도 나와 어떤 게 사실인지 알려주지 않는 이상은 지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선 계속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등장해 어수선한 가운데 부여받은 이름 JEEP. 하지만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느냐를 아는 것보다는 얼마나 전통을 잘 이어가느냐가 지금 지프에겐 더 중요한 자기 정체성 지키기가 아닐까 합니다.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험한 지형을 극복하고픈 욕망이 우리에게 있는 한, 지프의 사륜구동 역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윌리스 MB(1941-1945) / 사진=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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