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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쌍용차가 유럽에서 살아가는 법

엊그제 독일의 한 지방도로를 달리는 데 익숙한 자동차가 맞은편에서 지나가더군요. 쌍용 렉스턴이었습니다. 말을 옮길 때 쓰는 트레일러 (독일에선 페어데안행어 Pferdeanhänger라고 부름)가 달려 있었는데 현재 판매되고 있는 렉스턴 W 모델은 아니고, 2006년부터 2012년까지 판매된 렉스턴∥였습니다. 가끔 만나게 되는 대우나 쌍용차는 볼 때마다 반갑기도, 또 한 편으로는 왠지 모르겠지만 짠한 생각도 들고 그럽니다.

페어데안행어를 장착한 렉스턴 W / 사진=쌍용차

그도 그럴 것이, 1950년대 처음 시작돼 1986년 쌍용그룹에 인수되기까지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죠. 쌍용그룹 인수 후에서야 비로소 SUV 전문 메이커로, 그리고 고급 SUV 브랜드로 자리를 잡으며 잘 나가는 듯했습니다만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1999년 대우그룹으로, 그리고 다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됩니다.

중국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되고 다시 현재 주인인 인도 마힌드라 그룹에 팔리기까지 그야말로 논란과 아픔의 시간뿐이었죠. 회사가 이대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 등, 쌍용차의 미래는 잿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마힌드라에 인수되면서 깊게 파인 상처가 겨우 아물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정말 이처럼 수많은 간판을 갈아엎으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자동차 회사가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짠한 독일 판매량, 그래도 보이는 희망

집에 돌아와 며칠 전에 본 쌍용차의 독일 내 판매 결과를 다시 찾아 펼쳐봤습니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독일에서 총 274대가 판매됐더군요. 2016년 1월부터 9월까지 누적판매량은 2,692대였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독일에서 9월 한 달 10,009대, 2016년 누적 81,346대를 팔았고, 기아자동차가 9월 한 달 6,020대에 1월부터 9월까지 46,458대를 팔았으니 이건 뭐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나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희망도 보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데요. 역시 이런 판매량 상승을 견인하는 건 티볼리였습니다. 그런데 티볼리 외에 9월 판매량만 놓고 보면 또 다른 모델이 인상적인 결과를 내고 있었습니다. 코란도와 렉스턴입니다.

코란도 / 사진=쌍용차

쌍용차 독일 9월 및 1-9월 누적 판매량 비교 (자료: 독일연방자동차청)

티볼리 9월 판매량 : 100대 (1-9월 누적판매량 : 1,162대)

코란도 9월 판매량 : 95대 (1-9월 누적판매량 : 785대)

렉스턴 9월 판매량 : 70대 (1-9월 누적판매량 : 596대)

로디우스 9월 판매량 : 9대 (1-9월 누적판매량 : 147대)

판매 비율로만 보면 티볼리가 43.2%, 코란도가 29.2%, 그리고 렉스턴이 22.1% 등으로 의외로 렉스턴과 코란도의 비중도 높았습니다. 현대나 기아와 비교하면 사실 명함을 내밀기조차 부끄러운 상황이지만 사실 쌍용의 이런 판매량은 다른 시각으로 보면 기특(?)하다고까지 말할 수도 있습니다.

변변한 직영점 하나 없이 

변변한 광고지원 없이 

독일 쌍용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대리점을 찾을 수 있는 카테고리가 있는데요. 그곳에 가보면 굉장히 많은 딜러들이 표시돼 있습니다. 얼핏보면 굉장히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인 독일에서 쌍용차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직영대리점이 없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독립된 건물을 짓고 현대 모델들만을 판매하거나, 아니면 특정 지역에서 오랜 세월 딜러 영업을 해온 딜러와 계약을 맺고 현대차를 판매하게 하는 그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쌍용차는 몇 개 브랜드의 모델을 모아 판매하는 작은 규모의 딜러와 계약을 맺고 그 몇 개 브랜드 중 하나로 판매되고 있는 게 전체 딜러망의 대부분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최근 티볼리가 나오면서 지역 기반의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새 딜러와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변변한 직영점 하나 없이 딜러들 발품으로 판매는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현대 프랑크푸르트 플래그십스토어 전경 / 사진=현대차


2014년 독일 쌍용 딜러 총회 때의 모습. 소박합니다... / 사진=쌍용차

광고 한 번 본적 없는

아무리 다른 브랜드 모델들과 섞여 판매가 이뤄진다고 해도, 어쨌든 광고나 큰 이벤트라도 잘해준다면 영업하기는 분명 수월한 면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쌍용차의 신차 광고, 혹은 브랜드 이미지 광고를 제 기억으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흔하게 하는 독일 유력 자동차 전문지의 지면 광고도 보기 어려운 게 쌍용의 현실이죠.

현대나 기아가 광고를 할 때에도 쌍용은 그냥 지켜만 보며, 오로지 딜러들의 힘으로 버텨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쌍용차 마케팅은 유럽에서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전문지들이 시승을 하거나 비교테스트를 하는 게 홍보라면 홍보가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 있으니 판매량이 신통치 않을 수밖에요. 물론 쌍용차 성능에 대한 전문지의 평가도 영향을 끼칠 텐데요. 무난한(혹은 평범한) 수준의 중저가 SUV로 평가되는 게 대체적 결과라 하겠습니다.

대형 메이커들의 화려한 전문지 지면 광고

없는 가운데 쌍용을 알리기 위한 노력

화려한 TV 광고와 지면 광고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홍보를 위한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스포츠 마케팅에서 생각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영국 실버스톤 서킷에서 벌어진 클래식 자동차 축제에 쌍용은 후원사로 참여, VIP 셔틀과 독특한 이벤트를 벌였고, 영국 2부리그 축구팀의 스폰서, 세리아 A 팀인 UC 삼프도리아와의 파트너십을 갱신하기도 했습니다.

또 독일 승마협회와 연결돼 역시 이벤트를 펼치는 등, 유럽 내 곳곳에서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쌍용차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물론 피파를 후원하거나 WRC 등에 참여하는 현대와 비교할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쥐어짜듯 유럽 전역에서 쌍용차가 이름 알리기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인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쌍용자동차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티볼리 / 사진=쌍용차

개인적으로는 쌍용차가 메이저 모터쇼 참석을 좀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번에도 이야기했듯, 그 비용을 아껴 좀 더 쌍용차를 부각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홍보 전략을 수립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신차, 또는 가장 경쟁력 있는 모델을 알리는 홍보에 집중하는 것이죠. 또 모터쇼 비용 등을 아꼈다 홍보 효과가 큰 전문지 지면 광고라도 신차 나올 때 폼 나게 한 번쯤은 해보는 것도 고려해 보았으면 합니다. 

유럽 운전자들은 디자인도 중요하고 경제성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무엇보다 기본 주행성능에 큰 가치를 둔다는 점을 잊지 말고, 계속해서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한눈 팔지 말고 SUV 전문 브랜드로 차곡차곡 전문성을 쌓아가고 그렇게 브랜드를 알려 간다면, 비록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유럽에서 (아니 어디에서든) 쌍용차는 충분히 버티고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자동차 회사로 뿌리 깊이 내리기를 먼 타국에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