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독일을 대표하는 진보 매체 슈피겔은 짧은 소식 하나를 전했습니다. 독일 의회가 2030년부터 가솔린과 디젤 엔진이 장착된 자동차를 더는 신차 등록받지 않기로 하는 것에 큰 틀에서 합의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신차 등록을 받지 않겠다는 건 내연기관이 장착된 자동차를 독일에서 판매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이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는 독일 입장에선 뜻밖의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 자동차를 유달리 좋아하는 독일인들도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우토반을 가득 채운 자동차들 / 사진=위키피디아
실제 법률 제정으로 이어질까?
우선 이 소식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요. 2030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신규 등록을 금지하겠다는 얘기가 처음 나온 곳은 독일 평의회(Bundesrat)였습니다. 독일 평의회는 다른 말로 연방상원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선출직 정치인들이 있는 연방의회(Bundestag), 그러니까 연방하원과는 좀 다른 구성과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연방상원은 600명 수준의 선출직 의원이 있는 연방하원과 달리 70명 수준의 16개 주정부의 각료와 공무원들로 이뤄진 조직이죠. 한마디로 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 주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과 법안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기본적으로 내지만 또 가끔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교나 국방과 관련한 연방정부 고유의 영역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법안에 대해 승인권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정말로 이 내용이 법률로 제정이 되기 위해서는 연방하원에서 의원들의 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과연 이 내용이 원안 그대로 투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현재 이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곳은 독일 녹색당이며, 메르켈 총리가 몸담은 독일 기독교 민주연합(CDU), 그리고 연정 파트너로 있는 제 2당 독일 사회민주당(SPD) 등에서도 이 법안의 입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독일 반응, 반대 목소리 만만치 않아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발 빠르게 다른 매체들도 관련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는데요. 자동차 친화적인 전문 매체나 포털 등의 분위기는 이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듯 보입니다. 최대 판매 부수를 보이는 아우토빌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까지 6,731명이 참여해 그중 25%(1,687명)만이 이 정책에 찬성하고 있고 66%(4,419명)는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나머지 9%(625명)는 이동할 수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또 회원이 200만 명이 넘는 독일 최대 자동차 포털 모터토크 역시 이 소식을 전하며 반대 입장에 있는 자동차 업계와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소개했습니다. 특히 디젤 게이트 이후 전기차를 연일 쏟아내고 있는 폴크스바겐조차도 2025년까지 전기차 판매가 전체 모델의 25%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는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죠. 또 현실성이 떨어지고, 많은 실업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다뤄야 할 것이라는 독일 자동차클럽 아데아체의 의견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아데아체는 회원 1800만 명의 단체로 자동차 관련 입법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엔진을 조립하고 있는 노동자 모습 / 사진=폴크스바겐
하지만 처음 이 소식을 전한 슈피겔이 온라인 홈페이지 통해 실시하고 있는 설문조사를 보면 찬성 쪽 의견이 더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총 101,316명이 참여해 50.21% (50,723명)가 '매우 좋다. 자동차 업계에 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친환경으로 전환하지 않을 것이다' 항목에 표를 던졌습니다. 32,56%(32,985명)는 '어떤 차를 운전할 것인지는 (정치인이 아닌) 내가 결정할 일이다'에 동의했고, 15.62%(15,822명)는 '새 법이 2050년부터 적용되어도 난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항목을 선택했습니다.
크게 보면 찬성과 반대(조건부 반대 포함)가 비슷한 수준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진보 매체, 그리고 자동차 팬들이 주로 모이는 전문지나 전문 포털의 특성이 반영된 투표 내용이지만 어쨌든 개인적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찬성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에 놀랐고, 이런 분위기가 유지된다면 충분히 정치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어 버린
사실 자동차를 포함한 배기가스를 유발하는 내연기관을 없애야 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 지구 온난화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 협약인 교토 의정서가 채택되면서 본격화됐죠. 하지만 미국과 중국 등이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며 이 문제를 질질 끌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총회에서 195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모두가 합의하게 되면서 온실가스 감축 문제는 당장 눈앞의 현실이 됐습니다.
이미 유럽연합 산하 기관은 2050년부터 도심에 가솔린과 디젤 엔진이 달린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고,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등에선 202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를 더 이상 판매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법안이 합의가 된 상태였죠. 그리고 유럽연합의 정책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독일에서조차 203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규 등록을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에서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북남미 등,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 문제는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기차 Zoe / 사진= 르노
문제는 2030년이 그리 멀지 않다는 점인데요. 과연 제조사들이 이 문제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우선 의문입니다. 자동차 산업 전반의 틀을 깨버리는 일이라 산업 재편에 따른 경제적 문제와 실업 공포 등에 대한 철저한 대응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전히 자동차 하면 엔진을 떠올리는 수많은 자동차 팬들의 정서와 문화도 고려할 수 있어야겠죠.
사실 자동차 역사는 2행정과 4행정 방식의 내연기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엔진과 함께 역사는 시작됐고 엔진과 함께 발달해 왔습니다. 엔진음에 매료되고, 엔진룸 들여다보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엔진 기술력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에게 엔진 없는 자동차 시대는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온실가스는 전체 발생량의 20% 수준밖에 되지 않는데 너무 자동차만 몰아붙이는 거 아니냐는 항변도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항공기와 선박 역시 EU의 강력한 제재 정책에 고민이 큼)
엔진룸 / 사진=다임러
하지만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연기관 없는 자동차 시대는 한 발 더 우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밀려오는 속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른 듯합니다. 건강한 미래, 더 나은 지구 환경을 위한 전 지구적 협의와 다짐은 앞으로 더욱 강하게 실행될 것입니다. 이번 이슈가 독일 정치권 일부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그 파급력만큼은 지엽적이지 않을 것이기에 이 문제에 지속적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20년 후의 자동차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첨단의 도로 인프라와 결합된 자율주행과 내연기관 없는 자동차 시대, 아직 막연한 듯하지만 무언가가 거대한 쓰나미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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