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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거대 모터쇼 시대가 저물어 간다

파리모터쇼, 또는 파리오토살롱 등으로 불리는 원조 자동차 박람회가 현재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1898년 시작됐으니 120년이 다 되어 가네요. 최초의 모터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파리모터쇼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합니다. 이처럼 자동차를 대상으로 한 모터쇼가 본격적으로 열릴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인들의 자동차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과 열정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1976년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와 함께 격년으로 모터쇼를 개최하고는 있지만 파리모터쇼는 여전히 주요 박람회로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올해 파리모터쇼는 여러 자동차 업체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슈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모터쇼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 라는 주제로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제조사의 모터쇼 불참과 그 숨은 이유들 

르노 부스 모습 / 사진=르노

모터쇼에 참가하는 것은 자동차 회사들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커다랗고 특색 있는 부스를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자신들이 내놓는 자동차를 알리는 것은 신차 효과뿐만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올리거나 유지하는 데에도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죠. 이는 지금도 일정 부분 유효합니다. 특히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고 수많은 각국의 기자들이 프레스데이에 맞춰 찾는 파리모터쇼의 경우, 불참은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2014년 말, 볼보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볼보는 북미(디트로이트모터쇼), 유럽(제네바모터쇼), 아시아(상하이 또는 베이징모터쇼)에서 열리는 모터쇼 1개씩에만 참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요. 그동안 참여했던 모터쇼의 빈자리는 온라인이나 특화된 이벤트 등으로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투자 대비 효율

매번 모터쇼마다 수십억에서 최대 백억 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부스를 만들어야 하고, 또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거나 컨셉트카를 내놓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것 등은 그 자체로 매우 부담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투자 대비 효율을 생각해야 했고, 제조사들에겐 더이상 모터쇼는 '반드시' 참여해야만 하는 필수 코스가 아닌 게 됐습니다..

새로운 고객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현장으로

이번 파리모터쇼에 볼보와 함께 포드 역시 불참했는데요. 포드의 경우 별도의 신차 이벤트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신형 피에스타 시승행사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들에게 더욱 미디어가 집중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으로 언론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리모터쇼가 열리고 있는 같은 시간, 독일 하노버에서 개최된 상용차 박람회에서 포드는 자신들이 내놓은 다양한 상용차를 내놓고 실질 구매자들과 상담 등의 구체적 판매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IAA 상용차 박람회 포드 매장 / 사진=포드

마쯔다 역시 이번 파리모터쇼에 참석하지 않았죠. 대신 독일 남부에서 열린 자전거 박람회 등, 관련성이 낮아 보이는 박람회 3곳에 참여했습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마쯔다나 포드의 이런 방향 전환은 새로운 고객층을 만들고자 하는 전략 차원이라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선택과 집중 

마쯔다 얘기를 드렸지만, 새로운 수요층을 찾는 것 못지않게 신차 수요가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지역에 이벤트를 집중하는 것 또한 제조사에겐 중요한 부분입니다. BMW에게 작은 규모의 브뤼셀모터쇼가 중요한 이유는 벨기에서 팔리는 BMW의 40% 정도가 이 모터쇼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BMW 관계자의 증언이기도 한데요.

마쯔다 역시 CX-5를 11월에 열리는 LA 모터쇼에서 소개하려 준비 중이며,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BMW가 5시리즈를 파리모터쇼에서 공개하지 않은 것 역시 5시리즈의 주요 소비국인 미국 등지에서 공개하는 것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게 합니다. 무조건 모터쇼에 참석하는 게 아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집중하는 전략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자율주행 시대, 전자박람회로!

또 하나의 큰 변수라면 바로 자율주행입니다. 자동차가 점점 IT화 되면서 몇 년 전부터 자동차 회사들은 라스베가스 가전 박람회(CES)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차 그 자체보다는 자동차에 적용될 첨단 기능을 설명하고 그것을 시연함으로써 브랜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가전박람회 참여는 미래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기에 앞으로 더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IT 관련 전시회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6년 CES 아우디 매장 모습 / 사진=아우디

터쇼, 규모보다는 현실을 반영하게 될 것

이번에 람보르기니가 파리모터쇼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놓고 모회사의 긴축재정 정책과 맞물린 것이 아니냐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분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람보르기니와 벤틀리, 또는 롤스로이스와 애스턴 마틴 등의 모터쇼 참석은 서비스 차원의 성격이라는 얘기가 그간 많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럭셔리 브랜드들에겐 자체 고급 매장을 열어 이것을 통해 특정 수요층을 만족시키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을 테니까요. 

런던에 오픈한 벤틀리 패션 및 디자인 매장 / 사진=벤틀리

그렇다고 마냥 모터쇼를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신차가 나왔을 때 이를 단시간에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에는 여전히 모터쇼는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규모 제조사, 그리고 스포츠카나 럭셔리카 제조사는 그때그때 모터쇼 참석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규모 모터쇼는 사라지게 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관심과 수요가 있는 곳에 물건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과거보다 떨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자동차는 많은 이들의 로망입니다.

다만, 그동안 절대시 되어 왔던 자동차 회사들의 모터쇼 참석은 이제 여러 변수로 인해 장담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인터넷 시대는 대규모 오프라인 공간이 아닌 온라인을 통한 홍보나 판매에 뜨거운 경쟁을 하게 만들었고, 자동차 팬들도 편하게 집에서 자동차를 감상하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터쇼를 찾는 이들의 수가 급증하지 않는 이상 자동차 박람회는 규모를 조금씩 줄여가며 규모의 경쟁보다는 실용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추게 될 것입니다. 모터쇼 문화도 이렇게 변해가는가 봅니다.